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미국 컴퓨터 시장 판매개시 1년만에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7 %의 경이적인기록의 신화를 창조한 대우의 ‘모델 D’를 미주시장에 배급, 판매해온 미주지역 딜러망인 리딩에지(Leading Edge Products, Inc)사는 단번에 미국내 제 6위의 컴퓨터 판매회사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 등으로 경영부실을 초래했다. 대우는 리딩에지가 구축해 놓은 현지 판매망과 리딩에지 브랜드를 통한 수출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1989년 11월 15일 리딩에지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대우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계기가 된 것은 바로 한국업체로서는 처음으로 16비트 퍼스널 컴퓨터를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그 당시 미국 PC시장은 소비자들이 고성능, 저가격의 PC를 구매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반면에 기존의 업체들은 이미 확보한 영역을 유지하는데 만족하고 있었다.
대우는 미국시장이야 말로 신제품이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하고 미국 PC 시장의 진출을 위한 별도의 T/F팀을 구성하였다.
대우 내부에서 ‘프로젝트 Q’라고 명명된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가격과 성능에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1984년 4월 독자적으로 IBM 호환기종 16비트 PC의 개발에 착수한 이래 약 35명의 인원이 생산원가를 최대한 낮출 수 있는 모델 개발에 착수하여 9개월여의 각고 끝에 기존의 IBM PC와 비교하여 IC를 비롯한 부품수를 40 %, 마더보드(Motherboard)의 인쇄회로로 면적을 50 % 축소한 컴팩트한 모양의 컴퓨터 ‘모델 D’를 완성하였다.
그 당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던 IBM사의 컴퓨터 사양에 모델 D의 기본형 사양을 맞추기 위해서는 미화 2,985달러를 지불하여야 했으나 당시 모델 D의 소비자 가격은 1,485달러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가격 및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대우는 1985년 6월부터 대우의 미주지역 딜러망인 리딩에지사(Leading Edge Products,Inc)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컴퓨터들은 단 한건의 클레임도 기록하지 않은 채 1988년 11월까지 3년 5개월만에 총 수출 물량 50만대, 수출액 5억달러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이 모델 D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는 뉴욕 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타임즈 등 주요 언론 및 컴퓨터 전문지들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미국 소비자연맹은 당시 시판되고 있는 모든 16비트 컴퓨터 IBM호환기종 중 대우의 모델 D를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하였다. 미국 언론의 갈채를 받으며 모델 D는 판매개시 1년만에 총 11만7천대가 판매되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7 %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당시는 IBM 호환업체들도 별로 없었고 먼저 제품을 내놓는 회사가 시장 선점에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대우는 그 시기에 제품 양산이 가능해 국내 최초 대량 수출의 돌파구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국내 최초 50만대 수출 돌파라는 대기록을 대우가 컴퓨터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 국내 최초로 첨단 제품을 수출함으로써 우리의 기술수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국산 컴퓨터들에 대한 외국 소비자들의 신뢰감을 조성하여 이후 국내 타업체들도 기존 외국업체로부터 기본사양을 공급받아 그대로 생산하던 주문자공급생산방식(OEM)에서 탈피하여 컴퓨터 대량수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연이어 대우는 32비트 PC모델(Model) ‘D3’를 비롯하여 첨단 랩탑 PC까지 개발하여 본격 수출에 나섰다. 이때 리딩에지가 무리한 사업확장 등으로 경영부실을 초래하자, 대우는 리딩에지가 이미 구축해 놓은 현지 판매망과 리딩에지 브랜드를 통한 수출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1989년 11월 15일 리딩에지를 인수하였던 것이다.
이후 대우는 수차례에 걸친 증자를 통하여 당초 2백만달러의 자본금을 3천만달러까지 확대하였다. 대우가 리딩에지를 인수한 후 경영정상화를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던 것은 약 1천4백개에 이르는 딜러망의 활용이었다.
대우통신이 1991년말과 1992년초에 걸쳐 디스트리뷰터로부터 딜러, 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망으로 인한 중간 마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유통망으로 급부상한 양판점(Mass Merchandiser), 컴퓨터 수퍼스토어 등 신규 유통망의 개발을 적극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매출도 점차 증가했다.
1993년말부터 1994년도까지는 486급 및 펜티엄 PC의 판매증가, 멀티미디어 제품과 같은 고부가가치 매출전략, 부품업체와의 관계개선을 통한 원가구조의 개선, 노트북 컴퓨터 등 신제품의 출시, A/S의 외부용역 추진 등 조직 재정비를 통하여 이익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는 미국 경기의 활황과 더불어 리딩에지의 손익개선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마침내 1994년도에는 당기순이익 1천만달러 이상을 달성하게 되었고 1995년도에 들어서도 반기결산 결과 5백만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 중반들어 미국 PC시장이 격심한 경쟁상황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채산성 등의 문제로 경영에 적지 않은 압박을 받아왔다. 이 상황에서 대우는 1995년 4월경 스위스계의 한 전자 및 통신사업을 하는 회사를 대신한 투자회사로부터 M&A에 대한 제의를 받았다.
PC수출 문제에 있어서도 가격경쟁력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대우로서는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 등 경쟁력이 있는 품목으로 조정하여 수출을 강화할 수 있으며, 리딩에지 위주에서 탈피하여 수출선을 다변화시킴으로써 향후 수출물량을 점차 늘려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리딩에지 매각을 최종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리딩에지의 매각이 미국시장에서의 철수나 PC수출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매년 15만대에서 20만대 이상의 PC를 미국시장과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수출함으로써 국내시장에서보다 미국시장에서 더 강한 면모를 보여왔던 대우는 지난 1994년 국내 최초의 멀티미디어 노트북 PC를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사에 ‘트래블메이트 4000M’이라는 모델로 수출, 국내 업체중에서 가장 먼저 노트북PC 수출에 나섰다.
이 제품은 타임지를 비롯한 각종 미국 잡지에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되는 등 노트북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품이 되었고, 대우는 1994년부터 1995년에 걸쳐 약 15만대의 노트북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에 수출했다.
그러나 1995년들어 데스크탑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다소 컴퓨터 수출 실적이 떨어지기도 하였지만, 1996년 들어서면서 본체 및 모니터 일체형 PC인 ‘코러스홈’을 유럽시장에 수출하였고, 펜티엄노트북 ‘솔로7500’ 시리즈를 내세워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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