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대우실업은 수출수요에 대응하고자 섬유공장의 확충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1972년 8월 4일, 남양산업사로부터 2개의 공장을 인수함으로써 기존의 3개 공장과 함께 모두 5개의 섬유공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대규모 공장을 부산에 보유하게된 대우실업은 각 공장 이름을 인접성과 보유하게된 시점을 기준으로 설정하여 공장의 명칭을 단순화하였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1968년 10월 1일 최초로 설립 가동된 동래공장을 제1공장으로, 1970년 10월 1일, 동남섬유섬유공업사로부터 인수한 동남공장을 제2공장으로, 1969년 7월1일 세창직물공업사로부터 인수한 연산공장을 제3공장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1972년 8월 4일 남양산업사의 양정공장을 제4공장으로, 반여공장을 제5공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또한 부산 소재의 직영 섬유공장을 새로운 사업장으로 이전, 통합하여 보다 효율적인 생산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안정적 수출기반 확대를 꾀하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입지 조건이 비교적 양호한 제5공장을 대단위 공장화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72년 10월부터 대단위 공장화 공사는 주변부지 2만6천여 평을 추가로 매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3개월 후인 이듬해 1월 1차 준공되어 우선 21개의 봉제라인이 증설됐다. 이로써 대우실업은 제5공장의 27개 봉제라인을 보유하게 되어 세계 제일의 섬유제품 생산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5공장의 확장공사 1차 준공 후 제1공장과 제2공장의 봉제시설을 제5공장으로 이전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회사는 뜻하지 않은 재난을 만났다. 1973년 2월 25일 밤 10시 15분경, 제2공장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이라면 모든 종업원이 야간작업을 마치고 퇴근한 후라서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화재는 다음날 새벽 5시경에야 진화되었다. 이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신장하는 대우실업에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건물, 기계장치, 기타 고정자산 5,500만원(감가상각후 잔액), 제품, 원재료, 제공품, 부재료 등 재고자산 13억 9,300만원을 합쳐 모두 14억 4,800만원의 재산손실을 가져왔던 것이다.
화재원인은 관계기관의 면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끝내 원인불명으로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전체 피해액의 30 %에도 못미치는 4억 8,2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하는 데 그쳐야했다.
대우실업의 임직원은 곧바로 복구작업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15일만에 경이롭게도 복구를 완료함과 동시에 제2공장의 봉제라인을 가방생산 라인으로 전환함으로써 제2공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이는 창업주의 넉넉한 이해와 꺾이지 않는 용기의 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처음 화재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김우중 당시 사장은 김창규 당시 부장을 대동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떠날 때 김우중 사장은 몹시 재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추풍령을 지날 때 식사를 하자면서 여유를 보였다. 그때 창업주는 모종의 굳은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후 2시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우중사장은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화재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정신을 붙잡혀 있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겠습니다. 타버린 것은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됩니다….」
숙연해진 직원들도 하나같이 굳은 결심을 하게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창업주가 회생의 강한 자심감을 보이지 않고 주저리 주저리 화재에 대해 자잘못을 따지려 했다면 그토록 빠른 시간에 제2공장은 소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빠른 시일내의 복구와 새로운 출발은 ‘화재의 시련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승화시켜 영광된 대우를 건설하자’는 대우실업 전임직원의 혼연일치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대우실업은 화재 이후 제5공장을 전문성을 살린 일관생산 체계의 대단위 섬유공장화 계획에 박차를 가해, 나머지 4개 공장에 산재해 있던 편직 및 가공시설을 1973년 9월부터 4개월에 걸쳐 제5공장으로 이전하였다.
그리하여 2차 확장공사가 완료된 1974년 7월 28일, 제5공장은 동양최대 규모의 생산시설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우실업의 생산시설은 부족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우실업의 수출물량을 보더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확장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1975년 11월 16일 그동안 추진된 제3차 확장공사가 완료되었고,그 결과 총 81개 봉제라인을 보유한 명실공히 세계최대의 봉제품 일관생산 체재 공장이 탄생됐던 것이다. 부지 32,436평, 총건평 25,464평의 제5공장은 그후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신합섬원단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했다.
생산능력은 신합섬원단 3천5백야드, 시트커버 84만대분이며, 신설된 양산공장에서는 폴리우레탄을 생산한다. 그리고 초기 1만여 명에 달하던 생산직사원은 96년 현재 7천여명으로 축소되있다.
대우의 오늘의 초석이 되었던 부산의 1, 2, 3, 4 공장은 물류창고로 쓰이거나 임대로 쓰이고 있으며, 그밖에 협력업체를 통한 각종 피혁제품 생산기지는 점차 해외로 이전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