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정신은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면서 공통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이념적인 특성이나 사물에 집착하는 마음의 산물이다. 이를 가치관 혹은 철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 정신은 하루이틀 사이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염전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 그리고 태양의 강렬한 빛과 바람의 힘을 빌어 시나브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가치관은 긴 역사속에서 용해되어 응집된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힘에 의해 변질 될 수도 없고 왜곡될 수도 없다. 아니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오직 현존하는 집단의 존재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역사적인 이념으로써만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철학과 정신은 명멸(明滅)해간 숱한 경험과 체험속에서 추출되어야지만 그 아름다운 빛을 낼 수가 있고 가치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
대우가 불과 창업 30년만에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그림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희생해온 대우인들의 특별한 정신, 곧 이 아름다운 빛깔이 깔려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우정신의 본류인 창조와 도전 그리고 희생은 인류가 지녀온 보편적인 가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특별히 대우정신이라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우는 창업과 함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넓은 시장과 드넓은 활동무대를 찾아 해외로 진출했다. 당시의 낙후된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 아래서 대우가 추구했던 기업활동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대우가족 모두가 공감하는 확고한 기업목표였다.
이처럼 당위적 사명감 아래 기업활동을 시작했기에 대우는 별도의 경영이념을 내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후 수출의 최전선에서 밤낮없이 뛰어온 대우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급속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고,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경영의 다각화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76년에는 그룹으로서 그 모습을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대우는 처음 5명의 적은 인원에서 조직규모가 이미 1만명을 상회하는 대가족으로 변모해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다진 대우는 대외적으로 우리의 지향하는 바를 천명하고, 또한 구성원 모두의 의지를 수렴하여 포용하기 위해 경영이념의 제정을 모색하게 되었다.
경영이념에 대한 검토가 활발해지자, 우선 형식적인 미사여구의 나열보다 대우의 혁신적 가치관을 내세우자는 의견이 제시됐으며, 모두가 가족처럼 기업을 꾸려온 만큼 대우가족 모두의 입장을 반영하는 이념이 몇번의 실패를 거쳐 만들어졌다.
「창조」, 「도전」, 「희생」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대우의 기업규모는 더욱 확대되어 갔으며, 기업의 인수합병에 의해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역사가 쌓임에 따라 조직내에서도 창업기를 체험하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새 대우가족들이 대우정신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대우정신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그 내용에 대해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구태여 이에 대한 해석이나 체계적 의미 규정을 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대우가족이 대우의 분위기를 익히고 실제로 조직내에서 그 내용을 체험하기까지는 약간의 혼선이 따랐다. 그것은 다른 기업들과는 너무도 다른 희생이라는 굳어진 단어에 대해서였다. 바로 ‘희생양’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일부 대우가족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계기가 주어질 때마다 이에 대한 재점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첫번째 점검은 창업 15주년을 맞은 1982년에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는 주로 희생에 대해서였다. 전사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 ‘희생’의 의미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으며 혁신적 가치관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따라서 용어를 수정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그 대신 조직원들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자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었다.
두번째 점검은 1985년에 그룹내의 부장, 과장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외부 교수에 의해 대우정신에 대한 설문과 워크숍이 동시에 실시되었다. 여기서 나온 결론 역시 ‘대우정신은 매우 혁신적이며 직원들의 공감도가 매우높다’는 것이었다.
창업 20년을 맞은 87년에도 사내외에 걸쳐 이원적인 조사가 이뤄졌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또 89년에는 외부 전문연구진의 도움을 얻어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기업문화 진단을 실시했다. 연인원 7천여 명이 참여한 기업문화 진단에서도 ‘창조, 도전, 희생’의 대우정신은 대우의 경영이념으로서 아주 유용하다는 명확한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좋은 경영이념도 이를 체질화하지 못하면 구호 이상의 의미를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따라서 대우는 일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90년 8월 마침내 경영이념을 체계화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대우의 구성원들은 그러한 정신을 소화하여 막힘없이 실천함으로써 짧은 기간동안 세계 기업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고도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덧붙여 지금 이 순간에도 대우의 구성원들은 그 정신에 충실해 자기를 희생하면서 끊임없이 창조적이고 도전적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바로 후대를 위한 풍요의 마련을 위해서.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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