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창업이래 섬유수출로 성장해 온 대우는 1972년부터 종합상사를 지향하면서 비섬유부문으로의 진출을 모색, 개발부를 설치했다. 수출품 개발이 주목적이었지만 신규투자 활동을 또 하나의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투자활동의 하나로 대우는 1972년 9월 1일, 피혁제품 제조업체인 고려피혁공업주식회사를 인수했다. 대우는 고려피혁 인수 후 곧바로 낙후된 기계시설을 대체, 보완하고 품질향상과 생산량 증대에 박차를 가했다. 1973년 9월에는 대졸 기술사원을 대거 생산라인에 투입함으로서 생산과 업무활성화를 기한데 이어 연말에는 대우실업 개발부에서 담당하던 피혁 로컬 판매업무를 고려피혁으로 이관, 고려피혁으로 하여금 영업활동을 전개하게 했다.
고려피혁은 대우의 생산기술과 제품개발 노력에 힘입어 1974년 초부터 하루 600매의 원피를 안정적으로 생산케 되었고 판매와 관리도 정상화 되었다.
한편 혁화제품 생산계획에 따라 대우실업 부산 제3공장을 임차하여 제화공장 2개라인을 신설, 굿이어 웰트 스타일(Good-year Welt Style) 구두를 생산했고, 수출품인 부츠와 작업화, 군화 생산에 착수했다.
같은해 7월 고려피혁은 자본금을 3억원으로 증자하면서 신발제조 라인을 확충했고 야구장갑 생산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1974년 말에는 제화시설을 확충하면서 원피 투입 월 800매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추어 월간 제화 7,500족, 야구장갑 3만 7,000개, 핸드백 3만개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피혁 경기가 활발해짐에 따라 피혁업계는 과대하게 시설을 확장하고 생산을 늘렸으나 과당경쟁으로 일부 피혁회사가 도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피혁은 대우실업 세일즈팀과 긴밀히 협조, 1976년 수출실적 1,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976년 11월에는 부실화된 삼본기업이 가동을 중단하자 대우가 이를 인수, 고려피혁과 통합 운영케 되어 고려피혁은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피혁제품 제조업체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고려피혁은 대우의 계속적인 영업활성화 정책과 생산시설 확충지원에 힘입어 1978년에 5,900만달러의 수출실적으로 업계 1위를 차지하면서 피혁조합으로부터 피혁부문 최다액 수출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1979년에는 성남의 삼호상사(가발공장)를 매입하여 제화공장으로 개편, 제화 생산시설을 확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9년의 수출실적은 9,400만 달러에 달했고 군납을 포함하면 1억달러에 달하는 영업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1979년 후반에 시작된 원피가격 앙등은 해외수요의 급격한 감퇴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그동안의 생산시설 확장이 점차 경영압박을 가져와, 감량경영 체제로 모든 규모를 축소해야만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누적된 재고 처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경영정상화 작업에 돌입한 고려피혁은 조직 재편성, 재고처분등 경영쇄신에 적극 노력, 1982년부터 정상을 되찾았다. 1983년 5월 보건사회부장관상을 수상한 고려피혁은 그동안 휴업에 들어갔던 성남공장이 신사, 숙녀화 생산가동에 들어갔다. 1984년 5월부터 대우의 피혁제품 세일즈 부서를 고려피혁에 회사간 전보를 시킴으로써 세일즈, 생산, 관리가 일원화 되어 독립회사로서의 골격을 갖추고 경영정상화를 이루었다. 또한 1986년 8월에는 가죽의류 생산 공장인 구로공장이 가동에 들어가 그해 수출 1억불을 돌파했다.
. 고려피혁은 1986년 10월 29일, 그룹의 자생력 있는 기업의 독립경영 방침에 따라 대우에서 분리 독립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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