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정밀공업주식회사는 1981년 12월 19일 발족되었다. 지난 1973년 11월 준공되어 기본 소화기류를 생산하여 자주국방력 강화에 기여해 온 국방부 조병창이 새로 민영화 되면서 대우가 이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말 당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국영기업 민영화 시책에 의하여 국방부는 국방부 조병창을 민간기업 운영체제로 전환키로 결정하고 인수대상기업을 물색하여 대우그룹을 선정하기에 이르렀으나 최종 계약과정에서 정부와의 협의가 타결되지 않아 민영화 계획을 유보하게 되었다.
1981년에 들어서 다시 민영화 추진이 재개되어 그 해 5월, 정부의 최종 결정에 의해 국방부와 대우중공업(주)간에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6개월후 당사자 변경에 관한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여 인수자를 대우중공업(주)에서 대우정밀공업주식회사로 변경함과 동시에 12월 19일 법인설립 등기를 완료함으써 대우정밀공업(주)는 대우그룹의 일환으로서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으며, 1982년 1월 1일자로 대우중공업(주)의 정밀기계 공장을 인수하여 그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인수 첫 해인 1982년에는 민영화에 따른 경영운영상 다소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미국 콜트(Colt)사의 기술에만 의존했던 M16소총을 한국민의 체형과 지형에 적합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K2 한국형 소총을 개발 생산함으로써 신규수요창출에 의한 매출 증대는 물론 군사력 증강에도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해 12월에는 지난 10여년간 축적된 정밀 가공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용 디젤엔진용 연료 분사장치와 자체 개발에 착수하는 등 민수사업으로의 사업 영역 확대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1983년 10월 31일에는 그룹의 계열사간 통폐합에 의한 경영합리화 방침에 따라 주식회사 서진과 대우바브콕 주식회사가 대우정밀에 흡수 합병되었다. 당시 주식회사 서진은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에 위치한 회사로 자본금 92억 8,500만원에 1982년도에는 97억 4,400만원의 매출과 9억 900만원의 세후(稅後)순이익을 기록한 피아노, 벽시계 생산업체였다. 또 대우바브콕 주식회사는 인천직할시 북구 산곡동에 위치한 회사로 자본금 16억원에 1982년도에는 106억 1,800만원의 매출과 2,600만원의 세후순이익을 기록한 보일러, 산업기계, 화공장치 생산업체였다.
그리하여 1983년 11월 1일부터는 합병 3사가 단일회사로써 새로운 출발을 하여 회계, 자재, 인사등 관리면에서의 실질적인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경영의 다각화를 기함과 동시에 자본의 대형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나아가 개별제품의 성능개선과 기종 다양화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향후 성장을 위한 전략제품 개발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83년 10월 과학기술처의 인가를 받아 대우정밀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자동차부품 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쳐나가기 시작하였다.
대우정밀은 방위산업에서 배양해온 초정밀 가공기술을 토대로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하던 자동차부품 국산화와 외화획득을 통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세계적인 메이커들이 장악하고 있는 자동차부품 시장에 참여한 것이었다.
특히 대우자동차의 월드-카 프로젝트(World Car Project)와 관련하여 그룹내 자동차부품 사업을 총괄하는 회사로 지정됨에 따라 부품사업을 위한 장기 마스터 플랜을 수립,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왔으며 미국 공해 방지 기준에 합격한 티비아이(T.B.I) 시스템 카브레터(carburetor, 가솔린 엔진용 연료분사장치), 순수한 자체 기술로 독자 개발에 성공한 디젤 엔진의 심장부인 인젝션 펌프(Injection Pump, 연료분사장치), 내구성이 뛰어나며 성능이 우수한 쇽 압소바(Shock Absorber, 자동차 완충장치), 뛰어나 가공기술로 제조되는 스티어링 너클(Steering Knuckle), 오일 펌프 등 여러 가지 자동차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1984년 7월 부산공장의 기존부지내에 대규모 자동차부품 공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또한, 그해 6월과 그 이듬해인 1985년에는 자동차부품의 선진기술의 조기확보키 위해 미국 GM사와 대우정밀간 각각 50 %의 자본참여로 대우자동차부품(주), 대우HMS공업(주)를 각각 설립(현, 대우기전공업(주))하게 되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대우자동차와 국내 자동차 업계에 공급되는 한편, 미국 GM에 안정적 수출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세계 진출의 문을 열었다.
