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1988년은 대우전자가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시작하고 매출 1조원(수출 6,480억원, 내수 3,640억원)을 달성하는 등 국제적 가전메이커로 발돋움한 중요한 한 해였다. 그동안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문을 인수하여 종합가전업체로 성장한 대우전자는 1987년 가전업계 최초로 대리점 1000개를 돌파, 국내 최대 규모의 가전대리점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내수시장에 대한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고 판단한 대우전자는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하게 되었다.
대우전자는 1988년 소련의 레닌그라드 전자쇼 참가를 필두로 국내 최초로 중국 푸젠성에 냉장고 공장을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하였다. 국교가 수립되기 전에 설립된 푸젠성 냉장고 공장은 중국에 대한 국내 기업 최초의 직접투자라는 것 외에도 향후 중국시장 공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대우전자는 곧이어 6월에 프랑스 롱위시에 전자렌지 공장을 설립함으로써 두 번째 해외 생산기지를 갖게 된다. 대우전자 제품을 수입 판매하고 있던 프랑스 JCB사와 51대 49의 비율로 합작 설립된 롱위 전자렌지 공장은 연간 3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1991년부터 흑자경영을 시작으로 프랑스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대우전자는 프랑스 롱위 전자를 발판으로 1991년 3월에는 파리에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1992년 4월에는 파멕에 종합가전단지를 잇따라 설립하였다. 또한 대우전자는 1988년 11월에 국내 가전업계 처음으로 영국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지역에 100% 단독투자, 연산 50만대 규모의 VCR공장을 설립함으로써 프랑스에 이어 유럽 생산기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였다.
1990년에 들어와서는 역시 국내 가전업계 최초로 미얀마에 종합가전단지를 착공하고 멕시코에 소로나에 칼라TV공장을 설립하였다. 미얀마 종합가전단지와 멕시코 칼라TV공장은 내수판매보다는 동남아와 북미라는 거대시장을 겨냥한 생산기지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어 1992년에는 스페인 바로셀로나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판매법인을 설립하였으며, 역시 같은해에 프랑스에 브라운관공장을 설립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1988년 11월 제1회 전국 IE(Industrial Engineering)대회에서 대상(기업체 부문)을 차지하였으며, 같은해 12월에는 광주 회전기 공장을 완공하였다. 총 2백억원을 투입하여 완공한 광주 회전기공장은 건평 1만 5천평 규모로 세탁기 연 90만대, 선풍기 50만대, 가습기 60만대, 진공청소기 40만대, 가스기기 50만대 등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이로써 기존 인천공장에서 생산하던 세탁기를 광주공장으로 이전하여 인천공장은 냉열기 전문 생산공장으로 전문화했다. 그리고 선풍기 등 소형제품을 같이 생산하던 광주 주방기공장도 전자렌지 전문공장으로 전환함으로써 구미의 TV, VCR, 컴퓨터 등 첨단전자제품 생산공장, 주안의 VCR데크공장과 함께 지역별, 공장별 전문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91년 5월 마포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한 대우전자는 ‘품질혁신의 해’라는 기치아래 일등상품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대우전자가 일등상품의 지속적 개발에 매진하려고 한 것은 소비자가 마음놓고 선택하여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등상품만이 대우전자의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1991년과 1992년에 연이어 임팩트TV, 공기방울 세탁방식의 ‘파워 세탁기’, ‘초간편’ 예약녹화방식의 VCR, 저소음진공청소기, ‘세마치 장단’ 내장의 대우디지털피아노, 국내 최경량․최소형 8mm방식 VTR 의 개발을 이루어냈다. 특히 공기방울 세탁기의 경우, 세탁기와 같은 일반 가전제품 분야에 순수 우리기술을 접목시킨 것으로서, 기존 세탁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세탁방식으로 평가받아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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