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는 창업부터 항상 현재 보다는 미래를 중요시해왔다. 그러므로 좁은 국내시장보다는 넓은 해외시장 개척을 지향해왔던 것이다. 대우가 태어나 놀랄만한 매출신장을 통해 30년만에 매출액 700억달러를 달성하게된 밑그림에는 끝임없이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특성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하여 항상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현재를 혁신 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주어진 결과에 만족하고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에 도전하여 그 속에서 미래의 가치를 창조하였고, 이를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았다. 대우인들의 미래지향성은 오늘의 안일함보다는 후대의 풍요함을 우선에 놓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우에 의해 활발히 추진되고 또 그 결실을 보고 있는 세계경영도 그 뿌리는 미래지향성 문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대우인이 만든 제품을 만나게 된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와 건설현장을 누비는 중장비들, 초대되어 갔을 때 이국도시의 어느 집 거실에 놓여있는 전자제품들에서 친근감과 아울러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된다. 바로 이것이 대우의 해외지향성의 결과이며 성과라고 해도 좋다.
대우는 우리나라 기업중에서 최초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려 경영을 다각화하기 전까지 오직 수출 하나만을 성장의 지표로 삼아 달려온 기업이다. 이 점은 과거 한반도의 울타리 내에 안주하며 이렇다할 해외진출을 도모하지 못했던, 혹은 시도하지 않았던 우리 기업의 역사로 볼 때 실로 혁명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말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이 내수시장에 안주해 무한한 수출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불안과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을 때, 대우는 창업의 깃발을 휘날리며 험난한 해외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이러한 이러한 대우의 해외지향, 즉 미래지향의 정신이 사회전체로 파급되어 국제사회에서도 한국하면 곧 「수출」을 연상하리만치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바로 그 뿌리와 맥을 같이하여 대우의 기업문화도 튼튼히 자리잡아왔다.
한 기업의 문화는 그 기업의 발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전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는 대우가 수행한 많은 30년의 활동 중에서 사회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던 무수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고, 그러기에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국가의 힘은 곧 그 나라의 경제력이다. 그리고 그 경제력은 기업이 이끈다. 우리민족은 동북아의 한쪽 귀퉁이에서 외국이라고는 중국과 일본밖에 모르고 살아왔다. 그 나라에 이제 갓태어난 경험없고 자본과 규모가 자그마한 기업이 해외진출을 시도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하여 대우의 활동이 한민족 역사상 초유의 것이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무역의 역사는 사신무역(使臣貿易)을 비롯해 왜관무역(倭館貿易)의 형태로 인접국가와 교역을 했었다는 걸 증명한다. 다시말해 적으나마 대외교역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외교역은 주로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정치적 의례(儀禮)내지 인접국간 상호교린 관계에 의해 수행된 것이지 국가적차원의 혹은 기업의 온힘을 동원한 교역이 아니었다. 당시 무역업체를 거느린 대기업의 경영전략도 정부가 약속한 원조의 단맛 때문에 부수적으로 적당히 무역상사를 경영하는 형태였었다. 나아가 그들은 수입(輸入)과 그것에서 획득될 이윤에 눈이 어두워 무역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우의 해외활동과 당시 기업들이 무역활동을 엄격히 구분짓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우의 해외개척의 특징은 단순한 상품의 주고받음이나 이윤의 추구가 아니라 「개척」를 하겠다는 의지 바로 그것이었다.
묘하게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개시년에 대우는 탄생했고, 경제정책의 우등생이 되었다.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 시정목표를 수출입국(輸出立國)으로 삼았음을 천명하면서 기업들로 하여금 정부의 정책을 따라주길 바랬다.
수출입국이란 정책은 문자 그대로 수출을 통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당시의 경제사정은 절박했다. 정부는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세제면에서는 물론 금융면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자립경제기반 구축을 위해 수입 대체산업 개발에도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은 수출 경험이 없었으므로 위험이 뒤따른다고 판단했으며, 어렵게 수출을하여 푼돈을 벌어들이는 것보다 쉬운 돈벌이를 택하고 있었다. 즉, 외국에서 차관을 얻어다 공장을 짓고 내수용품을 생산, 판매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국내 기업활동 분위기는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내수시장 쪽이었다. 마치 오늘날의 기업들이 해외투자에 너도나도 나서는 것과 흡사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대우는 달랐다. 내수시장은 한정이 되어 있어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잠재력이 큰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그것은 미래지향적 선택이었고, 그 결과는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오늘의 세계경영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1966년 세계 교역량에서 한국의 수출은 0.07 %였으니 대우의 선택은 어찌보면 무모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우는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수출산업은 경영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포트폴리오 분석의 틀을 적용해 보면, 성장하는 유망산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대우는 철저한 조사와 분석에 의해 수출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대우의 선택이 아니, 미래지향적 전략이 우수했던 것이다.