1986년 7월과 8월에 자동차부품 공장과 기술연구소 신축건물이 각각 준공됨으로써 자동차부품사업이 양산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어 1987년에는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자동차용 LCD용 계기판을 자체개발, 생산과 피드백 카브레터(Feed back Carbureter)의 전자제어 장치인 ECU의 국산화 개발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림으로써 자동차부품의 전자화 기술 축적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83년 10월 흡수 합병된 (주)서진의 여주 피아노공장은 그동안 이룩한 공장경영 정상화와 더불어 무역 환경의 호전과 제품 경쟁력 강화에 힘입어 피아노 수출이 급증, 1987년에 처음으로 천만불을 상회하는 실적을 거두었으며, 1988년 7월 13일에는 대우 로얄피아노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프랑스의 음악전문지인 디아파송(DIAPASON)이 주최하고, 세계 40여개국이 출품한 가정용 피아노 품질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여 세계정상의 품질임을 국내외에 입증시키므로써 한국산 피아노의 해외 진출의 성과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게 급성장하기 시작한 대우정밀은 1980년 후반들어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시련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9년 3월 31일, 지난 1988년 11월 23일 노조측이 단체협약 완전 쟁취를 위하여 전면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시작되었던 노사분규가 노사 양측의 합의서 공동날인으로 129일간의 장기화된 노사분규가 극적으로 타결되어 어려운 고비를 무난히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간에도 대우정밀은 1989년 6월 대우피아노가 일본공업규격인 JIS마크를 획득하여 세계시장의 품질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수출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자동차 부품사업에서도 자동차용 리모키(Keyless Entry System) 개발에 성공하여 애프터서비스용 제품의 첫 출시와 함께 1989년초부터 개발에 착수하였던 자동차용 파워 시트모터(Power Seat Motor)는 그해 10월 세계 최고의 품질 수준을 요구하는 미국 포드(Ford)사로부터 양산승인을 받아냄으로써 자동차부품의 해외사장의 첫 진출이라는 감격스러운 한 해이기도 했다.
1990년에는 대내외적으로 급격한 환경 변화속에서 생존을 위한 구체적인 경영혁신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위해 회사는 제2의 경영혁신운동인 “TOP(Total Open-minded Productivity Innovation)운동”을 전개, 경영전반에 걸쳐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이러한 “TOP운동”의 근본정신은 전 종업원의 자발적 참여가 성패를 좌우하고 남의 회사가 아닌 우리회사, 나의 회사로서 존속․번영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구개발부문에서도 그동안 전자부품사업확대를 꾸준히 추진하여, 1990년 1월에는 일본 칸토 세이키(Kanto Seiki)사와 자동차용 아날로그 계기판 기술제휴계약을 체결하여, 이를 바탕으로 대우자동차로부터 개발 요청된 V-CAR용 아날로그 계기판을 개발함으로써 명실공히 자동차 계기판 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생산기종의 다양화 및 사업다양화를 통한 매출액 증대에 일익을 기하게 되었다.
이어 1991년도에는 TOP운동의 지속적 추진에 힘입어 생산, 자재, 품질 등 공장혁신(TPM)은 물론 사무혁신(MI) 부문 등 경영전방에 걸친 뼈를 깎는 노력의 결실로 그 동안 대내외적으로 취약했던 가격경쟁력과 저효율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에 일대 혁신을 이룬 한해였다.
1992년 들어 대우정밀은 방산분야의 독점적 위치와 함께 국내 자동차 부품 종합메이커로서도 자리를 잡게 된다. 1991년 들어 국민차 보급에 따른 소형승용차 및 소형상용차용 부품개발에 성공함에 따라 199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동차부품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동차부품 애프터서비스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한 것이다.
