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1967년에 들어오면서 정부는 수출신장이란 지상과제와 무역자유화라는 개방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전환을 심도있게 모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출정책 입안, 각종 수출 지원제도 시행과 장단기 목표를 세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1967년 1월 16일 제정된 무역거래법은 다양했던 무역법 체계를 일원화시켰으며, 동년 4월 14일 가트(GATT) 가입을 계기로 7월 25일 실시된 네가티브시스템(수출입 기별 공고제)으로의 전환은 실질적인 무역개방 체제의 출발이었다.
이 제도의 채택과 더불어 무역자유화 폭이 가일층 확대되었고, 종래에 실시한 바 있었던 수출입 링크제의 전환은 실질적인 무역개방 체제의 출발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었다. 수출입 링크제의 일부 부활과 특관세 적용의 축소와 관세법 개정은 무역업계로 하여금 큰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제무역 추세는 막 출발한 얼마 안되는 한국의 수출업계에 유리한 점이 있는 반면 불리한 부분도 많았다. 5년을 끌어온 케네디 라운드 협상 성립을 계기로 세계무역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유리하다면, 운크타드(UNCTAD) 뉴델리 회의(1968년 2월)를 앞둔 알지에 예비회의는 선후진국간의 무역, 이른바 남북문제로 인하여 큰 논란이 일어난 부분은 불리한 점이었다.
그 외에도 대(對) 후진국 특혜관세 제도와 선진국의 원조 한도를 국민총생산의 1%로 하자는 제의는 선진국의 동조를 받으면서도 각국 자체 사정, 소속 경제권과의 관계나, 과거 종주국과의 유대 등 착잡한 문제가 개재되어 쉽사리 해결 전망이 서지 않는 것도 한국 수출업계에 불리한 부분이었다.
게다가 영국의 파운드화 절하, 미국의 달러화 방위정책 강화는 내일의 국제 유통성 문제와 함께 세계 무역 역조를 예고하고 있어, 희비의 쌍곡선이 엇갈리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환경 하에서도 정부는 해를 이어 지속적인 수출신장 정책을 추구해 나갔다. 당시 상공부가 마련한 1967년도 수출진행 종합시책은 한번의 수정을 거쳐 3억 6,000만 달러가 수출목표였다. 정부는 이 수출목표 달성을 위해 강력한 의지와 노력을 병행해 나갔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1. 수출목표 달성을 위한 무드 조성과 체제확립
2. 무역업 허가제 실시 등 무역업계 체질 개선
3. 무역행정 근대화
4. 수출산업 기반확대
5. 품질 향상과 기술 지도
6. 해외시장 개척
7. 통상외교 강화
8. 세제면 지원강화
9. 금융면 지원강화
이러한 정부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수출업계의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노력에 힘입어 1967년 한국 무역은 3억 5,9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 그 수치는 전년대비 40.2 %의 높은 신장율이었다.
수출상품 구조면에 있어서도 1966년 공산품 수출비중이 62.4 %이던 것이 1967년에는 70.0 %로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또 수출 대상국도 1966년의 70개 국가에서 75개 국가로 증가되어 시장폭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안으로는 연초부터 수출 부진현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이에 일부에서는 수출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여론이 일어나 우울한 해이기도 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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