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2-1-1-05 대우가 켜놓은 북방교류의 초록신호등

1981년 7월 22일, 대우개발과 종합상사 대우실업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대우개발과 대우실업을 합병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증권감독원에 통보, 공시함으로써 한 회사로 통합했다.
이어 9월 16일에는 합병 승인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렸으며 합병일은 1981년 11월 18일로 결정되었다. 합병된 새 회사의 이름은 ‘주식회사 대우’였다. 오늘날의 종합상사 주식회사 대우는 이렇게 태어났다. 이에따라 합병후의 자본금은 대우실업 자본금 408억원과 대우개발의 275억원이 합쳐진 683억원으로 대형화 되었다.
합병은 대우개발이 대우실업을 흡수 통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주식회사대우의 무역부문은 이때부터 해외신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중동지역과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동구지역에 지사를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1980년 수단타이어공장의 준공과 함께 해외투자자회사의 설립을 개시했다. 이어 1985년 인도네시아에 므수프탈산공장을 설립했고, 86년 벨기에 앤트워프 정유공장을 설립했다.
한편으로는 북방교류에 박차를 가하였다. 우리나라의 대(對)공산권 경제교류는 1970년대 이후 정경분리 차원에서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다. 이러한 경제교류의 여건조성으로 1973년 6월 23일 평화통일외교선언과 1975년의 공산권여행의 제한적 개방실시가 허용되었었다.
이에 맞추어 공산권국가들도 개혁 및 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중국의 경우 1978년 등소평의 등장과 함께 개방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여 1984년에 더욱 확대되었다. 소련연방도 1985년 고르바초프의 취임 이후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1988년의 서울올림픽과 7.7북방정책선언을 계기로 공산권국가들의 대한(對韓)인식이 변환되어 협력이 급격히 증대되었던 것이다.
헝가리에 무역사무소가 열리고, 체코, 유고, 폴란드, 동독의 문이 열릴 기미를 보일 때, 대우의 창업주 김우중 회장은 국내 종합무역상사의 사장들 1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대표단 단장을 맡아 중국 산동성을 방문하여 국가차원의 세일즈를 펼쳤다. 그리하여 쌍방간에 무역사무소 개설, 직항로 개설, 출입국 편의제공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간차원의 첫 합의각서를 교환하고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에 초록 등을 켜놓았다.
대우의 북방진출 노력은 1990년대 들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 소피아, 1991년 바르샤바, 하바롭스크, 1992년 타쉬켄트, 1993년 리페츠크, 키예프, 아마티, 1994년 부크레시티에 지사를 설치하고 세계경영의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대(對)공산권 국교수립연도
1989. 2. 1. 헝가리(공산권 국가와의 최초의 국교 수립)
1989. 11. 1. 폴란드
1989. 12. 8. 소련과 영사처 설치에 합의
1989. 12. 28. 유고슬라비아
1990. 1. 15. 알제리(제3세계 사회주의권 및 비동맹국의 주요국)
1990. 1. 17. 체코
1990. 9. 30. 소련
1991. 9. 18.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2. 8. 17 베트남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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