1992년부터 국민차용 쇼바 및 오일펌프를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하였고, 가스쇼바의 양산 및 A/S시장에 진출함으로써 기존의 시장판도를 바꾸어 놓았으며, 최첨단 엔진시스템(MPI) 관련부품인 스로틀 보디(Throttle Body) 및 퓨얼 레일(Fuel Rail)의 양산을 개시하였다. 이와 아울러 파워 안테나(Power Antenna)의 양산과 함께 전자부품 특히 디지탈 계기판은 종전 프린스 차종에 장착이 한정되어 있던 것이 에스페로, 르망 등으로의 적용차종 확대에 따라 매출의 획기적인 신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화기류부문에서도 그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권총의 독자적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기존의 한국형 소총, 기관총 등과 함께 국내 유일의 종합 화기류 생산업체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의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수출용 모델인 DP-51(Daewoo Pistol) 및 DH-40(Daewoo Handgun)의 미국 상무성 특허취득 및 수출계약 체결 등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였고, 회사의 주력제품인 소총의 수출영역 확대를 위해 남미시장 등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였다.
이러한 급속한 회사의 발전에, 그동안 직접금융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갈망하였던 대우정밀은 당시 재무부로부터 기업공개를 어렵게 승인받아 1992년 12월 20일에 드디어 기업공개를 하였다.
12월 4일과 5일 양일간의 대우정밀 기업공개를 위한 신주 2백만주 공모(130억원)에 총 2,600억원이 몰려 평균 20대 1의 경쟁율을 보였다. 특히 우리사주조합실권이 한 주도 발생치 않았으며, 1993년 1월 20일에는 한국증권거래소에 첫 상장되어 근 한달여간이나 상한가를 보임으로써 많은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과 함께 회사의 경영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1993년 들어 회사는 자동차부품사업의 두들어진 외형성장에 힘입어 획기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이루었다.
회사의 주력사업의 하나인 방산부문에서 권총류의 미국시장의 적극적인 개척 및 소총의 수출영역확대를 통해 수출부문에서는 전년대비 50 % 이상의 높은 성장을 시현하여 많은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미 자리를 굳힌 자동차부품사업부문에서는 주납품업체인 대우자동차의 괄목할만한 매출신장에 힘입어 전년대비 40 %이상이 신장되어 호조세를 시현하였다. 회사의 주생산품중의 하나인 쇽 압쇼바와 스티어링 너클은 전년대비 각각 47.5 %, 71.6 %의 대폭적인 매출 성장을 이룩하여 매출성장을 주도하였고, 92년 신제품생산에 들어간 최첨단 엔진시스템(MPI) 관련부품인 스로틀 보디 및 퓨얼 레일은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년대비 3배 이상의 매출신장을 보였으며, 디지털 계기판을 위시한 전자부품(Car Electronics)은 26.2 %의 성장을 보이는 등 대우자동차 관련 부품이 전반적으로 괄목할만한 신장을 보였다. 이와 함께 가스 쇽 압소바A를 비롯하여 파워 안테나, 디지털 계기판 등의 애프터서비스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여 전년대비 70 %의 시장확대를 이룩하였다. 이처럼 자동차부품사업부문의 호조세에 힘입어 외형면에서 1,762억원의 매출을 시현하였다.
이와 함께 경영혁신운동의 대변신의 기틀을 마련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국내 유수기업도 감히 추진키 어려웠던 여력인원의 재교육을, ‘창업학교’를 운영하여 2개월씩 업무 순환으로 교육을 실시하여 기존 업무의 질적 향상 및 새로운 업무의 창출을 도모하였다.
의식개혁, 관리직무능력, 개선기법 3개 부문 총 26개 과목으로 편성하여 운영된 창업학교는 여력인력을 흡수하여 자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정예화 및 인재발굴을 추구하였으며, 현장인력을 풀 가동시킴으로 인적 손실을 제거하였고, 기업환경 변화에 대한 상시 적응 태세 견지 및 직장인으로서의 자세정립과 사명감 고취를 교육목적으로 하였다.
