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대우실업은 창업 이후 매년 높은 수출신장을 거듭하여 1972년 11월 30일 제9회 수출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았다. 영예를 안음과 동시에 대우실업은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우실업의 금탑산업훈장 수상은 원자재 사용, 다실적, 신장율, 새마을농가 부업 제값받기에 지대한 공을 인정받은 덕택이었다.
이미 대우실업은 창업 다음 연도인 제5회 수출의 날에 수출신장율 370 %로 산업포상을 받았었다. 1970년엔 철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으면서 당당히 존재를 재계에 드러낸 바 있으나 제9회 금탑산업훈장은 그와는 의미가 달랐다. 수출실적 2위로 대내외적으로 정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대우실업은 국내보다도 국외 특히 일본섬유업계에서 더 유명했다. 일본의 섬유업계는 대우실업을 떠오르는 태양으로 비유할 정도였다.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2년 후인 1974년 대우실업이 수출 1억불탑을 수상 했을 때 창업주 김우중 회장(당시 사장)은 잔잔한 어조로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대우실업이 1억달러 수출을 돌파하여 오늘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도록 협조해준 정부, 국민, 그리고 관계기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영광은 우리 대우 집안의 각 사업장에서 땀 흘려 가며 희생적으로 일해 온 대우가족들의 힘의 결정입니다. 그분들의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국가에 조그마한 기여를 한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합니다. 올해에도 높은 수출 증가율을 보인 것은 주종상품인 섬유류와 경공업 제품에 역점을 두면서 비섬유 제품의 수출 개척에 눈을 돌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수출경기가 좋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사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을 못느꼈습니다. 애로가 있었다면 주문을 못따르는 생산능력이었습니다.
경공업 제품은 경기가 나빠도 가격경쟁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고, 불황 때도 전반적으로 수요가 늘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화학 제품이 시설투자 침체 등으로 수출이 부진했으나 내년도에는 회복될 것이기 때문에 올해 시험 수출로 뿌려놓은 씨를 내년에는 결실로서 거두어 들일 계획으로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수한 세일즈 맨을 많이 양성해서 능률을 높이는 일이고, 정부로서는 수출대형화에 발맞추어 과거에 만들었던 각종 규제나 규정을 현실적으로 조정해 주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램입니다.」
대우실업은 주문량을 못따르는 생산능력에 애로를 느꼈을뿐 오더에 구애를 받지는 않았다. 대우실업은 1972, 73, 74년 수출랭킹 2위를 차지하면서 또한 국세청으로부터 성실신고 법인으로 선정되었다. 이 성실신고 납세는 창업초년부터 성실히 실천해온 기업의 문화였다. 당시 사세(社勢)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성실신고법인으로 지정을 받자 대우실업은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대우실업의 수출 성공은 시장의 다변화, 외국 고객의 대형화 및 직거래선 과의 제휴를 통한 안정된 수출시장의 확보, 소비성향 변화에 따른 과감한 신소재의 사용 및 기술혁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제서야 국내에서도 창립 7년만에 국내 굴지의 수출업체로 신장한 대우실업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섬유류의 세계적인 수요감퇴에도 불구하고 오직 섬유 하나만으로 당당히 국내수출 실적 2위,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한 까닭이었다.
이 때 수출업계의 실적을 보면, 1위가 연합물산이고 2위가 대우실업이며, 3위가 현대조선, 4위가 한일합섬이었다.
1억불탑을 수상한 1974년은 에너지 파동 후 국제적인 원자재 공급가격의 상승이 몰고온 불경기가 기승을 부린 한해였다. 또 국제섬유시장의 수요의 감퇴가 현저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우실업은 이런 상황에 쉽게 굴복하거나 맥 빠져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뭉쳐 창의와 기동력을 자랑하는 대우인의 저력을 과시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로하여 국내업계의 여론은 ‘신화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아무런 말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하늘 밑에서 인간이 하는 일에 신화는 없으며 그 모두가 헌신과 노력의 과실임을. 때로 우연과 행운이라고 표현하는 장삼이사들도 있었으나 그들도 사실은, 대우실업이 이룩한 업적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며 남이 일할 때 일하고, 남이 쉴 때도 일하고, 남이 잘잘 때 잠못 이루고 고심한 결과이며, 바로 그것이 인간의 승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놀라운 신장과 능력에 부러움 섞은 빈정거림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1년이 지난 1975년, 제 12회 수출의 날에 대우실업은 또다시 수출 특별 유공 대통령기를 수상했다. 당시 대우실업의 수출국은 40여 개 국이었으며, 해외지사 수는 15개로 늘어나 있었고, 주종수출품은 섬유봉제였다.
대우실업은 1975년 다음해의 수출목표액을 3억달러로 잡았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각고의 노력으로 한해를 땀흘렸다. 이윽고, 그해 11월 30일 제13회 수출의 날에 대망의 3억불탑을 수상했다. 대우는 지난해 대비 수출신장율을 100 %나 달성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세간의 궁금증은 컸다. 어떻게 그 어렵다는 수출을 한해에 100 %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 그들의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비결이란 없었다. 꼭이 원인을 찾으라면 그것은 임직원들이 모두 열심히 일한데 있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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