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옥포조선소 도약의 해’였던 1981년. 연초 조직개편(4본부 8실 53부 7담당 1소 4공장 1조립장 1사무소 1출장소 3지사)을 시작으로, 조선소 건설 마무리 공사에 고삐를 당겨, 4월에는 100만톤급 제1도크를 완공한데 이어, 9월에는 900톤 골리아스 크레인 설치를 완료함으로써 옥포조선소 건설의 대역사를 끝낸 해였다.
10월 17일에는 내외귀빈 8백여명 및 전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대망의 종합준공식을 갖고 세계시장 및 해운업계에 옥포조선소의 가동과 출범을 알렸다. 또 이날 조선소 건설공사와 병행하면서 건조한 노르웨이 WESTFAL-LARSEN사로부터 수주하여 첫 건조한 화학제품 운반선 2001호선(BOW PIONEER)와 2002호선(AUSTANGER)의 명명식도 같이 거행됐다.
다목적 옥포조선소의 완공으로 우리나라 조선능력은 단숨에 280만톤 세계 10위에서 4백만톤 세계 5위의 조선국으로 급부상했다.
수주도 계속돼 한국 글로벌상선과 범양상선의 6만톤급 B/C 각 1척과 인도네시아 셋코(SETCO)사의 1만7천5백톤급 제품운반선(Product Carriers) 2척 등 상선 4척과, 미국 듀얼 오프쇼어(Dual Offshore)사의 승강식 시추선(Jack-up Drilling Rig) 2척(3301/3302호선) 등 5척의 시추선을 수주했다.
플랜트에서는 STP를 비롯하여 산기 6건, 플랜트 1건, 철구 1건 등을 각각 수주했다. 특히 미국 벡텔사의 해수처리 플랜트(STP : Seawater Treating Plant)는 당시 단일품목으로는 수출사상 최고액을 기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수선에서는 첫 함정인 PCC(초계함)을 수주했다.
미국 휴스턴 및 일본 동경지사가 설립됐으며, 항공부를 신설하고 BELL-212헬기를 운항하기 시작했다. 각종 규칙과 규정이 착착 제정됐고, 각 분임조의 전사적 품질관리(TQC)활동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으며, 연말엔 대대적인 품질관리 촉진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조선기본설계부에 연구개발팀을 신설했고, 이어 기술개발위원회를 설립했다.
직원 52쌍의 합동 결혼식이 있었고, 연초 3,500명이던 직원도 연말엔 8,000명으로 늘어났다. 연말까지 출자된 자본금은 1천억원을 넘어섰으며, 출바비율은 대우그룹이 57.2 %, 한국산업은행 42.8 %였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매출 누적액은 1,405억원이었으며, 경상이익은 12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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