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대우통신은 국내 시장의 불경기속에서 회사 매출액도 전년대비 소폭 증가한 2,110억원 당기순익은 오히려 줄어든 34억원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89년에 인수한 미국 컴퓨터 판매회사인 리딩에지사가 흑자로 전환됨에 따라 미국시장에서의 판매가 본괘도에 진입하였으며, 이란과는 TDX-1B 2만회선 350만달러에 이른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교환기 수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아울러 9월부터 관리혁명 운동인 뉴 웨이브(NEW WAVE) 3개년 운동을 전개, 첨단 산업분야 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추진하였다.
그 원년인 90년을 뉴 웨이브(New Wave) 운동의식을 조직 전반에 확대하기 위해 ‘경영목표 달성의 해’로 정하여 인력, 조직, 원가부문에서 최적화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관리혁명운동은 조직을 정비하고 인력을 정예화하여 정보통신산업에서의 급속한 기술진보 추세에 보조를 맞추며, 동시에 시장에서의 요구를 충족하는 제품을 신속히 공급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정보통신업계의 선두주자로 성장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1991년의 국내 정보통신업계는 전반적인 내수경기 침체 지속과 국제경쟁력의 악화로 인한 수출전선에서의 고전 등으로 성장추세가 현저히 둔화된 모습을 나타냈다. 이러한 가운데 대우통신은 내실안정, 기술력과 영업력 등을 배양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런 가운데 대우통신은 서울역에 있는 대우빌딩을 종합적인 연구메카로 육성하기 위한 그룹의 방침에 따라 본사를 양재동 삼호빌딩으로 이전 하였다. 그리고 컴퓨터 및 사무자동화분야 개발부문이 통합되어 「상품개발센타」가 대우센타에 신설됨으로써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제품군들을 중심으로 개발력을 집중해 나갔다. 그동안 그룹내 전자와 통신으로 양분되어 있던 컴퓨터 사업을 10월말에 대우통신으로 일원화함으로써 그동안 국내 마켓셰어 1위를 고수해왔던 컴퓨터 사업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수출부문에서는 1990년 이란정부와 수출계약을 체결한 전전자식 국설교환기 TDX-1B 2만회선을 9월에 성공적으로 선적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밉스사와 「32비트 R3000 및 64비트 R4000 RISC CPU의 개발과 생산에 관한 기술협력계약」을 맺어 국내외 정보통신산업계의 기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기반기술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1987년부터 주요 국책과제로 개발을 진행해 온 첨단 중형컴퓨터 타이콤과 국설 대용량교환기 TDX-10의 개발 성공은 완전 기술자립과 본격적인 시스템수출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성과였다. 그리고 일본 미타 사와 기술협력관계를 구축, 복사기 사업을 새로이 시작함으로써 기존의 컴퓨터, 반도체, 통신기기분야외에 사무자동화기기 업체로서의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1992년도에 대우통신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한 해였다. 매출액은 전년대비 43 %나 성장한 3,814억원을, 당기순이익은 59 % 성장한 66억원을 기록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2월에는 지난 1990년말에 수출 계약을 체결한 이란 TDX-1B 2만회선 개통식을 가졌으며, 8월에는 사내 교육 및 사외 직업훈련을 목적으로한 직업훈련원(소래연수원) 개소식을 가졌다. 아울러 9월에는 통신과 전자의 서비스조직을 일원화, 전국에 17개소로 분산되어 있던 컴퓨터 및 사무자동화 서비스 조직을 7개 TSC(Total Service Center) 및 52개 지역센타로 강화하였다. 또한 프랑스 파리에 「대우텔레콤유럽(Daewoo Telecom Europe S.A.R.L)」을 설립하여 對유럽 판매활동을 강화해 나갔다.
