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4-2-2-03 대우, 리비아에서 신화를 만들다 – 진출의 신호탄 가리우니스의과대학

대우는 수단으로의 진출 후 아프리카로의 진출을 적극 모색했다. 그러던 어느날 대우는 L.A 지사에서 리비아의 입찰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 입찰정보는 가리우니스의과대학 신축에 대한 국제입찰 정보였다.
국제입찰 일자는 정보를 받은 때로부터 2개월 후인 1977년 3월 15이었다. 리비아로 진출할 다시없는 기회였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 없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회의 신은 대우의 손을 높이 들어주었다. 입찰마감일이 다시 두달 후인 5월 15일로 연기되었다는 것이었다. 입찰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면서 대우는 리비아와 결코 좋은 관계에 있지 않은 수단 때문에 고심했다. 그러나 리비아를 수단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우는 양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일을 해나갔다. 심지어 수단을 다녀온 직원들의 여권을 다시낼 정도의 노력이었다. 한편으로는 수단과 마찬가지로 불안감이 있었다. 이는 리비아가 아직 한국의 수교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대우는 민간외교를 통한 국교수립의 효과를 기대하면서 입찰에 참여했다. 입찰 결과 대우는 3위를 차지하였지만 1,2위 업체가 모두 부적격업체로 판명되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었다. 여기에서 또 한번 기회의 신은 대우의 팔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계속 뒤따랐다. 리비아 문교성의 승인은 끝났으나 건설부의 조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유는 가격이 너무 높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가격에 대한 협의를 거듭한 끝에 어렵게 계약에 이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대우가 오늘날까지 리비아에서 각종 공사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가리우니스의과대학 프로젝트의 성공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었다. 바로 이 프로젝트가 리비아 진출에 신호탄이 되었던 것이다.
가리우니스의과대학 공사를 8천만 달러에 따내어 장정의 길에 오른 대우는 동년 6월에 토부룩-자그룹(Tobruk-Jugrub) 간 도로공사를 6천만 달러에 따내어 리비아에서의 건설공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78년 6월 착공된 가리우니스의과대학은 리비아에서 대우의 첫작품인 만큼 대우인들이 애정을 갖고 정성을 아끼지 않았던 공사였다. 4년 3개월이 걸린 이 공사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하여 54만명이었다.
가리우니스의과대학은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나무가 많고 조용하여 가든시티라고 불리우는 가리우니스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8각을 이룬 창문의 차광막과 대리석 외벽 등이 조화를 이뤄 단순히 건물이라기 보다는 예술품으로 보이는 이 의대는 본대학과는 8km 떨어져있고, 북쪽으로 부속병원이 들어섰다.
모두 21개 건물로 구성된 가리우니스의과대학은 5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최신의 시설을 갖추었고, 6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 건물의 특징은 구조상으로 조립식 판넬을 사용, 외벽이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각 창문마다 현지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차광막을 방향에 따라 다른 형태로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 차광막은 건물의 외관을 독특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차광막이 향에 따라 각이 5-8개로 변동이 심해 생산에서 운반, 조립 때까지 가장 애를 먹은 공사였다. 왜냐하면 각이 조금만 떨어져나가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외관 때문에 가리우니스의과대학 건물은 리비아에서 가장 멋있고 견고하며 외형과 기능이 잘 조화된 건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 의과대학공사는 당시 이태리업체가 짓고 있던 트리폴리의 알파타의과대학보다 뒤늦게 착공해 1년 먼저 준공시킴으로서 대우인들의 끈기와 추진력을 리비아와 인근 나라에 널리 확인시키기도 했다.
말했듯이 가리우니스의과대학 공사가 끝나자 대우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리비아는 자국의 국토개발사업에 대우를 동참시켰다. 그리하여 1979년에는 Waddan-Zella 도로공사 5천 3백만 달러, 사막 남부의 우조비행장 건설공사 5천 5백만 달러, 21Unit 학교공사 3천 1백만 달러를 수주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 벵가지(Benghaz)i 외곽도로 121km 건설공사를 비롯하여 Zliten 시멘트공장 건설공사, Brak-Bete 도로공사, 1억 3백만 달러의 Zella-Maradah 도로공사외에도 거의 1개월에 1건 정도의 공사를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1981년에도 대우의 계약실적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1월부터 시작된 건설행진은 도로공사에 이어 아파트건설공사 학교, 병원 등 공사규모로도 대형화 다양화 되어 리비아 기간산업과 복지산업을 망라하는 매머드 현장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1981년 한해에 대우가 리비아에서만 기록한 15억 달러의 수주액은, 그것을 바라보는 국내의 업계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위험수위론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우는 장삼이사들의 우려와 빈정거림에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공사를 진행했다.
대우는 리비아시장의 확대를 통하여 성장기반을 확고하게 다짐은 물론,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발돋음 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덧붙여 대우가 리비아에서 확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일 중의 하나는 우조비행장 건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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