1994년은 완성차업계의 호조에 힘입어 자동차부품이 회사의 주력사업으로 위치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신규사업의 본격유치를 함께 이루었던 한 해라 볼 수 있다.
주거래업체인 대우자동차가 1993년부터 판매력 강화와 제품의 지속적 품질 향상, 애프터 서비스체계의 혁신에 따른 소비자 인식 개선 등으로 승용차 시장 점유율이 확대됨에 힘입어 자동차부품사업은 10 %이상 신장한 1,118억원 규모로 1994년 회사전체 매출액 1,913억원 대비 58.4 %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1994년 1월에 기술제휴를 체결하여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체제에 접어들었던 전자제어식 에어 백과 자동차도난방지용 전장품인 임모빌라이저(Immobilizer), 키레스 엔트리(Keyless Entry) 등의 출시로 그간 기계가공 및 조립품 중심의 자동차부품 사업이 전자화 부품사업으로의 구조개편이 이루어져, 앞으로의 자동차산업 전자화 추세에 대응한 고부가가치제품의 개발과 수익증대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방산사업은 한국형 고기능화기 개발 및 납품과 미주를 중심으로 한 수출확대 노력에 힘입어 전년대비 24.4 % 신장한 447억원의 매출을 시현하였다.
그동안 신규사업의 유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1994년 9월 29일에 독일 ZF Getriebe GmbH사와 자동변속기에 관한 기술제휴를 맺음으로써 숙원사업이었던 대형 신규사업을 유치하여, 1996년부터 유압식과 전자식 자동변속기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특히 1994년 10월 19일에는 에어 백 조립 생산라인이 본격 가동됨과 동시에, 10월 28일에는 독일 지멘스(Siemans)사와 에어 백 ECU(전자제어장치)에 관한 기술협정 조인식을 가졌다. 또한 11월 30일에는 미국 미시건주 소재 세계 제1의 자동차 연료장치 회사인 왈브로(Walbro)사과 연료 펌프 합작투자계약 조인식도 가졌다.
세계 제1의 자동차용 연료펌프 제조 판매회사인 동사와 49:51의 합작 비율로 1994년 12월에 설립된 (주)한국자동차연료시스템(Korea Automotive Fuel Systems Ltd.)은 연료펌프, 연료센서, 브라켓트 등 연료공급장치와 경량신소재 연료탱크 등을 생산,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국내자동차회사에 공급하게 되었다.
이로써 전자식 연료분사장치의 핵심기술인 연료펌프, 연료센서, 연료저장기능을 갖춘 새로운 방식의 기술을 채택한 일체식 연료공급장치를 생산하게 된 것이었다.
충남 조치원 공업지역에 연산 100만대 생산능력을 갖추고 95년 7월부터 시험생산되기 시작한 연료펌프는 펌프, 센서, 연료저장기능을 갖춘 최첨단 일체식 연료공급장치(In-Tank Reservoir Type Fuel Pump)로서 대우자동차가 국내 최초로 1997년 2월 시판할 누비라에 적용되게 된다.
1995년도 들어 회사는 내부적인 경영혁신 성과와 함께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한 해였다. 우선 방산부문에서는 국방부 군 전력 유지를 위해 책정되어 있던 물량을 차질없이 수주, 납품하였고, 향후 내수부문에 있어서는 중장기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였고, 수출부문에서도 그동안 방산 부문의 수출시장개척의 노력으로 해외에서 대우정밀 제품의 인지도가 상당 수준 제고됨에 따라 수출시장에서도 전망이 매우 밝아졌다.
한편, 자동차부품부문에서는 주 납품업체인 대우자동차의 해외현지화 확대와 함께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수출물량의 급성장에 힘입어 조향장치부품, 완충장치부품, 엔진부품, 전장품 등 기존제품은 전년대비 34 %의 매출 신장율울 보였으며, 이와 함께 첨단기술의 에어 백 시스템, 임모빌라이저와 키레스 엔트리 등 신규사업의 성공적인 양산 실현으로 주문자생산용 자동차 부품은 전년대비 38 %라는 괄목할 외적 성장을 이룩하였다. 또한 가스 쇽 압소바를 비롯하여 자동 안테나, 리모키(Remokey) 등을 판매하는 애프터서비스 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영업 신장세를 유지하였으며 시장 점유율면에서도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처럼 방산부문의 안정적 성장과 자동차부문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힘입어 외형면에서 전년대비 18 % 성장한 2,250억원의 매출을 실현하였다.
