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우리경제는 1972년 중에 있었던 8․3 조치와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수요의 급신장에 따라 상반기부터 폭발적인 설비확장과 원자재 재고투자가 증대되었다. 또 이를 뒷받침한 과잉 유동성 증대, 개인소비 증대가 경제전반의 가속적 고도성장을 유발했으며 이의 필연적 귀결로서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공급상의 애로가 생겨났다. 하반기에 와서도 이러한 성장과 인플레이션 추세가 지속되었으며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인한 충격, 원자재 조달난, 상반기 중의 과잉투자에 따른 부작용, 정부의 긴축정책 등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확대기조와 성장템포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정부의 금융긴축 정책에서 파생된 현상은 은행 이외의 다양한 금융 중개기관의 출현이었다. 즉 은행과 보험회사 이외에 단기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투자신탁, 토지금고, 리스회사, 종합금융회사 등이 1970년대 말까지 잇달아 설립되었다.
한편 1973년 1월에 발효된 기업공개 촉진법에 따라 일반기업의 기업공개가 늘어난데다, 2월에는 증권회사의 자본금 요건 강화를 주요골자로 한 증권거래법이 개정됨에 따라 기존 증권회사들은 활발히 증자를 실시했고 거대기업들이 증권업에 참여함으로써 신규 대형증권회사가 출현하게 되었다.
대우의 금융부문 진출 기본전략은 비정통 금융분야의 과감한 개척을 통해 그룹 전체의 자금동원력을 제고시키고 날로 가속화되는 국제경쟁에 도전하는 능력배양에 두었다. 당시 대우계열의 금융회사는 상호를 ‘동양’으로 통일시키고자 하는 기본 착상아래 업계 상위에 랭크되어 있던 동양증권을 인수대상으로 물색하였다. 당시 동양증권은 자본금(1억 5천만원)에 있어서는 업계 상위, 외형에 있어서도 삼보증권과 선두자리를 다투는 대형 증권회사였다. 대우와 동양증권과의 계속된 인수교섭 끝에 드디어 1973년 9월 1일 동양증권은 대우가족사의 일원이 되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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