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대우모터 폴스카(Daewoo Motor Polska)의 전신인 FSL은 지난 51년 설립된 폴란드 최대의 상용차생산공장이었다. 원래 ‘폴스카’는 ‘농민들의 땅’이란 뜻이다.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구릉과 벌판을 가리켜 하늘이 내려준 농경지라는 의미에서 폴란드 국민들이 조국을 호칭할 때 쓰는 사랑스런 말이다.
바르샤바에서 동남쪽으로 1백70km 떨어진 루블린시(인구 약40만명)에 위치한 FSL은 총 43만평의 부지에 종업원 6천6백여명이 본공장과 10개부품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본 공장은 1~2톤급 픽업트럭(모델명 주크)과 마이크로버스(모델명 루블린)등 상용차 3만대(연산)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10개 부품공장은 주물 단조 스프링등 자동차관련 소재를 다양하게 생산한다.
휠 디스크의 경우 폴란드에서 유일한 생산업체로 연간 2백만개를 공급중이다. 쇳물을 부어 브레이크 드럼.디스크, 실린더블록등을 제작하는 주물공장은 처리능력이 연간 6만톤 규모에 이른다.
현재 국내에서 대우가 연간 3만톤의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완성차 40만대분을 공급하는 사실과 비교해 볼때 FSO의 부품생산 설비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공장 내에는 35만kw급 자체 화력발전소가 있어 설비를 가동하고 남아도는 전기열 온수 등을 인근 루블린시에 공급하고 있다.
대우는 1995년 6월 인수계약에 서명한 뒤 4개월간 준비작업 끝에 초기자본 6천8백만달러(대우지분 61%)로 대우모터 폴스카를 정식 출범시켰다. 대우에게 있어 폴란드 현지 자동차 생산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폴란드는 미국의 GM과 이탈리아의 피아트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이 최대의 공략대상으로 삼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대우가 1995년 6월 폴란드 FSL을 인수한데 이어 11월 14일에는 폴란드 최대의 국영 자동차사인 FSO를 인수함으로써 루마니아의 로대자동차(연산 20만대), 체코의 아비아(연산 7만5천대) 등 동구권 3개국에서만 연산 58만5천대의 자동차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는 오는 2000년까지 이 공장에 3억4천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상용차 2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1995년 11월 24일에는 루블린 공장에서 넥시아 1호차 생산 기념식을 거행했다. 행사의 중요성을 말해주듯 이날 기념식에는 폴란드 주요 언론사 기자 80여명이 참석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는데, 현지 TV는 15분짜리 특집프로그램을 마련해 총 네차례에 걸쳐 전국 및 지방네트워크를 통해 방영하는 등 대우의 폴란드 자동차 사업 진출에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DMP에서 근무중인 폴란드 임직원들은 최근 대우라는 이름의 한국 기업체를 통해 국영기업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의 충격을 느끼고 있다. 대우의 인기에 대한 재미난 얘기가 하나 있다. 루블린 시내에 위치한 유니아호텔 카운터 뒷쪽 벽에는 뉴욕, 런던, 서울의 시각을 알리는 시계가 걸려 있는데, 처음에는 동경 현지시각을 알리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우 직원들이 호텔을 많이 이용하니까 어느날 서울 현지시각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대우의 진출로 폴란드 현지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출범후 겨우 몇달새 이 공장의 생산성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1996년 7월까지 노동생산성은 전년 동기대비 2.7배나 높아졌다. 국내 기업의 경우 연간으로 쳐도 10%이상 생산성이 제고됐다면 대단한 일인데 DMP의 생산성이 몇달새 몇 배씩 오르는 비결은 무엇일까.
인수 당시 FSL의 설비가동률은 30%대였다. 그런데 합작출범이후 생산공정상 병목현상의 해소, 한국산 공작기계․운반장비(지게차)․공구류의 도입, 식당등 작업환경 개선등 몇가지 사항을 보완하자 기존 설비만으로 놀랄만큼 가동률 제고가 가능했던 것이다.
