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국제화, 세계화라는 말이 1990년대부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유행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국제화, 세계화는, 세계가 하나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고 또한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국제화의 근원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지역화, 다시 말해 블록경제에서 비롯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동서진영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며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소련은 다 알다시피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었다. 이렇게 되자 유럽 석양론(夕陽論)까지 제기되었고, 세계의 이니셔티브 경쟁에서 소외된 유럽 저국은 이러한 양대국 체제에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대항할 필요를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럽의 12개국이 모여 관세동맹을 결성한 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국제화의 원천이 되었다. 또 관세동맹은 공동시장의 단계를 거쳐 현재 유럽연합 즉 EU로까지 발전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세계 최대의 시장을 보유한 미국은 자국 시장보다 큰 유럽연합의 결성에 자극을 받아 특히 국제적인 이니셔티브 상실을 우려해 나프타(NAFTA)의 결성을 서둘렀다. 이런 블록화의 개념이 세계로 확장되어 나타난 것이 국제화이며 그 구체적인 결과가 바로 우루과이라운드(UR)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1986년말부터 시작되었으나 100여개국이 넘는 협상 참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난항을 거듭했다. 당초 1990년말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추진했으나 협상참가국의 이해대립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며 그 이후 지역주의, 보호주의, 통상마찰은 계속하여 심화되었다. 1991년 이후 세계경제의 침체상태가 지속되었고, 협상이 계속 표류할 경우 세계경제 질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위기감이 확산됨에 따라 1993년 7월 G7 정상회담에서 다자협상 제기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하여 1993년 12월 15일 최종결의서 및 부속협정문을 채택함으로써 7년간의 긴 협상이 종결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를 타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특히 미국은 거대한 국력을 배경삼아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국제화는 단순히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가 좁아지고 교역이 국제적으로 확대된다는, 눈에 나타난 현상만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국제화의 기저에는 지역경제권의 이기주의와 지역경제권 간의 힘의 대립이 엄존함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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