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1992년 7월 7일 고등기술연구원이 설립되어 시스템공학과를 정식으로 인가받은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연구원으로서의 기틀을 잡는 일이었다. 그래서 몇몇 조합원사로부터 과제를 의뢰받아 정보통신분야의 『관성항법 장치용 센서 개발』, 자동차기술분야의 『Low Emission 엔진 개발』, 전력에너지 분야의 『CANDU 발전시스템 개발』의 총 3개 과제를 착수하였다.
1992년 9월 7일에는 제1회 이사회 및 실질적인 연구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고등기술연구원이 대우그룹내에서 명실공히 인정을 받게 되었다. 창립총회에는 설립자인 김우중 회장과 이사장인 김준성 회장을 비롯하여 고등기술연구원 이사인 15명의 조합원사 대표이사들이 전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사들은 고등기술연구원 설립의 책임자이던 정근모박사를 원장으로 정식 임명하였다.
늘어나는 과제의뢰와 연구기관으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1992년 9월에 제1기 연구인력 공채공고를 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으며 이는 총 877명의 인원이 응시를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엄격한 전형을 통하여 1992년 11월 11일 총 53명의 우수 연구인력을 유치하여, 1993년 1월에는 연구원의 전체 인원이 총 101명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1993년 10월에 제 2기 연구인력 공채를 시행하여 662명이 지원하여 총 111명이 최종합격하여 1994년 1월의 인원이 총 200명에 이르는 발전을 가져왔다. 1994년 7월 1일 현재의 인원은 총 275명으로 박사가 59명(총 인원중 22 %), 석사가 141명(총 인원중 51 %)으로 높은 학력과 우수한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1992년 9월 20일에 용인연구단지 기본구상에 관한 보고를 하므로써 용인연구센터에 대한 위상을 확고히 하였으며, 1992년 12월에 연구실 공간을 대우센터빌딩 9층의 381평으로 증평․이동하면서 연구원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1995년 11월 이전한 용인 중앙연수원내 용인연구센터로 이전하였다. 또한 분원 설치작업도 활발히 이루어져 1994년 8월 전력에너지 연구분야와 연계된 아주대 제1분원, 1995년 1월 부평 자동차 기술연구소내에 제2분원 설치 되었다.
1993년은 교육부분의 시금석인 시스템공학과의 질과 고등기술연구원의 발전을 위하여 미국 NSF의 시스템공학부 부장인 프린스턴 대학(Prinston Univ.)의 하젤리그 박사(Dr. Hazelrigg)와 캐나다 AECL의 기술담당 수석 부사장인 무줌다 박사(Ajit P. Muzumdar)를 시스템공학과 초빙교수로 발령을 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모습이 갖추어진 시스템공학과는 전형결과 7명의 박사과정 학생으로 3월 8일에 개강하였다. 또한 6월 21일에 시스템공학과 후기전형을 시행하여 총 9명의 박사학위과정 학생이 합격, 1993년 2학기에는 총 16명의 학생이 등록하였다. 이후, 이공계열 전공자의 경우 자신의 전공과 경영분야와의 연계를 발전시켜 연구업무에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자 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하여 시스템공학과에 “기술경영전공”을 신설, 1994년에 15명의 학생을 선발하여 3월 2일 기술경영 석사과정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1996년 9월 기준으로 박사학위 과정에는 38명, 석사학위 과정에는 19명으로 총 학생수가 57명이며, 총 28명의 교수인원의 확보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93년 3월 22일에 용인단지내 고등기술연구원 기공식 및 ‘기술대우’ 공개포럼을 개최하므로써 고등기술연구원이 ‘기술대우’의 중추적인 역할로써 떠올랐다. 이는 대우그룹이 ‘기술’중심의 경영체제로 전환을 의미하는 ‘기술대우’ 공개포럼에서 김우중회장이 밝힌 다음과 같은 기념사에서도 알수 있다.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꿈과 비젼을 담아 대우의 ‘기술혁명’이 본격적으 로 시작되었음을 선언합니다 …… 금년에는 그 첫번째 기초를 닦는 사업으로서 고둥기술연구원 이라는 이름의 특수공과대학원 을 설립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문적인 기술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려 는 우리의 꿈과 비젼이 담겨 있습니다 ……」
세계적인 연구원으로써의 자리를 잡기위한 방법중의 하나인, 대외 기관과의 연구협약 또한 활발히 체결되었다. 그 시초는 1993년 6월 16일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와 연구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후 1994년 12월 9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연구협약을 체결하여 1994년 1월 25일 고등기술연구원-MIT-한국과학기술원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연구교류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리고 1994년 4월 9일 연세대와 연구협약을 체결하여 대외 우수 연구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굳건히 다듬었고 1995년 4월 15일에는 STEPI와도 연구교육협력 약정을 체결하였다. 이외에도 1993년 6월 8일 케임브리지 대학의 전임총장인 Herman Bondi와 1994년 2월 23일 스웨덴 왕립공학한림원(IVA) 원장인 Forberg교수 등이 방문하여 고등기술연구원과의 연구협약 등 전반적 관심사에 관한 논의를 한바 있으며, 1994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국제자문위원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여기서 고등기술연구원 운영 전반에 관한 평가 및 각 연구분야별로 제언을 하였다.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고등기술연구원은 비영리법인으로서 필요한 모든 자금조달은 조합원사에 부담하는 분담금으로 이루어진다. 분담금은 연구성과에 관계없이 관련된 조합원사에서 고등기술연구원의 연구와 교육을 위하여 부담하고, 고등기술연구원은 각 조합원사에게 연구과제를 의뢰받아 수행하며 이와 더불어 각 조합원사에게 우수한 연구인력을 파견하여 각 조합사 현지에서 연구를 수행하도록하여 연구인력을 조달하고 또한 각 조합원사에서 연구인력을 파견받아 교육 및 연구시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1996년 9월 현재 각 조합원사로 파견나간 연구인력은 총 68명이고 조합원사별로 살펴보면 대우자동차에 63명,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에 1명, 대우정밀에 4명이다. 한편 각 조합원사에서 파견되어 온 연구인력은 1996년 9월 현재 총 15명에 이르고 있다.
연구원의 살림규모인 예산을 살펴보면 고등기술연구원이 눈에 띄게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92년 예산 총액 6,400백만원중 7월부터 12월까지의 집행실적이 1,470백만원으로 집행율이 23 %였으며, 1993년에는 19,450백만원 예산 중 10,321백만원이 집행되어 53.1 %의 집행율을 보였다. 1994년 예산은 244억 6천 7백만원으로 1994년 예산이 ‘92년의 4배가 되었음을 보면 고등기술연구원의 눈부신 성장을 한눈에 가늠할수 있을 것이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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