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이래, 국민에게는 최대의 양심기업, 국가에는 최고의 납세자, 주주에게는 최대의 재산관리자, 종업원에게는 최적의 일터, 고객에게는 최선의 상품의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며 <국민기업>으로서의 정착을 위해 경영과 자본의 효율적 분리를 강조해온 대우는 1978년 3월 50억원 재산을 출연, 현 대우재단의 전신인 대우문화복지재단을 설립하였다.
이는 대우가 1977년 3월 50억원의 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 수원에 위치한 아주공과대학(현 아주대학교)를 인수, 운영함으로써 육영사업에 기여한데 이어 공익사업에 기여한 또 하나의 용단이었다. 이로써 대우가 영속적 공익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설립한 공익법인이 사단법인 서울언론문화클럽(현 서울언론재단)을 포함하여 3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출연한 기금만 하더라도 총 110억원에 달하였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시대적 요청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대우가 국민적기업으로서 국민과 함께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신념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대우문화복지재단은 대우의 경영과는 분리되어 순수하게 사회의 문화와 복지만을 위해 운영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0년 10월 대우의 창업주 김우중 당시 사장은 200억원의 전재산을 모두 대우문화복지재단에 출연하였다. 중화학투자조정에 의해 발전설비 분야의 대우 전담에 스스로 전문경영인으로 새출발하기 위해 창업주는 사재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것이다. 출연한 재산은 대우실업을 비롯한 관계회사 주식 175억원(액면가), 부동산 25억원(시가) 등이었다.
그리고 학술사업과 낙도 오지사업, 사회복지사업을 활발하게 펴나갔다.
대우재단 학술사업의 핵심은 논저․연구번역․공동연구 등을 지원하는 연구지원사업으로 이들 연구지원의 결과는 대우학술총서로 출간되어왔다. 연구지원은 1981년 66건이 지원된 이래 매년 평균 70여 건씩 지원되어 1996년말 현재 논저․연구번역․공동연구 등 지원된 연구과제의 수는 1,176건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 지원의 결과물인 ‘대우학술총서’도 매년 평균 30권 가까이 출간되어 지원된 과제의 1/3 수준인 330여권에 달하고 있다.
개별적인 연구지원과 함께 재단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학술모임 지원이다. 1982년 교수연구회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시작된 독회․콜로키움지원은 1985년 대우재단 빌딩 건립과 함께 재단이 세미나실 등 학술시설을 갖추게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지원건수도 매년 평균 20여건 씩 지원되다가 1990년 이후에는 매년 40여건씩 지원되었다. 또 96년에는 114개의 모임을 지원함으로써 1996년 말 현재 총 528개의 모임을 지원하였다.
재단은 1978년 3월 재단설립과 함께 병원건립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낙도, 오지의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사업목표를 수립했다. 그리하여 1978년도에 신안, 무주, 진도 3개지역의 병(의)원을 착공하여 다음해인 1979년에 개원하는 한편 1980년 3월에 완도대우병원을 개원함으로써 4개의 병(의)원을 통한 의료사업을 중심으로 낙도, 오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사회복지사업인 대우 청주 꿈동산은 평소 불우청소년문제에 관심과 그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대우의 창업주 김우중 회장은 1989년 젊은이들에게 주는 글모음「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펴내고 시작되었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강조하여 전 재산을 대우재단에 출연했던 김우중 회장은 이 저서의 인세수입을 소년소녀가장이라는 불우청소년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하면서 이들의 숫자가 적지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김우중 회장은 이들에게 주거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을 듣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들을 위한 아파트 건립에 써달라며 인세 전액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대우재단은 소년소녀가장 지원을 재단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할 것을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단은 사업대상 지역문제를 관계기관과 합의하여 충청북도 청주시를 적지로 선정하고 이에 관련된 실태조사를 학계에 의뢰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청주시 봉명동에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대우꿈동산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이 건립은 단순히 집이 없는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주거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차원을 넘어, 입주 소년소녀가장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가정의 정서를 체험케 하고 자립하여 바람직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더 큰 뜻을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