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대우가족의 조선살리기 운동과 창업주 김우중 회장의 옥포상주로 조선은 나날이 달라졌다. 그리하여 1990년 11월 들어 창사 이래 첫 월단위 흑자를 기록했다.
기술면에서의 NSC를 근간으로 공법개선과 정도관리, 용접자동화 등 생산기술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작업표준화 작업이 광범위 하고도 치밀하게 추진됐다. 여기에 한국적인 전사적 품질관리(TQC) 라 해도 손색없는 반생산회의가 도입되기도 했다.
관리면에서도 MI활동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대우 전 가족사에 전파돼 대우그룹 관리혁명을 낳기도 했다.
저 멀리 1978년 창립시절부터 흑자달성이라는 말만큼 가슴벅찬 말은 없었다. 부채상환능력 상실, 재기불능, 적자기업의 대명사 등, 1988년부터 1989년 산업합리화업체 지정을 전후로 대우조선인 아니 대우인 모두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적자기업, 문제기업이란 닉네임들. 여론의 난도질을 당해야 했던 대우조선이 드디어 1991년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희망은 향후에도 연속적인 대형 흑자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1987년 이후 매년 단골 분규사업장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던 노사관계가 첫 무쟁의를 기록, 끝이없을 것으로 보이던 노사분규가 사라져 노사안정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소득이었다.
또한 회사의 미래가 밝아지는 가운데 91년, 전사원 거의가 주주가 됐고, 주주인 종업원들은 지속적인 흑자를 확신하면서 기업공개의 꿈을 키웠다.
1993년들어 조선경기가 탱커선을 중심으로 본격회복되기 시작했다. 또 적극적인 추진으로 사상최대의 수주실적을 기록하였다. 1993년 한해 조선부문만 총54척3백85만톤(G/T) 28억5천만불을 수주하여 수주부문 세계 1등 조선소를 실현하기도 했다.
1994년 대우중공업과의 합병을 통해 보다 많은 연관기술과 다양성으로 세계진출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어, 종합적인 1등 조선소 건설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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