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칠레는 흔히 3W의 나라라고 한다. 청량한 기후(Weather)와 아름다운 여인(Woman), 맛난 포도주(Wine)가 그것이다. 그러나 요즘 칠레는 대우가 만든 월드카(World Car)의 또 다른 W를 추가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우의 인지도는 상당하다.
서울에서 25시간, 지구 반바퀴를 날아간 곳에 위치한 산티아고시 어디서나 레이서(르망), 헤븐(씨에로), 에스페로, 그리고 티코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곳을 여행하는 한국인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대우자동차 칠레 판매법인은 지난 1995년 12,010대를 판매하여 칠레 자동차시장에서 일본 닛산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한데 이어, 96년도에는 약 12,000대를 판매하는 등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우의 약진에 놀란 경쟁사들은 가격인하, 신차 조기출시 등 대대적인 맞불작전을 펼쳤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우차의 좋은 이미지가 가전 제품 쪽으로도 옮겨갔다. 그리하여 대우전자 판매법인도 시장공략 2년만에 세탁기 시장에서 대우 제품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였던 것이다.
칠레는 11 %의 관세만 물면 전세계 어느 제품이건 수입이 허용되는 정글 시장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서 대우차와 가전제품이 선풍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은 품질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뜻이 된다.
이렇듯 ‘세련된’ 시장에 대우가 만든 자동차를 내놓고자 꿈을 태동시켜 가시화한 것이 지난 1992년의 일이다. 대우는 먼저 이 만만치 않은 나라의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우리 손으로 차를 팔 것인가 하는 고뇌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지극히 초보적인 발상으로 전환하여 유능한 파트너와 힘을 함께 모으기로 하고 양측간 합작계약을 체결한 것이 그 해 6월이었다.
첫 선적분이 도착하여 요란하게 판매를 개시한 것이 10월 초였는데, 이 2개월 여의 준비기간은 그야말로 전쟁판과 굿판을 섞어 놓은 난리법석의 와중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한눈 팔거나 자문을 구할 여유가 없었다.
TV와 신문지상에 한바탕 바람을 불어넣은 대우는 판매 시작날을 앞두고 모두 숙연하게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문이 한꺼번에 쇄도하여 재고량을 위협하더니 급기야 부랴부랴 본사에 향후의 선적계획을 앞당겨 달라고 사정을 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대우는 때를 놓치지 않고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판매개시 일주일만에 1,000대 판매....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칠레의 연간 승용차 시장이 당시 많아야 70,000대 수준이고 이를 다시 36개가 넘는 세계 유수의 메이커들이 할거하는 상황에서 신예 ‘대우’의 이 돌풍은 경쟁사들을 경악시킬 뿐이었다.
‘대우 신드롬’은 날이 갈수록 확산되어 하루 아침에 여기저기에서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고, 나중에 진출한 대우전자의 브랜드세일 프로젝트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급신장 덕분에 대우 칠레자동차법인은 진출 1년만에 6만5천평방미터가 넘는 자체 사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2년 진출 이후 대우는 닛산(Nissan), 오펠(Opel), GM, 도요다(Toyota) 등 세계적인 거인들과 주거니 받거니 선두 랭킹 다툼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차분히 따져보면 자동차라는 상품은 단지 몇 대를 팔았느냐로 결판을 낼 성질의 물건이 아니다. 아이를 낳는 고통에 못지 않게 앞으로 그 아이를 잘 키우고 뒷바라지해주는 더 큰 일이 놓여있듯이, 많이 팔고나서부터 이후 어떻게 잘 정리해주어야 하느냐에 대해 진심으로 고뇌하며 정성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경영철학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칠레 자동차판매법인 사무실 벽에 걸린 사훈의 맨 첫 문구는 다음과 같다.
“고객은 우리의 활동과 결과를 있게 하는 원천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는 우선 고객의 입장을 기준으로 잉태되어야 한다.” 대우는 칠레에서 자동차의 성공이 있자 자신감이 붙었다. 그 자신감은 전자제품 판매로 이어졌다.
1993년 10월 칠레의 시그도 코페르스그룹과 34대66의 합작으로 자본금 1백50만달러를 투자하여 설립한 대우전자 판매법인(DESCA)은 국내업체로서는 최초의 합작법이었다. 전자판매법인은 컬러TV VCR 세탁기 등을 대우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주)대우의 칠레법인이 1970년대 중반부터 영업을 해온 이래, 대우전자는 (주)대우의 법인을 이용해 바이어 브랜드와 데이트론 브랜드로 주변국가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지에 재수출만 하였었다. 때문에, 당시 칠레 내에서의 일반 소비자들의 대우 브랜드 인지도는 극히 낮았다.
하지만 1992년 10월부터 시작된 대우자동차의 성공적인 영업으로 대우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자동차로서의 알려진 대우의 브랜드이미지를 어떻게 전자제품과 연결시켜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나 하는 것이 과제였다.
고민끝에 만든 전자제품 첫 TV 광고시리즈는 이미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우의 르망자동차를 출연시켜 소비자의 관심과 흥미를 끈 다음, 주연 모델로 하여금 “저는 성공적인 대우자동차를 소개하고자 나온 것이 아니고 최고기술의 대우전자제품을 소개하고자 나왔습니다.”고 멘트를 넣으면서 제품광고를 실시하였다.
또한 칠레의 전 백화점과 전문점의 대우 소비자판매원 전원을 초대하여 DESCA 및 제품 소개를 위한 이벤트를 개최하여 산티아고시 최대의 뮤직홀이 초만원을 이루는 성공적인 행사를 치뤄내었다. 그 결과 1993년 11월부터의 제품판매 개시 이후 백화점과 전자제품 전문점에서 선진국의 유명브랜드제품과 어깨를 겨루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공기방울 세탁기는 출시하자마자 매진된 후 소비자의 성화 때문에 “다음날 OO일에 제품이 도착되니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가슴 뿌듯한 사과문 형식의 신문광고를 낸 적도 있다. 유달리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칠레의 국민들이지만 대우의 끝없는 열정에는 그 완고한 대문을 환하게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대우전자 칠레 판매법인은 칠레에서의 성공적 영업에 힘을 얻어 1995년 6월 현지 합작사와 각각 150만 달러를 출자해 페루에 판매법인을 추가로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7년 1월 부터는 현지 파트너측의 지분전액을 인수하고, 현지업계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영입하여 영업망과 A/S망을 재구축하여 영업규모의 비약적 도약을 향하여 꾸준한 성장을 하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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