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세계경영의 현장은 6대주 5대양 걸쳐 있다. 사업영역도 전자․자동차에서 중공업․건설부문에 이르기까지 전업종을 포괄한다. 세계인이 함께 만들고 세계인이 함께 쓰는 세계경영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는 현장들이 세계 곳곳에서 대우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확대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대우가 세계 3대 석유시장의 하나인 ARA(Amsterdam-Rotterdam -Antwe게) 중심부 앤트워프에 현지법인인 유니버샬 리파이닝(Universal Refining N.V)를 설립하고 원유정제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86년 4월이었다.
국내기업중 해외에서 정유공장을 운영한 것은 대우가 처음이었으며, 해외진출이 활발한 일본기업도 아직까지 이와 같은 사례가 없을 정도였다. 대우의 창조․도전 활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바로 이 앤트워프 정유회사이다.
앤트워프 공장은 대우가 진출하기 이전에는 미국의 석유재벌인 오시덴탈(Occidental)사의 소유로 되어 있었으나 1970년대말 극심하던 노사분규로 1년이상 조업이 중단되면서 소유권이 코스탈(Costal)사로 이전되었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노사분규로 경영이 악화되자 코스탈사 마저 1985년 철수함으로써 공장은 완전히 방치된 상태에 이르렀다.
1981년 이래 리비아 건설공사 대금의 일부를 원유로 결제받아 이를 현물로 처분해오던 대우는, 리비아와 동일한 시장에서 원유를 판매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마찰을 해소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리비아 원유 처리에 적합하게 설계된 앤트워프공장을 인수하게 되었다.
대우가 인수할 당시만해도 현지는 물론 선진 각기업들은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경영에 실패했는데 과연 대우가 해낼수 있을지 많은 의구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대우는 특유의 도전정신을 발휘, 인수 결정과 동시에 그 동안 흩어져 있던 옛 종업원들을 중심으로 인원채용 및 조직구성을 서둘렀고 이를 마무리할 틈도 없이, 버려졌었던 시설의 보수 및 재가동 준비를 서둘러 인수 2개월 만에 공장을 완전 정상가동시킴으로써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앤트워프 공장은 7만평 부지에 하루 6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상압 증류시설과 가솔린 생산시설인 나프타 접촉 개질시설, 액화천연가스(LPG) 회수시설 및 경유 탈황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
크고 작은 52기의 탱크에는 원유와 제품을 4백3십만 배럴까지 저장할 수 있으며 부두와 철도가 공장에 직접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로테르담을 비롯한 유럽 주요도시를 잇는 파이프라인으로 연결, 수송측면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90%는 독일을 주시장으로 하여 유럽 각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나머지 10%만이 벨기에 국내에 판매되었다. 그러다가 1996년들어 내수판매에 대한 세제상의 규제가 완화된데 힘입어 내수판매 비중이 30%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주요 제품은 액화천연가스, 나프타, 휘발유, 경유, 중유 등으로 이의 연간 매출액은 약 3억 달러에 이른다. 주요 고객으로는 미국 및 인근 유럽국가의 석유 메이저(Major)들로부터 소규모 난방용 판매업체에 이르기까지 백여업체에 달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주시장인 독일이 50%, 베네룩스 3국이 30%, 영국 등 기타 국가들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앤트워프 정유회사는 영업 및 관리직 사원을 포함하여 총 95명 정도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다. 외부 발주가 가능한 정비보수와 실험실 업무를 거의 100% 외부 협력업체에 의존함으로써 인원을 최소화하여 경비를 절감하고 노사마찰의 소지를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종업원의 절반 가량은 대우가 경영하기 이전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 중에서 엄선하여 다시 채용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현장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과거 노사분규의 쓰라린 후휴증을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생산성과 애사심이 놀라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1991년, 벨기에 정부는 노사분규로 폐업직전에 있던 공장을 인수, 노사화합과 뛰어난 영업활동으로 단기간에 기여한 공로로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영예인 기사작위를 현지대표에게 수여했다
벨기에에는 대우가 국내기계업체로서 유럽지역에 최초로 설립한 유로대우가 있다. 1987년 1월 ‘대우’ 자체브랜드를 달고 국내 굴삭기 수출의 효시로 네덜란드에 처녀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 및 미주지역에 연간 2천~3천만달러 상당의 굴삭기를 수출해 온 대우는, 1990년 9월 벨기에의 CBM사 주식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1월 『벨기에 유로 대우』(Euro Daewoo S.A.)를 설립했다.
이는 1992년 유럽공동체가 결성되면 유럽공동체 이외 지역으로부터 수입되는 각종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부과, 규격에 의한 수입규제 등이 예상됨에 따라서였다.
웨스트팔리아(Westfalia)사의 자회사인 CBM사는 벨기에의 왈룬(Wallon)지역 프라머리(Frameries)시 광산지대에 위치한 1만5천평 규모에 종업원수가 100명 정도되는 광산장비 생산업체로서, 중장비관련 각종 제관품 및 광산장비를 생산해 캐터필라사와 얀마사 등에 OEM방식으로 수출해 온 중견업체였다. 그러다가 1985년 이후 이 지역의 광산 경기불황에 따른 경영악화로 업종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활로를 물색하던 중 대우의 제의를 받게 된 것이었다.
대우는 지난 1984년에 매각 처분에 나선 영국의 하이막사를, 1989년에는 서독의 하노막사의 인수를 시도했지만 전문지식, 경험, 정보등의 부족으로 두번씩이나 좌절의 아픔을 경험한 터라 CBM사의 인수는 더욱 값진 열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우는 유럽 각지에 이미 확보된 딜러를 통해 중장비의 안정된 공급을 위한 현지 생산이 필수적임을 인식하여 그동안 현지공장 설립을 추진해 왔었는데, 그 결과로 CBM사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기계공업 최초의 유럽 현지공장 설립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게 된 유로 대우는, 1990년대 이후 국제화시대의 개막에 따라 연이어 진행되는 해외 현지 진출의 기폭제가 되었다.
기존 CBM사를 인수해 출발한 유로 대우사는 수익성없는 부품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굴삭기 생산을 위한 본격 작업에 착수하여, 인수 6개월만인 1991년 6월 대우 굴삭기 1호기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후 유로 대우사는 생산증대를 위해 굴삭기 제관, 조립라인을 증설하고 1992년 3월에는 4백평의 도장공장을 준공하는 등 계속적인 시설투자 및 작업환경 개선을 추진해 왔다.
또한 1994년부터는 지게차 판매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95년 3월부터는 총 2천만달러를 투자하여 연간 1천5백대의 굴삭기를 생산할 수 있는 대지 2만2천5백평(연건평 7천평)규모의 공장으로 증설하여 다양한 제품을 유럽시장에 공급함으로써 본격적인 유럽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을 튼튼히 하였다.
유로 대우사는 최근 유럽지역 굴삭기 제조업체로는 최초로 ISO9002를 획득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지난 1992년 10월 ISO 인증추진팀을 구성한지 최단기간인 10개월만에 인증을 취득한 것이다. 대우는 3차례에 걸쳐 진행된 까다로운 심사에도 불구하고 1백점 만점에 84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통과하였다.
이로써 유럽지역내 유일한 국내 굴삭기 현지 생산업체로서 제품의 대외 신뢰도 및 인지도를 높이는 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어 향후 수출전망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으면서 현대 유럽의 중심국가로 자리잡은 벨기에. 과거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인 벨기에의 남부에서 지금 조용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을 향한 유로대우의 힘찬 대장정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DAEWOO’라는 푸른색 로고를 앞세운 대우굴삭기를 유럽전역에서 볼날이 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