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굳이 언어철학의 파도를 타지않더라도 문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통되는 하나의 언어 속에는, 그 각각의 깊고 깊은 세계관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좀더 적확히 표현하자면, 기업내에서 주고 받는 하나의 언어에도 그 기업에 따른 상징과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샐러리맨이라는 말과 주인의식이라는 말처럼 서로 상충되는 이미지도 드물 것이다. 샐러리맨의 이미지는 나약하게 들린다. 늘 부족하고 애면글면 지루하게 하루 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그리하여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부초처럼 이해되기 일쑤다.
그래서 샐러리맨은 현대사회의 우울하고 따분한, 또한 힘없고 이리저리 내굴리는 살이의 슬픈면을 대변하는 데 선두자리에 내세워지고는 한다. 그 속에 종속적이고 비자주적인 모습이 포함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좀 저급하게 말하면 신념보다는 요령이 앞서고 긴장된 삶이기 보다는 이완된 삶의 전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착실하고 소박한 샐러리맨일수록 그가 만일 열망이나 대망에 불타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샐러리맨으로서의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당사자가 아무리 「샐러리맨으로서의 열망」이라고 주장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 풍토가 우리 주변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샐러리맨이라는 말의 이미지가 고정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식의 이미지는 이와는 반대의 이미지를 함유하고 있다. 주인의식은 곧 공공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은 바로 권리보다는 의무를 중시하는 신념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 말의 상징은 곧 나보다는 가족, 가족보다는 기업과 사회와 국가인 까닭이다. 풀어말하면 그 말 자체가 바로 사회의식적 열망인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가냘프고 허약한 샐러리맨이 성취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 매력적으로 이입시킨다면 샐러리맨의 나약함은 그 순간부터 돌변하여 대망이 있는 열정가, 혹은 주인의식에 충만되었다는 꼬리표로 바꿔달게 된다. 바로 성취라는 언어의 가치관 때문이다.
대우인의 성취의욕은 창업주인 김우중회장의 신념과 신조로 하여 그 아름다움을 꽃피워왔다. 그리고 어느덧 대우인은 성취를 지향하는 주인의식을 가진 열정가란 꼬리표를 하나씩 달고 있다. 그러므로 대우의 기업문화중에서 사실은 성취의 문화가 가장 중요하게 이해되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대우는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과감히 성공시킴을 자랑으로 살고 있는 까닭이다.
대우의 30년 역사에서 성취를 위한 창조와 도전, 그리고 희생의 사례는 비로 쓸만큼 많다. 이제는 그 빛이 바랬지만 당시 세계최초, 국내 최고, 최초의 신화는 대우인들의 자존이었다. 바로 그 자존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게 했고, 보다 개척적이고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게 했다.
성취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어보면, 흑백브라운관 개발, 평면사각브라운관 개발, 국민차 티코의 개발과 굴삭기 SOLAR 시리즈 개발, 디젤엔진의 고유모델인 스톰의 개발은 국내최초로 이뤄낸 값진 열매들이었다.
또 선진국의 그늘에서 늘 모방으로 뒤따라가기에 바빴던 세계시장에서 하찮지만 최초라는 말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기포충격방식의 세탁기와 유아용컴퓨터 개발이 그 예이다. 게다가 세계최대의 골리아스 크레인과 도크도 대우는 소유가 아니라 성취한다는 의미에서 설치했고, 그 도크가 완성되기도 전에 화학선을 수주하였고,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 배가 그 해의 세계최우수 선박에 선정되자, 세상은 그 저력에 깜짝 놀랬다.
대우의 성취는 일에서만 찾지않았다. 노력하여 거둔 성과를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재투자하여 의의와 보람을 가꾸어왔던 것이다.
