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1970년대 후반 국내외 산업계 전반이 제2차 석유파동과 정치 사회적 불안으로 급격한 경기침체에 빠져들고 있을 때, 오리온전기는 중국시장 개척에 힘입어 오히려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1980년에는 월 평균 생산량이 27만대를 넘어서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으며, 매출액의 72 % 가량을 중국에 수출함으로써 제품 공급부족 사태를 맞을 정도로 활황을 맞이 했다.
그러나 1981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수입금지 조치와 동남아 시장의 수요감소로 브라운관 수요가 급격히 퇴조하고, 거기다가 일본, 대만업계의 덤핑수출이 수출시장에서의 제품 판매가를 크게 하락시키면서 오리온전기는 창업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된다.
이럴즈음 오리온전기주식회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83년 1월 3일, 대한전선주식회사의 가전사업을 인수한 대우는 오리온전기의 대한전선 소유주식 33 %를 전량인수하는 한편, 일본 도시바가 보유하고 있던 33.4 %의 지분까지 추가로 확보하게 되면서 오리온전기의 경영에 본격 참여하게 된 것이다.
‘대우가족’의 일원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오리온전기는 1983년부터 회복되기 시작한 국내경기와 그 동안의 경영개선 노력에 힘입어 차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흑백브라운관 부문에서는 무엇보다 텔레비전용을 대체한 산업용 흑백브라운관 수출 확대에 성공하고 있었고, 중국의 흑백텔레비전 수입금지 조치 해제 및 동남아 지역과 유럽․미주지역으로의 수출도 급증세를 보였다.
이보다 더욱 두드러진 것은 컬러브라운관 신장율이었다. 대한전선 가전부문을 인수한 대우전자가 출범 6개월만에 판매량을 3배로 신장시켜감에 따라 월 4만대 생산체제를 24시간 완전가동을 해도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공급부족 사태가 지속되었다. 이에 힘입어 1981년부터 시작된 ‘ORICOR 프로젝트’를 연이어 추진하면서 1989년에는 연산 70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 1982년 5월부터 양산에 들어간 모니터도 컴퓨터 산업의 발전과 병행하여 점차 본 궤도에 진입하였다. 1988년 7월에 오리온전기는 컬러브라운관 생산누계 1천만대를 돌파하는 개가를 올렸고, 이어서 12월에는 흑백브라운관 생산누계 3천만대를 돌파하였다.
이 기간 동안 오리온전기는 컬러 및 흑백브라운관의 생산․판매 호조로 매출액 규모가 비약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1984년 463억원이던 매출액 규모가 1986에는 873억원으로 약 2배 이상의 신장세를 보였다. 특히 1985년에는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인 독일 그룬디히(GRUNDIG)와 거래를 시작하고 1986년부터는 일존의 샤프(SHARF), 1987년에는 홍콩 소재 푸췐(FUCHUEN)사 등과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내수와 수출 비중이 약 1대 7 정도로 간격이 벌어졌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오리온전기는 1988년 제25회 무역의 날에 ‘1억불 수출의 탑’ 수상업체로 선정되어 명실공히 수출전문업체로의 위상을 확인받았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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