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건설공사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자, 대우는 1982년을 대우조선이 자립하기 위한 ‘경영전반의 성숙과 토착의 해’로 잡고, 생산․인원․조직․시설 등 대규모로 팽창한 살림살이를 운영하는데 지혜를 모아나갔다.
수출 1억불 탑을 수상하였고, 최초의 수주선박이자 최초의 인도선박인 노르웨이의 화학제품운반선 ‘BOW PIONEER’호(2001호선)가 ‘1982년 세계 최우수선박’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특히 국내제조 선박이 세계 최우수선박으로 지정되기는 처음이어서 더더욱 관심을 모았다.
세계 조선계약 사상 단일규모로는 최다액수로 기록된 5억7천만 달러 상당의 유나이티드 스테이트(U.S) 해운사의 컨테이너선 12척을 수주한 것을 비롯, 한국최초의 반잠수식 시추선(3008호선)을 한국석유시추(주)로 부터 수주하였다. 플랜트에서는 국내 최초의 모듈(Module)공법에 의한 사우디의 저밀도 폴리에틸렌 플랜트(LLDPE)를 비롯해 플랜트 2건, 산기 15건, 철구 1건을 수주했다. 특수선박으로는 특수선 두번째 함정(7002호선)인 PCC 1척을 비롯, 아랍에미레트 NPCC사의 1,000톤 크레인 대형바지선(7801호선), 인도 ESSAR사의 S/V(Supply Vessel) 5척(7901~5호선)을 수주하기도 했다.
수주 및 영업관리를 위해 1982년에만도 홍콩, 뉴욕, 다만, 쿠알라룸푸르, 봄페이 등에 지사가 차례로 설립됐다.
본격적인 생산활동을 통해 1도크에서 노르웨이에서 수주한 화학제품 운반선 2척, COT 3척, 반잠수식 시추선 3기, 승강식 시추선 1척 등을 건조해 진수하였다. 이중 화학제품 운반선 3척과 원유운반선 1척 및 반잠수식 시추선 1기를 성공리에 인도했다. 생산량도 81년 대비 대폭늘어난 25만 8천 CGT를 생산하였다.
특히 12월 한달 동안에만 해수처리플랜트(STP) 명명식, 1도크 3배치 진수, 화학제품운반선(2001호선) 최우수선박 지정, 반잠수식 시추선(3001호선) 인도, 정유운반선(5001호선) 명명식 등등 바쁘고 바쁜 한달을 보냈다.
한편, 해양사업 의장부서장들이 솔선수범하여 기한내 인도 결의문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이 운동이 전사적으로 전개됐고, 시범공장제가 도입돼 전사로 파급 확산되기도 했으며, 정신재무장을 위한 포커스 훈련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본격적인 생산활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2도크 축조 등 건설공사 또한 계속됐다. 플랜트본부와 특수사업본부가 신설되고, 자재관리 온라인 시스템이 개발 및 시행됐으며, 워드프로세스가 설치 가동됐다. 연말엔 선박해양설비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밖에 82년에는 대우국민학교가 개교했고, 옥명아파트 200여 세대, 옥림아파트 2,000여세대를 분양하기도 했다. 또 각종 축구대회, 야구대회, 테니스대회 등 수많은 운동경기가 치뤄졌고, 65쌍의 사내 합동결혼식도 있었다. 9월에는 옥포공영(주)가 설립돼 생산업무와 공단지원업무를 분리 운영하게 됨으로써 주거환경 조성과 복리후생 업무를 보다 전문화 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