또한 1995년 7월 25일, 기술연구소에서는 세계적인 자동차 전장품회사인 독일의 VDO사와 임모빌라이저 기술이전 계약서의 조인식이 있었다.
이는 유럽 수출용 차량에 전량으로 장착되는 도난방지 시스템으로 1996년말부터 생산에 들어가 연 100억원의 매출증대가 기대되고 있다.
이로써 회사는 DECS, 키레스 엔트리, 에어 백등과 함께 그룹내 자동차 전자 부품 분야의 선도적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1995년 9월에는 독일의 Fichtel & Sachs AG사와 자동변속기의 주요 핵심기술인 자동변속기용 Torque Converter의 기술제휴 조인식이 있었으며, 독일 지멘스사와는 자동변속기용 전자제어장치(ATCU)의 기술제휴 조인식을 하는 등 1995년은 선진기술의 조기확보를 활발히 진행하였던 한 해였다.
그리고, 1995년 5월에는 자동변속기사업을 위해 보령공장 건설을 착수함과 동시에 11월 18일에는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내 서스펜션 모듈(Suspension Module) 사업 공장 건설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량식도 가졌다.
또한 11월 29일에는 K4 고속유탄기관총 개발팀이 군 전투력 증강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공로표창과 연구개발장려금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1996년은 대우자동차의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수출쿨량의 급성장과 폴란드 대우-FSO, 루마니아 로대, 우즈벡 우즈-대우 등 현지 생산공장의 본격 가동으로 인한 KD물량의 대폭적인 증가, 그리고 하반기부터 출시된 신차종의 판매 급성장에 힘입어 조향장치부품, 현가장치부품, 엔지부품, 전자부품 등의 기존제품들이 전년대비 35 %의 신장율을 기록하였으며, 가스 쇽 압소바(Gas S/A)를 비롯하여 리모키(Remokey) 등을 판매하는 애프터서비스 시장에서도 지속적인 영업신장 전략으로 전년대비 39 %의 괄목할 만한 매출신장율을 유지한 해였다.
또한 1996년은 대우정밀의 미래를 가름할 만한 자동차부품사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요구하는 대규모 신규사업인 자동변속기 사업과 서스펜션 모듈(Suspension Module)사업이 본격 가동에 들어간 해이기도 하다. 3월 25일 부산공장에서 사업을 추진해 오던 자동변속기 사업본부가 보령공장으로 이주, 근무를 개시함으써 보령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4월 1일에는 연구소 설립인가를 득함으로써 보령기술연구소가 자동변속기 국산활의 산실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4월 30일에는 군산공장이 준공되었으며, 7월 1일에는 보령공장이 공장준공을 필함으로써 1단계 공장건설을 마무리함과 더불어 생산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11월에는 군산공장에서 누비라용 서스펜션 모듈의 양산이 개시되었으며, 12월에는 보령공장이 본격 생산체제에 돌입하게 되어 대우자동차로의 출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6년은 명실공히 세계화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된 한해였다. 그룹의 국내외 250만대 완성차 생산의 세계화 전략에 부응하여 인도와 중국에 합작법인 설립을 마쳤으며, 폴란드에도 합작법인 설립을 계획해 놓고 있다. 1996년 3월 22일 당사는 인도의 자동차부품업체인 리코(RICO)사와 합작으로 뉴델리 근교 노이다시에 자동차 부품업체인 『RICO-Daewoo Precision Industries LTD.』 