생산성의 이같은 극적인 향상과정에서 무엇보다 DMP 직원들은 생산과 판매가 서로 완전히 분리되는, 이른바 ‘자본주의적’생산 양식이 어떤 것인지를 본격 체험하게 됐다는 점에 가장 놀라고 있다. 돌이켜보면 종전 사회주의 체제하의 직원들 입장에선 국가가 배정한 물량만 때맞춰 대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일단 생산량이 배정되면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업시간, 노동강도가 정해졌으니까.
그런데 대우와의 합작 이후엔 설비가동률을 높여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것이 지상목표로 바뀌었다. DMP의 자유노조위원장 카리코프스카씨(여)는 “과거엔 우리 공장의 생산품에 대해 수요가 적어서 설비를 충분히 가동치 못했는데 대우와 합작한뒤 판매가 급격히 신장된 것이 생산성 제고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대우측은 폴란드내 자동차판매 전담법인인 ‘센트룸 대우’를 1995년 12월 설립, 폭넓은 판촉활동을 벌여 눈부신 매출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급격한 생산성 향상에는 기업내 제도나 절차의 정비및 간소화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개선 노력과 함께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적극적 참여가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DMP에는 현재 3개의 산별노조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유노조(Solidality) 소속 근로자가 다수이고 금속노조, 엔지니어노조가 병립한다.
이색적인 것은 근로자의 충원없이 생산성을 지난해보다 2.7배 높이겠다는내용의 사업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이들 3개노조가 처음부터 참여했고세부실행 계획에 일일이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인수 시 대우는 6천6백명 직원중 단 1명도 감축치않고 인수하며 임금은 폴란드내 동일업종 대비 1백5%에서 출발해 매년 5%포인트씩 상향조정, 3년내 1백20%선을 달성하되, 기간중 노사 분쟁은 일체 없애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DMP 출범이후 직원들은 종전에 비해 평균 1.7~1.8배가량 임금이 늘어났다.
대우는 DMP 직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1996년 근로자 320명을 한국에 불러 연수를 실시했다. 한국을 다녀온 근로자들은 “폴란드에 비해 훨씬 소득이 높은 한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들은 또 청소부도 없는 한국의 작업장이 왜 그토록 청결한 지 설명을 듣고는 처음엔 고개를 저어댔다는 후문이다.
국영업체 시절 공장내 작업장의 청소는 전담 요원이 맡으며 근로자들은 일체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한국처럼 근로자가 스스로 자기 주변을 청소하는 것은 청소요원의 ‘밥줄’을 가로채는 결과로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다.
DMP 근로자들은 1996년 6월1일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을 가족들에 공개하는 ‘오픈 하우스’행사를 회사창립후 45년만에 처음 가졌다. 한국직원들은 이토록 너저분하고 기름투성이인 작업현장을 가족들에게 보일 셈이냐며 근로자들이 스스로 자기 작업대 주변을 청소하도록 설득했다.
1996년 7월 들어 폴란드 직원들은 또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적 ‘충격’에 직면했다. 회사창립후 처음 ‘인사 고과’라는 이상한 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근무참여도, 제안능력, 상사에 대한 복종등 4가지 기초항목을 놓고 폴란드 인 간부가 각 근로자별로 고과를 매기도록 했다. 이 고과에 따라 임금인상률을 5단계로 분류, 차등지급했다.
DMP 직원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숙달된 토론문화를 충분히 발휘, 고과 결과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자기들끼리 납득한 뒤 대부분 불만없이 새 제도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DMP의 장래에 대해 직원들은 낙관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 FSL의 경영책임을 맡다가 합작후 감독위원회(Supervisory Board) 위원장이된 즈비그뉴 프루스씨는 “서유럽국가 기업들은 FSL에 관심이 없었다. 대우가 가장 역동적인 발전비전을 제시, 기회를 잡았다. 향후 DMP의 지속적발전 여부는 대우가 투자계획을 얼마나 차질없이 실현하느냐에 달린 문제다”고 말했다.
DMP는 2~3년내 바르샤바 증시에 공개해, 자본금 1억달러 규모의 현지 상장법인을 해외법인 중 처음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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