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는 1967년 3월 22일 창업 이래, 국민에게는 최대의 양심기업, 국가에는 최고의 납세자, 주주에게는 최대의 재산관리자, 종업원에게는 최적의 일터, 고객에게는 최선의 상품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리고 전통적 기업이념인 “국민적 기업”으로서의 지위정착을 위해 경영과 자본의 효율적 분리를 강조하며 이를 노력해왔다. 그리하여 대우는 1978년 3월 50억원 상당의 재산을 출현하고 현 대우재단의 전신인 재단법인 대우문화복지재단을 설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대우가 1977년 3월 50억원의 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하여 수원에 있는 아주공대(현 아주대학교)를 인수, 운영함으로써 육영사업에 기여한데 이어 공익사업에 기여한 또 하나의 용단이었다.
이로써 대우가족이 그동안 천재지변을 당한 이재민을 돕는다던가, 불우이웃을 돕는다던가, 국군장병들을 위문한다던가, 대학에 장학금을 보낸다던가 하는 그때 그때의 사업을 제쳐 놓고라도 영속적 공익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설립한 공익법인이 사단법인 서울언론문화클럽(현 서울언론재단)을 포함하여 3개에 이르렀다.
물론 이같은 용단의 배경에는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시대적 요청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대우가 국민적 기업으로서 국민과 함께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대우인의 신념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대우문화복지재단의 설립에는 당시 대우실업 김우중사장이 사재 35억원을 출연했으며 나머지 15억원은 대우가족회사가 분담하여 출연하였다.
대우는 재단을 설립하고 첫 사업으로 외로운 섬과 깊은 산골로 뛰어 들었다. 그 일은 병원을 세우고 마을 보건사업을 다각적으로 펴며 장학사업을 통해 가난한시골 청소년들의 진학을 돕는 일이었다.
이 일은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며 화려한 성과와 세속에 회자되기 보다는 조용히 묻히는 사업이었다. 1978년 3월 8일 재단은 기업의 문화사업에 대한 사명을 ‘포드’나 ‘록펠러’ 재단의 예를 들면서 진정한 문화사업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국가 수출진흥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여 아낌없이 투자하겠다는 정신은 국가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이다. 문화는 정부나 한 관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대우는 이제 국민의 기업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선도해야 한다. 기업의 문화사업이 구호나 겉치레에 치우치지 않고 진실로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운다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