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말에 일어난 제2차 오일 쇼크의 여파로 국제경기는 깊은 불황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외의존도가 큰 국내경기는 국제원자재가의 급등, 고금리, 국제 수요 감소,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등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79년 10.26사태 이후 전개된 일련의 국내 사회여건의 급변은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서 커다란 암영을 드리워 투자심리와 생산활동이 극도로 위축됨으로써 국내경기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들어 1980년의 국내경제는 1966년 이래 최초로 6.2 %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불황의 여파는 기계업종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 불황의 충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거의 모든 기업들이 감량경영을 전개하는 등 비상 경영활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즈음 대우중공업은 사업영역이 크게 축소되는 또다른 충격을 입게 되었다. 1980년 8월 발표된 중화학투자조정 조치에 의해 엔진사업부문에서는 산업용 및 선박용 디젤엔진에 대한 사업권을, 중전기 사업에서는 견인전동기에 대한 사업권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각종 철구조물과 산업설비를 생산, 공급하던 산업기계본부가 그룹정책에 의하여 옥포조선소 건설을 추진중이던 대우조선공업(주)로 이관되었다. 이러한 사업영역의 축소중에서도 회사의 주력사업이던 엔진사업에서의 타격이 특히 커서 1980년의 엔진 생산실적은 전년도에 비해 40 % 이상 격감되었다.
또한 1981년 2월에 발표된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에 의해 대우자동차가 중소형 트럭과 버스의 생산을 중단하게 됨에 따라 이를 납품하던 회사의 디젤엔진은 수요처를 상실하여 더욱 생산이 감소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1년의 디젤엔진 생산실적은 1980년에 비해서 32 %, 1979년에 비해서는 60 %가 감소하는 타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회사를 둘러싼 경영환경이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회사는 소극적 경영으로 현상유지에 안주하지 않고 ‘어려울때일수록 강하다’는 대우의 정신을 살려 오히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으로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아가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를 위해 우선 불황의 긴 터널에서도 견뎌낼 수 있도록 기업체질을 개선하고 자생력을 배양하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경영합리화 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여 이를 회사의 모든 부문에 적용시키는 전사적 품질관리운동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여러가지 신규사업들을 과감히 전개하여 사업영역의 확대를 도모하는 한편,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내외 경쟁체제에 대비하여 마케팅 능력 배양에 주력하였다. 또 회사발전의 기본적 바탕이 되는 연구개발활동을 활발히 추진하여 제품의 고급화와 기종다양화를 이룸으로써 시장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확대하는 한편, 미래지향적 신기술 개발에 참여하여 1980년대 후반을 향한 새로운 포석을 전개해 나아갔다.
MIPA(Management Improvement Plan for Anti-recession)는 ‘불황극복을 위한 경영합리화 운동’ 으로서, 전 종업원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고 내부관리의 합리화를 도모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불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는 취지 아래 1980년 7월 1일을 기하여 시행되었다.
이러한 MIPA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추진수단이 TQC(Total Qualty Control)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추진하는 바는 회사의 전 부문에 걸쳐 품질관리 운동을 전개하여, 생산부서 뿐 아니라 지원 및 관리부서에서도 품질이 곧 경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개선운동을 전개해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