해외지향 곧 미래지향은 대우30년 사사의 여기저기에서 다뤄지고 있으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가 될 게다. 다만 여기서는 초창기 활동 모습을 잠시 회상하는 정도로 더듬고자 한다.
대우는 창업초기엔 동남아 시장에 트리코트 원단 수출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69년에는 트리코트 원단의 패턴을 새롭게 개발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수출상품에 영 타이거(YOUNG TIGER)라는 고유상표를 붙여 브랜드 밸류를 일찍이 추구하였다. 이는 새로운 마케팅전략의 하나로 풀이될 수 있으리라.
또한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 그해, 시드니 지사를 비롯하여 싱가폴과 뉴욕지사를 시발로 나날이 지사를 넓혀갔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해외지사 116개소, 현지법인 227개소, 연구소 13개소, 건설현장 40개소로 발전하였으니 참으로 쉴틈없이 달려온 30년이었다.
이같은 해외지향, 즉 미래지향전략에 힙입어 대우는 회사를 설립한 8년만에 세계 전지역을 거래대상으로 시장다변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품목다변화를 꾀해 창업 11년만에 경공업은 물론, 중화공, 기계장치, 전자, 조선, 자동차와 첨단분야에 이르기까지 당시 한국이 수출하고 있는 전품목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거듭 자신있게 말하건대, 대우는 무역을 통한 해외개척의 선구자였다. 정부가 아무리 대외지향의 개발전략을 채택하고 이의 실행에 총력을 기울였다 해도 문제는 이를 수행할 주체인 기업이 얼마만큼 해외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개척에 노력을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비록 정부가 수많은 반대급부를 부여하고 수출을 독려했다고 하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맞바로 해외로 나간다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당시의 기업들에게는 수출에 대한 정보와 시장개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기업들에 있어 보다 중요한 관심거리는 수출에 대한 정부의 반대급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였지 수출이 가져다 줄 효과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선발 무역업체들은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보다는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통한 내수영업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안주의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수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대우가 얼마나 미래지향적이고 개척적인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대우는 정부마저 골머리를 앓으며 포기하려 한 많은 부실기업들을 국가기간산업으로 회생시켰다. 그 신화에는 기적이란 결코 없었다. 탁월한 선택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무엇이 잘못됐는 지 앞을 내다보는 눈과, 이를 수술하는 과감한 실행력이 함께 어우러져 신화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근래에 들어 정부의 주도로 구소련과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의 정식수교에 따라 기업투자 분위기가 고조되었지만, 아직 동서냉전이 서슬퍼렀던 시절엔 어떤 기업도 선뜻 이 지역의 진출을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우는 오직 미래지향과 개척정신을 앞세워 두려움없이 이들 지역으로 진출했던 것이다.
이 개척정신과 미래지향성은 우리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도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대우인의 행동과 사고는 늘 그 시대, 다른 기업 조직구성원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그들을 선도해왔다고 자부한다.
유추하건대 다른 기업들이 망설였던 이유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확신과 자신없이 눈치를 보던 그들 기업들은 대우의 진출이 이뤄지고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제는 명운을 걸고 앞다투어 나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우가 진출하기에 앞서 대상국에의 꾸준한 조사와 분석에 기초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우의 앞선 정보와 앞을 바라보는 미래지향성을 어느덧 굳게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간 대우의 미래지향적 해외활동은 대우 자체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을뿐 아니라, 나아가 타기업의 해외활동에 선구적 모범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대우의 세계경영은 쉼표를 찍을 수 없다. 왜냐면 이제부터가 세계경영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쉼표는커녕 대우는 전쟁에 이기고 숙연히 갑옷의 끈을 고쳐 매는 겸손한 병사처럼 내일을 위해 다시한번 모두가 혼신의 힘으로 노력해야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러면서 목소리 높여 외친다.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