1978년 대우는 재단을 설립하여 그동안 쌓아올린 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삼았다. 설립목적을 사회 전부문에 확대시키되, 정부가 미쳐 착안하지 못하거나 간과한 과제에 국한시키기로 했다. 이를테면 정부의 투자를 그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80년 창업주 김우중 회장은 전재산을 다시 대우재단에 기부하여 몸소 소유자가 아닌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경영자의 상을 세상에 보였다. 창업주에게 있어 기업활동은 소유가 아닌 성취에 그 의의가 있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세습경영이 아닌, 대우에서 자라고 대우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경영인에 의한 후계체제를 확립시킨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한국기업사에 전문경영인의 시대를 정착시키는 혁신의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80년 8월 29일 창업주 김우중 회장의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설명은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나가야할 새로운 지표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부의 지난 8.20 중화학 투자조정 조치후 지금까지 해당기업에 대한 격려와 회의와 질타가 교차되어 왔습니다. 그 많은 지적 가운데 한결같은 주제는 해당기업에 부하된 중화학 공업이 ‘개인의 것이 아닌 국민의 기업이며 국가산업’이라는 소명의식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대우에로의 산업설비 분야 전담 결정은 대우라는 기업뿐 아니라 저, 김우중 자신에게 엄청난 고심을 안겨준 과제라 할 것입니다. 물론 상대 기업(현대)의 우선적 선택에 따라 맡겨진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우의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로 보고 자부심에 앞서 더욱 막중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산업설비 분야는 여러분이 지적하신 바 대로 대우 아닌 어느 누가 해도 정상화해야할 분명한 국가적 명제입니다. 더구나 오늘의 상황은 기업인으로 하여금 ‘소유라는 탐욕 보다는 경영중시의 청명한 새시대’를 맞게 하는 대전환기적 시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위탁된 산업설비 분야야 말로 실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일념이 아니고서는 실천할 수 없는 사업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산업설비 분야의 희생과 정상화를 책임진 기업인으로서 책무를 기필코 완수 하겠다는 불굴의 각오와 신명을 바쳐 새출발 하는 창조와 도전의 적극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가장 순수한 경영자’로서 모든 사람이 요구하는 최선의 관리자가 되기위해서는 저의 주변, 제 자신을 초탈한 새로운 출범에 있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시대를 맞는 경건하고 숙연한 입장에서 저는 제가 지닌 ‘모든 재산을 완전히 공개함과 동시에 그 사재(私財) 모두를 이 참다운 사회에 환원시켜’ 앞으로 국민 여러분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가장 선량한 경영자인 전문경영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제가 가진 재산은 대우실업(주) 및 관계회사 주식 등 160억원(액면가), 부동산 40억원(시가) 상당으로서 이의 구체적인 사회환원 방법 및 절차는 제 자신이나 대우와는 무관하게 신중하고 신속한 검토를 거쳐 이행할 것입니다. 순수한 자의 (自意)로 내린 저의 이 소박한 결단은 지난 77, 78년 문화복지(50억원), 및 교육(50억원)그리고 언론(10억원) 관계 출연(出捐) 때의 공약을 성실히 실천하는 것이며, 이른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는 제 자신의 확고한 다짐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8.20조치 후 제가 수임(受任)한 산업설비 분야에 대한 실태와 상황을 별견(瞥見)한 결과 상상 이상으로 험난하고 애로가 중첩되어 있으며 각고의 희생과 인내가 요청되는 사업임을 절감했습니다. 이 사업의 승운은 이기와 안일과 범용(凡庸)에 있기 보다는 오로지 확고한 신념과 굳건한 의지, 그리고 의연한 행동에 달려있다고 확신합니다.
사욕에 연연하지 않는 무사념(無邪念)의 자세로 더욱더 이 역사(役事)에 매진하겠다는 신념에 바로 저의 사재 완전공개와 사회환원의 근본 연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대우 창업 14년 동안 축적한 개인의 부와 단절하고 오로지 새로운 ‘성취의 정신’만을 계승하고자 하는 저에게 국민여러분의 성원과 격려가 끊임없다면 이 중차대한 국민적 기업의 대업은 성공리에 마감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제 혼신의 역량을 다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 대우가족은 크나큰 자랑을 느낀다. 대우의 소유자가 소유권을 과감히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문경영자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한 대우의 선구적 모습뿐만 아니라 국민적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는 혁신적 모습을 당당히 보여준 것이니까.
나아가 대우는 창업주 김우중 회장의 은퇴 시 전문경영자에게 경영대권을 계승 시킬 준비를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다. 창업주 김우중 회장의 은퇴 후 전문경영자가 경영체제를 구축한다면 이는 우리 기업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또 하나의 획기적인 혁명이 될 것이다.
성취의 세계! 그 화려하면서도 의미 가득한 말이 대우 30년을 이끌어왔고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나아가 사회의 귀감이 되게한 대우의 살아있는 정신이오 기업문화이다.
