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그러나 제3차 경제개발 계획과 관련, 중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더 절실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노동집약 산업이자, 종합조립산업으로서 해운․기계 등 전후방산업의 파급효과가 매우 큰 조선공업은 우리실정에 적합한 산업으로 향후 조선경기 회복시에는 국제경쟁력이 충분할 것으로 판단하여 정부는 세번째 방안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업주체를 물색하던 중 1978년 8월 국내기업중 경영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자금력이 풍부한 ‘대우’를 선택, 결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우에서는 당시 어려운 여건과 조선불황에 따른 장래 사업성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적극 호응하고, 선박류를 비롯한 중공업 제품 수출 강화를 위하여 창업주 김우중 당시 대우실업 사장의 과감한 결단력으로 옥포조선소 건설사업을 결정하였다.
옥포조선소 건설현장을 인수하기로 합의한 후 대우에서는 이의 인수를 위한 준비를 하는 한편, 옥포조선소의 건설과 향후 조선산업을 영위할 법인체 설립을 서둘러 1978년 9월 26일 자본금 1천만원으로 『대우조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새로 설립된 대우조선은 정부 및 대한조선공사와 인수인계 작업을 계속하여 옥포조선소를 정부측의 한국산업은행과 대우의 공동출자로 설립한다는 방침을 결정하였으며, 또한 조선소를 신조선, 수리조선, 플랜트 및 산업기계를 복합생산하는 종합기계공업단지로 육성키로 정부와 대우그룹이 공동 합의한 후 폐허상태에 있던 옥포조선소 건설현장을 1978년 10월에 인수하고 건설사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인수팀은 구 아주국민학교(현 서문 연수관 위치) 교실을 빌려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인수작업을 펼침과 동시에 건설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1월 6일 열린 제 45차 경제장관협의회에서는 대우조선의 종합기계공단 건설을 위한 지원 방안을 의결, 옥포조선소 건설사업이 국가적인 사업임을 확인했다.
창립시 188명이던 종업원이 연말엔 251명으로 늘어났으며, 자본금도 연말까지 (주)대우 93억원, 대우중공업 37억원, 한국산업은행 124억원을 출자하여 총 254억원으로 늘어났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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