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해운업이 계속 침체현상을 보임에 따라 그 직접적인 영향하에 놓여 있는 각국 조선소들이 자구책으로 기존시설의 감축, 생산성 향상 및 인원감축을 통하여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다. 다행히 시황은 탱크선을 중심으로 회복조짐을 보였다.
대우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계속해온 MAST 운동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6.29선언의 여파로 전국적인 노사분규의 열풍이 회오리치는 가운데 조선에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였다. 이 초유의 분규과정에서 1명의 사우가 사망하고 20여일 동안 420억원의 조업중단 손실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노사분규의 여파로 영업과 생산에 직접적인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업부문에서는 노후성 해체량 증가, 해운운임 상승, 선가 상승 등 조선호황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크게 떨어진 생산성은 3개월 이상의 공정지연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인도시기를 맞추지 못해 선주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일감 확보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89년에 들어와 대우는 그룹차원의 조선정상화 조치와 대국민, 대정부 호소와 함께, 노사가 생산에 매진하여 창립 이래 최고의 생산성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협상의 바른 방법을 정립하지 못한 노사문제는 여전히 회사경영의 주요한 과제였다.
그 여파로 5600억원의 매출목표액이 4000억원의 실적을 기록하였고, 급기야 상당히 많은 적자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 길고도 벅찬 역경속에서도 대우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4월부터 창업주 김우중 회장이 옥포에 상주하면서 전사원들과 대화를 계속해 나갔고, 수많은 직원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희망을 주고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하여 후생복지, 안전, 건강에 관한 사항 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개선점과 문제점에 관해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더하여 훌륭한 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끊임없이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하여 조선업이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되었고, 그룹사 자구노력 등을 골간으로 하는 정부의 정상화방안이 마련되어 시련을 극복할 발판이 마련되어갔다.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연산 24만대 규모의 경승용차 사업, 중기제조사업 등도 시작됐으며, 자재관리의 구매관리의 혁신, 사무실 축소와 소모품 절감 등 원가절감과 인력정예화 노력이 과감히 전개됐다. 여기에다 8억달러 상당의 선박을 대폭 상승한 가격으로 수주하는 데 성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