대우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소유보다는 성취를 위해 창조하고 도전하며 희생해왔다. 정부도 포기하다시피한 기업을 인수하여 흑자기업으로 살려놓은 일, 미수교국으로 진출해 국가간 수교의 다리를 놓은 일, 수출사상 한달에 5억불을 돌파한 일 등 무수히 많은 성취의 보람에 대우는 시간은 아껴도 땀방울은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대우의 일터에는 해가지지 않습니다’ 대우가 최초의 그룹광고에서 사용한 문구다. 대우는 성취의 일념이 있었기에 밤을 낮삼아 일해왔다. 그래서 성취의 전당 대우센터에는 항상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다. 오늘을 희생함으로서 내일을 얻는 예지를 빌어 어렵고 힘든 일에도 두려워않고 도전하고, 도전하면 끝내 이루고야 마는 굳센 성취의 역사를 이뤄왔다고 자부한다.
이렇듯 대우는 성취의 일념으로 살아왔으나 그 결과를 독식하지도 소유하지도 않았다. 대우는 성취의 결과만큼 성취에 대한 의무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우는 처음부터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는 성취의 의욕을 바탕삼아 성장해 왔기 때문이었다.
단적인 예로 대우는 초창기부터 급성장 만큼이나 그에 대한 의무, 곧 납세를 성실히 준수해 왔다. 개발연대의 우리나라 실정이 그러하였듯이 세금에 대한 인식이 기업이나 국민이나 열악하다 못해 무지에 가까웠다. 따라서 기업의 탈세는 공공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우는 창업 초년도부터 성실히 납세의무를 실천했다. 고백하건대 대우는 세금포탈을 목적으로 억지 적자를 만든 역사가 없다. 이러한 대우의 성실납세 풍토는 72년에 들어 국세청으로부터 성실신고법인 지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사세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실신고 법인으로 지정받았던 사실로 인해 대우는 당시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았었다.
소유를 탈피한 대우의 성취지향 경영태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완수라는 공익사업의 형태로도 나타났다. 대우는 성취한 만큼을 국가에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되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점은 대우가 국민적 기업으로 발전하는 터전을 다지는 것이었다.
1973년 6월 대우실업을 공개하면서 창업주 김우중 회장은 이렇게 밝혔다.
「…대우는 이제 단순한 회사가 아니며 민족적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의 발전과정을 가늠하고 그 요청에 부응해 나가야 할 지도적 기업이 되었습니다.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에게는 쓰는 재주가 없기 마련입니다. 쓸줄 아는 사람에게 돈을 줘서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회사가 발전함에 따라 주식가격은 오르고 주식은 불어날 것입니다. 그것을 재원으로 문화사업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76년 7월 제1회 연세경영인상 수상소감에서도 그점을 피력했다.
「…경영자가 되었다는 것은 남보다 편하고 화려하게 살며 보다 큰 쾌락이나 안일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 사람들을 위해 보람있고 값진 일을 할 수 있는 다행스러운 기회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
이렇듯 대우는 성취지향의 기업활동을 통해 급속히 신장하면서도 성취의 결과를 정당하게 사회에 환원하고자 준비하고 또 실천해 왔다. 대우가 가장 먼저 실시한 부문은 육영사업이었다. 77년 3월 21일, 50억원의 기금에 의해 대우학원이 설립되었으며 누적부채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던 아주공과대학을 인수함으로써 전인적 대학교육 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부여받게 되었다.
대우의 공익사업은 이후 영속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 대우문화 복지재단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78년 3월 25일 50억원의 기금으로 설립되어 학술문화 사업을 주로 펼쳐온 대우문화 복지재단은 앞서 언급한 창업주 김우중 회장의 사재 200억원 환원에 힘입어 대우재단으로 모습을 일신하고, 그 활동범위를 더욱 넓혔다.
같은 해에는 언론의 발전을 위해 서울언론재단이 설립되었으며 81년에는 대우의료재단이 세워져 낙도 의료사업을 펼침으로서 전분야에 걸친 공익사업을 확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직 목표를 향하여 줄기차게 달리는 대우인의 성취의 세계는 세인들의 생각보다 넓고 깊다. 그리고 성취한 결과는 반드시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자는 신념이 또한 넓고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현대 한국사회의 메말라가는 사회윤리와 도덕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혁명으로 기억되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성취의 문화는 경영진에서 실무부서로 장시간 이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므로 이제는 대우인의 기업문화에서 성취는 곧 열정으로, 그리고 허약하고 가냘프다는 샐러리맨의 이미지는 막힐줄 모르는 열정으로(적어도 대우인은) 자리매김해지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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