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의 해외건설 진출은 여타의 경쟁사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않았다. 그렇다고 해외건설 진출을 위한 정보나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훗날의 자체평가지만 오히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를 착실히 해가며 진출의 기반을 다진 것이 급히 서둔 것보다 보다 큰 과실을 거둘 수 있었다.
1978년 굳건히 닫긴 문을 연 리비아가 대우성장의 밑그림이 되었다는 걸 대우인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과장했다는 혐의가 진하지만 만약 리비아의 문을 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옥포조선소는 그 탄생부터가 진통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있다. 어쨌거나 그런 말들이 들린다는 것은 바로 리비아라는 거대현장이 대우성장에 일조를 했다는 것이된다.
대우가 어렵사리 리비아의 닫혀진 문을 열었을 때, 리비아의 국토개발사업은 한국업체들이 몰려있는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대략 6, 7년쯤 뒤져있었다. 그러나 대우의 진출과 더불어 국토개발건설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도로의 건설이 시작되자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오늘날 리비아의 총도로 중 상당부분은 대우의 손으로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인구 1천만이 밑도는 리비아에 15,000세대의 주택을 대우가 지었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이다. 이 리비아에 대우는 78년부터 96년까지 총 80억달러의 공사를 수주하여 대부분 마치거나 마무리 중에 있다.
대우가 리비아로의 진출도 따지고 보면 각국 도시에 퍼져있는 지사의 정보 덕이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의 발빠른 정보는 대우를 여타의 기업들보다 앞서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우의 리비아 건설수주는 특히 1981년부터 1984년까지의 4년간 월평균 1건의 대형공사와 2개월에 3개의 계속공사를 수주하는 엄청난 실적이었다. 이 기간동안 대우가 리비아에서 벌어들인 공사 이익금은 약 3,821억원에 달한다. 이러한 실적은 수주면에서 고도의 기술을 앞세운 선진국 건설업체와 저가를 앞세운 아시아 후발국 건설업체 및 발주국의 주국업체 보호정책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루어졌다. 그것은 철저한 공정관리, 최대한의 공기단축, 끊임없는 기술개발의 결실이었다.
국내에서도 대우의 비약적인 건설수주는 이어졌다. 국내 최대의 울산화력발전소 4, 5, 6호기 건설을 계기로 도약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보다 건실하고 국내외로 저력있는 회사로 발돋음 하기 위해 1981년 7월 22일 대우실업주식회사와 대우개발주식회사는 각기 이사회를 열고 양사의 합병에 결의했다.
1981년 9월 16일, 양사는 합병회사의 명칭을 ‘주식회사 대우’로 결의하고 통합회사 회장에 창업주 김우중 사장, 대표이사 부회장에 이우복 사장을 선임하면서 이를 증권감독원에 통보했다. 합병일은 1981년 11월 18일로 결정되었다.
합병 후의 자본금은 대우실업 자본금 408억원과 대우개발의 275억원으로 대형화했다. 합병은 대우개발이 대우실업을 흡수통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우가 갑작스럽게 모 기업인 대우실업과 건설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있는 대우개발을 합병한 이유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주식회사 대우의 탄생으로 대우의 해외에서의 평가가 달라졌다. 이는 해외에서의 기업에 대한 평가는 자본 또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는데, 미국, 일본 등 이름 높은 대회사들은 한국기업에 비해 자본금에 있어 십수배, 매출액은 우리나라 예산 총액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주식회사 대우의 자본금이 638억원, 약 1억 달러에 이르러 대우도 세계적 규모의 회사로 발돋음 하게 되었고, 자본의 대형화는 해외공신력을 한단계 고양시켜 훗날의 세계경영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나아가 자본의 대형화를 계기로 대우는 해외시장에서 거대한 외국기업들과 어깨를 겨루며 경쟁할 수 있게 되었고, 해외와 국내에서의 금융조달이 더욱 용이해짐에 따라 수주 능력과 판매 능력도 배가(倍加)시킬 수 있었다.
또 자본의 대형화는 자연스레 경영합리화를 이루었다. 두 회사가 합병됨으로써 조직 기구의 효율적 운용이라는 이점을 가져왔음은 물론 흔히 건설공사에서 취약점으로 나타나는 자재구매, 공급, 인력투입 등이 기동성을 이룰 수 있는 등 경영능력이 크게 높아졌던 것이다.
또한 해외공사 지급 보증 등 금융업무 측면에서 원활한 지원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고, 나아가 계속되는 해외수주를 위한 정보 획득에 무역부문의 해외지사 정보망을 유효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역부문에 있어서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플랜트 수출 등 건설 관련업무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건설부문과의 긴밀한 협조 체제가 형성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역부문과 건설부문의 관리체계와 조직이 통합됨으로써 경비절감이 이루어져 채산성 확보도 원활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