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세계적인 공업지대로 에디슨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어 미국 공업화의 요람이라 불리우는 클리브랜드. 미국 중서부에 위치하여 호수라기보다 마치 바다처럼 느껴지는 5대호의 하나인 이리호와 바로 접한 이곳에 대우의 지게차 판매법인인 DEC(Daewoo Equipment Corp.)가 자리잡고 있다.
산업용 차량 가운데서는 가장 경쟁이 심하다는 지게차를 처음 생산해낸 미국 본바닥에서 수십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쟁쟁한 경쟁사들인 캐터필러, 클라크, 하이스터와 그리고 일본의 유수한 중공업체인 도요타, 미츠비시 등과 당당히 맞서며 DEC는 대우의 깃발과 이름을 미국 전역에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대우는 1960년말 국내 최초로 지게차를 생산한 이래 1984년부터는 미국 캐터필러사와 OEM계약을 하고 년간 1억불 이상의 지게차를 전세계시장에 공급해 왔다. 이 사업은 국내외에서 국제협력사업의 표본이 되기도 했는데, 지난 1993년 9월 계약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그동안 축적된 생산기술력 및 우수한 제품 품질에 자신을 갖고 지게차 수출사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93년 7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단일시장인 북미지역에 대우중공업 최초로 지게차 판매법인인 DEC를 설립함으로써 미주수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DEC가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4년초이다. 1993년 7월 지게차 판매법인 신고 이후 딜러망 구축과 관리시스템을 보완해 나가며 차근차근 제반 영업활동의 준비를 시작한 대우는 그간 캐터필러사를 통해 입증된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독자 브랜드 수출을 위한 신속한 준비 체제로 전환하여, 미국을 축으로 하여 전세계 시장의 판매망 구축을 위해 한발 한발 다가섰다.
그러나 미국내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여러 경쟁사들은 대우가 서비스체제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제품을 사면 손해만 볼 것이라는 등의 악성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하여 딜러 접촉이나 고객과의 상담 등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하여 대우는 규모나 장기 비전 등의 이미지 제고에 적지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것도 미국과 일본의 선진 유수의 중공업체들이 이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시장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은 피나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그리하여 우수한 제품 품질과 신속한 서비스체제의 구축이라는 두 가지 명제의 실천을 바탕으로 대우의 전략은 정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영업개시 3년이 되는 1996년에 4,500대의 매출을 달성하여 취급품목 기준으로 6.5 %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했다. 즉 독자수출로 판매를 하여 캐터필러와 OEM사업을 하던 시절보다도 오히려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할 만큼 큰 성장을 하며 미국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DEC가 이렇게 설립 초기부터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제품의 품질에서 신뢰를 얻었다는 점이다. 지게차의 엔진, 트랜스미션과 디스크 브레이크 등 핵심 부품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직원과 딜러들이 합심노력하여 최종 소비자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그리고 산업용 차량 판매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서비스 체제를 빠른 시일 내에 구축하는 등 신속한 아프터서비스 체제를 갖추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딜러의 서비스맨 교육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하여 그 능력을 향상시키고, 부품창고를 설립하여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한 부품들을 24시간 내에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는데, 이를 통해 고객들로부터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우맨들의 성실과 열정이었다. 현재 DEC는 주재원 5명과 현지인 75명으로, 대부분의 인력을 현지에서 채용함으로써 회사의 현지화에 노력하였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죠지 셀을 배출한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그들의 연주가 세계인의 가슴에 울려 퍼지듯, 지금 DEC의 놀랍고 감동적인 교향악이 이곳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전세계로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대우는 또 1994년 7월, 미국 맨하탄과 허드슨강을 경계로 한 뉴저지주에 건설중장비와 공작기계의 미국내 판매법인인 DMC(Daewoo Machinery Corp.)를 설립하였다. 그야말로 DMC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에 버티고 있는 셈이다.
DMC의 역사는 지난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우는 지난 1979년부터 (주)대우 현지법인인 ‘대우아메리카’ (Daewoo Int’l America Corp)를 통해 1982년 NC선반, 1987년 MCT, 1988년부터 굴삭기를 북미사장에 판매, 수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장비제품의 판매를 위탁하는 형태로는 수출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1993년 하반기부터 대우중공업 주도의 영업체제로 개편하고 1994년 6월 대우아메리카에서 운영하던 영업조직을 인수하여 DMC라 명명하였다. 그리하여 대우중공업의 미국시장 내 건설중장비와 공작기계의 판매법인이 탄생된 것이다.
기계제품에 있어서 세계 일류를 자랑하는 유슈업체들이 자리잡고 있는 미국시장에 DMC는 마작, 모리세이키, 오쿠마 등 공작기계와 고마츠, 히타치 등 건설중장비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일본과 미국의 공작기계업체인 신시내티밀라크론, 캐터필러, 존디어 등 건설장비업체들과 서로 자국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처음엔 대우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고전했음은 물론이었다. 고가의 공작기계와 건설중장비를 고객이 쉽게 구매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거래가 이루어져도 품질문제로 반품이 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DMC는 건설중장비와 공작기계의 수출 불모지인 미국 땅에서 철저한 판매체계 구축에 성공했다. 세계 유수의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기까지 구성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필연적으로 전제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바로 서비스 혁명을 통한 고객만족활동이 오늘날 DMC를 일구어낸 주요인이다. 24시간 내에 각종 서비스와 부품공급을 완료한다는 목표로 질주해온 DMC는 서비스 기동타격대를 운영함으로써 24시간 내에 미국 전역에 걸친 서비스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다. 게다가 서부지역을 위해서는 정규시간 외에 특별대기반까지 편성, 24시간 서비스체제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DMC는 공작기계업체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의 부품자동화 라인에 설치한 공작기계를 수주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DMC는 업무의 대부분이 현지인에 의해 결정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현지인 모두는 대우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말하자면 철저한 현지화가 이루어진 곳이며 그 결과 현지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내일을 전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DMC는 1996년말 기준으로 공작기계 딜러망 28개소, 중장비 딜러망 54개소가 확보되어 있는데, 향후 서부지역 딜러망 개발에 주력해 총 1백여 개의 딜러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들 딜러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신제품 교육 및 기존제품의 보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주요 딜러들로 구성된 딜러협의회에서는 분기별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경영층에서도 이러한 제도를 딜러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의 수렴창구로 활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한국 본사방문 기회를 제공, 대우중공업에 대한 긍지를 심어 주는 등 딜러와의 유대 강화에 힘쓰고 있다.
DMC는 향후 신제품의 지속적인 개발과 고객만족을 성실하게 실시하여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출범과 반덤핑 등의 보호 무역 장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현지 생산기지 설립을 추진중에 있다.
공작기계의 경우 디트로이트 사무실 외에 시카고, 로스엔젤레스에 기술센타를 두어, 건설장비는 뉴저비 외에 애틀란타에 교육 및 기술센타를 두고 현지에서의 장비교육, 교재개발, 기술정보 수집, 신제품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참고로 DMC는 1995년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한 바 있으며 2000년에는 매출 2억 달러 이상, 선반 및 굴삭기의 북미 내 상위 5위 안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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