그간 회사의 대표적인 중점 사업부문이자 국가 기간산업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교환‧전송분야에서 대우통신은 1월에 565Mbps 광전송시스템을, 2월엔 장거리 전송 시설을 중앙집중식으로 감시하고 유사시 자동적으로 예비시설로 전환시켜주는 디지털 전송로집중운용보전시스템(DTMS:Digital Transmission Network Management)을 중앙 및 전국 7개소에서 시범운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와함께 이러한 기간통신망 이외에도 대우통신은 전화기, 팩시밀리 등 통신단말기 시장에서도 활발히 사업을 전개, 자체 모델인 유니팩스로 미국, 유럽, 이란 등 세계 각국에 수출물량을 늘려가는데 이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시장에 진출하는데 성공, 국내 업체로서 는 최초로 중국 중앙의전부의 승인을 획득하여 수출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일반 사설교환기, 데이터통신용 패킷교환기 뿐만 아니라 지하철 통신시스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사업 성과들은 일단 시장진입에 성공하면 그 효과가 지속되는 통신산업의 특성 때문에 선진국들의 치열한 견제속에서도 이루어낸 업적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었다.
1992년 세계 컴퓨터 업계는 3개월마다 신제품 가격이 10 %씩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대우통신은 이러한 시장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코자 국내에선 처음으로 386SX급 칼라 노트북PC를 출시하였으며,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왔던 모니터 분야에서도 17”, 21”의 고화질 모니터 개발에도 성공함으로써 컴퓨터분야 제품군을 대폭 확대해 나갔다.
이와같은 PC와 주변기기 이외에도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국산 중형컴퓨터 타이콤 DTC-9000을 국내 최초로 ETRI에 납품하여 가동 개시함으로써 제품 Line-up을 슈퍼 미니급 컴퓨터에까지 확대하였으며, 이 DTC-9000을 한국통신의 전자전화번호부(EDS:Electronic Directory Service) 개발용 주전산기로 납품하기 시작함으로써 중대형 컴퓨터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PC시장 환경은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단축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486PC급 상위 기종이 주력기종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대우통신은 펜티엄 PC를 국내 최초로 개발, 제품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1월에는 486 PC인 윈프로 시리즈가 미국의 유력 컴퓨터 잡지인 ‘PC World’ 신년호에 최우수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LCD 화면과 VGA 컬러모니터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노트북PC와 더불어 환경보호형 컴퓨 터인 그린PC를 개발, 시스템에서 저전력화를 실현함과 동시에 미국 환경청 규격도 만족시키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품질과 서비스를 갖 추어 원하는 시기에 경쟁력있는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해 서비스 조직인 전국 52개 소의 지역센타(TSC:Total Service Center)를 77개소로 확대, 대고객 서비스를 강화 하였다.
또 노트북PC 솔로의 지속적인 출시로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 상당한 붐을 조성, 모델D 이후 다소 저조했던 PC 시장에서 재기를 위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 주도했다. 대우통신은 서브노트북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솔로의 인기를 몰아 펜티엄 멀티미디어 노트북PC인 솔로 7500시리즈를 내놓고 판매에 들어갔다. 기존의 서브노트북과 멀티미디어노트북의 이원화 체제로 제품 컨셉을 설정, 제품의 라인업을 대폭 강화해 다양한 계층의 수요를 공략함으로써 노트북 PC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듀넷의 활성화에 따라 초‧중‧고등학교의 멀티미디어교실 구축도 활발히 진행하였는데, 우리 회사는 속초초등학교에 업계 최초로 멀티미디어 교실을 구축함으로써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였으며, 멀티미디어교실의 구축이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예측되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1993년 펜티엄PC를 개발 시판하여 국내 컴퓨터시장의 약 80 %를 점유함으로써 “대우통신=펜티엄PC” 라는 등식을 만들어냈으며, 멀티미디어 노트북 PC를 국내 처음으로 개발하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에 ‘트래블메이트4000M’이라는 모델로 약 15만대를 수출하기도 하였다.
이 노트북은 미국 최대의 컴퓨터전문지인 「PC Magazine」誌에 의해 최우수 노트북PC로 선정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