설립에 합의하고 인도 현지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RICO-DPI사는 납입자본금 6백만달러, 총투자금액 1천5백만 달러로 대우정밀 74 %, 리코 26 % 지분으로 대우정밀이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9월 27일 RICO-DPI사는 설립되었으며, 1997년 5월부터 쇽 압소바, 스티어링 너클, HVAC, 콘트롤 스위치, 오일 펌프 등 자동차부품을 본격 생산해 대우자동차의 인도 현지공장인 『DCM-대우』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당사의 합작파트너인 리코사는 모터사이클부품, 오일펌프, 클러치 빔 브레이크 시스템 등을 생산하는 인도 유수의 자동차부품 회사로 인도현지의 DCM-대우, 마루티-스즈키, GM, 히너로 혼다 등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우정밀은 RICO-DPI사 설립을 시작으로, 6월에는 중국의 산동객차유한공사(SAC)와 합작으로 산동성 위해와 청도에 자동차부품업체 『산동(대우)객차유한공사』 설립에 합의하고 중국 북경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산동-DAC사는 납입자본금 1억불, 총투자금액 2억5천백만불로 대우 75 %(대우정밀 25 %), SAC 25 % 지분으로 대우가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7월 30일 설립된 산동-DAC사는 쇽 압쇼바, 스티어링 너클, 엔진 콤포넌트, HVAC 콘트롤 스위치 등을 샌산하게 되며, 1999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이와 함께 당사는 폴란드에도 합작회사 설립을 추진하여 1997년 2월 3일 대우-FSO와 합작으로 Ciechanow에 자동차부품업체 『DPI-ZCS Poland LTD.』 설립에 합의하고 바르샤바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DPI-ZCS Poland LTD.』는 납입자본금 2천만 달러, 총투자금액 4천 7백만 달러로 대우-FSO가 51 %, 당사가 49 %의 지분참여를 하게 되었다. 1997년 4월에 설립 예정인 『DPI-ZCS Poland LTD.』는 스티어링 너클, 인스트루먼트클러스터(Instrument Cluster), HVAC 컨트롤 스위치, 연료탱크 등을 생산하게 되며, 1997년 12월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1996년에는 해외 선진업체들과의 기술제휴도 활발히 추진되어 8월 27일 미국 얼라이드 시그널(Allied Signal)사와 에어백 시스템에 대한 라이센스 및 기술협조 계약 조인식을 대우정밀 본사 상황실에서 가졌다. 이날 조인식을 계기로 현재 설치중인 슬레드 테스트(Sled Test) 설비의 운용을 통한 시험 및 개발능력을 갖추게 됨은 물론, 운전석과 조수석의 에어백 모듈 외에 뒷자석에어백, 측면 앰팩트 에어백 모듈(Side Impact Airbag Module)을 개발, 생산할 예정으로 되어 있어, 명실공히 에어백 사업은 제2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9월 18일에는 영국 AP Kongsgerg사와 클러치페달 조작없이 변속이 가능한 전자식 자동클러치 시스템에 대한 라이센스 및 기술협조 계약 조인식을 AP Kongsberg社 스티그 트로드볼드 사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우정밀 상황실에서 가졌다. 12월 18일에는 일본 야마다(YAMADA)사와 XS-6 엔진용 오일펌프 시술제휴 조인식이 있었다. 야마다사는 오일펌프를 혼다자동차에 전량 공급할 정도로 기술지명도가 있으며, 당사는 이번 기술제휴 동안 기술자료 및 노하우를 구축하여 향후 독자모델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1996년 대우정밀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21세기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던 경영혁신운동인 ‘TOP운동’의 제2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전부문에 있어서 획기적인 원가절감 및 경영자원의 효율적인 재배치의 효과를 이룩하였으며, 자도차부품 ISO9001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대외적으로 품질을 보증하는 품질 경영체제를 이루게 되었다. 12월 5일 당사는 서울사무소에서 한국표준협외 품질인증 센터로부터 쇽압쇼바, 스티어링너클, 엔진부품, 에어백, 전장품, DC모터 등 전 자동차부품에 대한 ISO9001품질시스템을 기반으로 해서 1997년에는 QS9000 인증을 계획하고 있는 바, 이로써 당사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품질시스템의 수립으로 제품의 품질수준에 대한 국제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