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대우의 섬유수출은 창업한지 8년밖에 안된 대우가 1975년 종합상사 지정을 받은 해를 전후하여 하나의 계기를 맞았다. 그것은 이제까지 양적인 팽창에서 질적성장으로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먼저 제품의 품질관리를 강화하여 전반적인 품질 수준을 끌어올렸다.
품질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73년 품질관리위원회가 편성되면서부터였다. 품질관리를 시작한 것은 당시 시어즈 로벅의 철두철미한 검사 시스템에 적응키 위한 것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우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자 그룹내 섬유관련 계열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본사의 강력한 통제와 품질관리가 이루어져, 제품의 질적향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덕에 점차 수입상과의 거래에서 체인스토어 바이어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덧붙여 1975년 10월, 자체 스타일실과 디자인실을 설치하고 전문가를 영입했다. 이는 수시로 세계 패션 현장을 방문하여 살아있는 패션 감각을 습득케하고 생산에 반영함으로서 시대감각에 맞는 제품을 개발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노력은 결과적으로 바이어에 의존하던 제품의 스타일, 색상 등을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1977년부터는 언더웨어, 반호센 등과 같은 고급 브랜드 바이어가 개발됨으로서 수익율도 더욱 높아져, 중화공으로 성장해가는 대우의 뿌리로서의 그 바탕을 더욱 탄탄히 해 나갈 수 있었다.
1976년, 제 2차 다국간 다종섬유류협정에 의해 대(對) EC 섬유류협상이 타결되어 EC지역에도 쿼터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이 때에도 대우는 한국 쿼터 량의 상당량(약 3분의 1)을 배정받았다. 이것 역시 1972년 설치된 독일 지사를 중심으로 현지 스톡 세일즈를 강화한 덕분이었다.
섬유 수출실적은 창업초기의 급성장에서 벗어나 완만하지만 꾸준한 성장을 계속했다. 지역별로는 1970년대 초반 미국지역에 치우쳐 있던 수출분포가 유럽지역의 수출증대로 이원화 되었으며, 쿼터 규제를 받지 않는 지역인 중동시장 개발로 삼원화의 양상을 띄기도 하였다.
경공업제품의 수출은 생산기반의 확충으로 더욱 양적 성장을 가져왔다. 일반상품의 경우 주로 대우실업 부산공장 또는 고려피혁 등의 생산시설 확충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개발상품의 경우, 신규투자 및 자금지원 형식으로 생산기반을 늘여나갔다.
그 결과 수출실적도 성장 발전되어 갔다. 경공업제품 분야의 주요 품목은 신발, 가방, 레저용품, 완구, 피혁제품, 농수산물, 가발, 가정용품 등이었는데, 특히 신발과 가방류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농수산물의 경우, 엄밀히 따지면 경공업제품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나 회사 영업구조상 경공업부문에 속하여 성장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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