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아폴로 11호기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을 시도하던 이날, 오리온전기는 산고 끝에 만든 브라운관 첫 제품을 시험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중계된 인류의 달착륙 장면이 이제 막 생산하여 세트에 장착된 흑백브라운관을 통해 방영되자 생산에 참여했던 오리온전기 사원들이 황호성을 올렸다. 이 날은 우리나라도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몇 안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고, 그후 오리온전기가 영상디스플레이 전문업체로 성장해 가는 길을 여는 날이기도 했다.
이때 들어 정부는 전자공업을 중점 수출전략사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국내외의 대규모 투자유도 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가전업계의 투자가 급증했다. 특히 일본업체들이 마산 수출자유지역을 중심으로 국내에 대거 진출하면서 우리나라 전자공업은 활황세를 맞기 시작해 흑백 브라운관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리온전기는 폭발하는 국내수요에 힘입어 연산 42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구미공장을 완공하고, 1973년 6월 본사와 공장을 구미로 이전했다. 이로써 오리온전기는 1972년부터 정부가 전자공업 전용 공업단지 조성에 주력하여 만든 구미국가산업단지 제1호 입주업체로 기록되었다. 또 그해 12월에는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공모를 단행, 자본금을 2억원으로 늘리면서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브라운관 수요가 세계적인 증가추세에 이르자 기술제휴선인 일본 도시바가 오리온전기의 자본 참여에 따른 한국내 새 공장 건설을 제의해 왔다. 오리온전기는 도시바의 판매망을 활용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양측이 각각 50대 50으로 참여하는 ‘뉴오리온주식회사’ 설립에 합의하고, 1974년 3월 25일 회사를 설립하였다. ‘뉴오리온주식회사’는 같은 해 9월부터 생산에 들어가 UL 및 CSA 외에도 BSI, VDE, FEMCO, SEMCO 등의 세계적 안전규격을 추가로 획득하여 유럽지역 직수출에 성공함으로써 수출시장을 전세계로 확대하게 되었다. 수출업체로서의 기반을 잡은 오리온전기는 계속되는 수출물량 증가에 대비하고 경영합리화와 수출기반 확립에 주력하기 위해 1975년 8월 30일, ‘뉴오리온주식회사’를 흡수 합병하여 납입자본금이 7억 5,080만원으로 늘어났다.
오리온전기는 새로운 관종개발에도 힘을 쏟아 1975년에는 유럽형 푸쉬-뜨루(PUSH THRU) 타입의 브라운관과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곧바로 화상이 나오는 퀵 스타트(QUICK START) 브라운관, 또 1977년에는 국내 최초로 평면사각 타입의 흑백브라운관 등을 개발하는 개가를 이루었고, 그 성과에 힘입어 1976년 이후 급속한 판매신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1976년 당시 연간 100만대 생산능력이던 것을 1977년 5월에는 연간 150만대, 1978년에는 다시 연간 300만대 생산능력으로 대폭 공장을 확잘했다. 이로써 오리온전기는 국제수준의 기술능력과 대단위 양산체제를 갖춘 세계적 규모의 흑백브라운관 제조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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