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대우 FSO는 대우자동차 세계화 전략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가 폴란드 국영자동차 회사인 FSO(Fabryka Samochodow Osobowych)를 인수키로 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 1995년 11월14일이었다.
그로부터 며칠뒤 대우의 창업주 김우중회장은 귀국과 동시에 (주)대우 이선주이사 등 그룹계열사 임직원 8명을 회장실로 전격 호출했다. 김회장은 이들에게 “FSO사 인수작업을 위해 내일 아침 바르샤바로 떠나라. 한두달이면 일을 마칠 수 있을 거다”며 그 자리서 총무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폴란드행 비행기표를 예약토록 지시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맞은듯 멍해진 이이사등은 간단한 옷가지 몇 점을챙겨 들고는 바르샤바로 가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8명의 ‘특공대’는 바르샤바에 도착하자마자 기획, 재무, 생산관리등 자기 전문분야별로 나눠 FSO사 인수작업을 벌여나갔다. 아직 합작회사의 기구나 조직형태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FSO측 직원들의 싸늘한 눈총을 받아가며 통역을 포함해 30여명이 고작 20여평 남짓 사무실 1개를 빌려 다닥다닥 엉겨붙은채 일을 했다. 폴란드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인수작업은 영어 통역을 사이에 두고 3단계로 의사를 전달하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이런 산고 속에 대우는 1996년 3월14일 FSO의 지분 10%를 2천만 달러를 주고 폴란드 최대 국영업체인 FSO사를 정식 인수하고 회사이름을 DAEWOO-FSO MOTOR CORPORATION로 바꿔 정식 출범했다. 경합대상이었던 GM을 당당히 제치고 인수에 성공했던 것이다.
GM이 3분의 1이상의 인원감축을 요구하고 채산성을 따지면서 머뭇거릴 때 대우는 종업원 전원 수용과 11억 달러 투자라는 조건을 당당히 내걸은 결과였다. 경합에 뛰어든 창업주 김우중회장은 FSO에 소속된 4개 산별노조 대표들과 만나 향후 3년간 2만5백명의 직원 모두에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5년간 파업을 않는다는 합의를 따냈다. 노사가 따로 없고 노조가 사실상 경영주체나 마찬가지인 사회주의 체제의 국영기업에서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보다 유리한 입지를 상정키 어려움은 물론이다.
FSO의 산별노조중 하나인 ‘금속노동자’ 노조위원장 얀 바박씨는 “근로자중 누구도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소속 계열사를 동시 인수해 준 데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투자를 통해 곧 50만대 생산체제를 갖춘다니 더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라며 “대우와의 합작은 FSO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라고 강조했다.
연구개발 담당이사 스체파닉씨는 “FSO가 전략적 제휴없이 과거를 떨쳐 일어서 발전할 여지는 없었다”며 “13~14개사의 인수타진 업체가운데 유일하게 실질적 제휴노력을 펼친 대우를 만난 것이 FSO로서는 행운이었다”고 기뻐했다.
FSO 인수협상이 마무리되자 이때부터는 사회주의 잔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관리와 생산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했다. 우선 비효율과 저생산성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현지직원의 한국연수를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미 폴란드 임직원 460명이 부평공장을 2~3개월씩 연수를 거치고 돌아갔다. 1996년 6월부터는 6개월 단위로 500명씩 3,000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연수를 차례로 받고 있다.
FSO 근로자들은 너무나 빠른 변혁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에서도 불량이 하나만 발생해도 라인을 스톱시키는 대우의 품질관리 노력과 생산성 향상 노력을 차츰 이해하고 있다.
현재 사장을 비롯해 한국인 직원이 쓰고 있는 사무실은 과거 FSO 시절에 비교해 면적이나 집기, 내부장식 등이 별로 달라진게 없다. 대신 출범 이후 작업장내 화장실, 식당, 샤워장, 공장바닥 증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FSO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비하면 아직도 생산성 수준이 20% 정도에 불과하지만 3년 뒤에는 한국 수준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폴란드 근로자들의 임금을 계속 올린다고 해도 1995년 기준, 월 330달러(약 25만원)이기 때문에 충분히 세계속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997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새 라인을 깔고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자본을 투자해 나갈 계획이다. 대우가 FSO를 인수하면서 처음 2년간 무관세 수입의 특혜를 확보해 놓은 이상 투자 첫해부터 과중한 자금부담을 일단 덜었다고 하겠다. 1997년 하반기에는 라노스를 조립 생산할 예정이다.
FSO의 첫 투자액은 8천9백만달러(한국은행 승인기준, 7백20억여원) 규모였다. 하지만 투자규모에 비해 FSO의 자산가치는 정말 엄청나다. 우선 본공장인 바르샤바 제란공장은 부지 33만평, 건물 7만평규모로 종업원 1만1천4백명이 승용차․픽업을 조립하고 엔진.트랜스미션을 생산할 수 있다.
폴란드 전역에 산재한 13개 부품계열사는 모두 합쳐 부지 55만평, 건평 20만평 규모로 기어박스 리어액슬 범퍼등 완성차에 소요되는 부품의 50%선(금액기준)을 조달한다.
한국과 비교할 경우 연산 46만~47만대를 생산하는 부평 대우자동차공장과 맞먹는 크기의 대형 조립업체에다 핵심부품 계열기업 13개를 덤으로 얹어 한꺼번에 인수한 셈이다. 더욱이 FSO는 사회주의국가의 국영기업답게 호텔아파트 리조트등 다양한 종업원 복지시설을 갖고있어 이를 합치면 토지 소유 면적은 무려 1백20만여평에 이른다.
FSO 제란공장은 올해의 경우 승용차 8만대, 상용차 2만대를 만들고 대우가 한국서 들여온 티코 에스페로 2만5천대를 녹다운 조립해 연산 12만5천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또 엔진 30만대, 트랜스액슬 25만대분을 생산할 계획이다.
폴란드는 인구 3천8백만명의 중부유럽 최대국가로 자동차 보유대수가 6백만대에 이르러 내수시장도 상당한 규모다. 특히 FSO사는 자동차 분야에서폴란드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 FSO는 지난 1948년 설립된 이래 지난해까지 누계 2백74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1976년 첫 출고를 시작한 주력 승용차모델인 ‘폴로네즈'(배기량 1천4백~1천9백cc)는 지난해 내수시장의 33%를 점유, 동급중 판매고 1위를 기록했다.
바르샤바의 관문인 오케인처 국제공항대합실 입구에는 폴로네즈 한 대가 번듯이 진열돼 위세를 과시할 정도다. 대우는 앞으로 폴로네즈의 기존 기능을 대폭 보완, ‘뉴 폴로네즈’라는 이름으로 새 모델을 출고할 계획이다. 또 오는 2002년까지 11억달러를 대우-FSO에 투자, 연산 5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폴란드FSO는 독일 등 서유럽 수출의 전진기지화하여 EC역외 무역 장벽이 예상되는 지역에서의 돌파구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또한 폴란드에는 부품업체의 동반 진출로 우수한 품질의 부품을 적기에, 적정한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대원강업, 대성 등 20여개 부품업체가 폴란드 FSO공장 인근에 포진, 대우의 현지 조립공장의 착실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이것은 부품 국산화율을 높이기를 원하는 현지 정부의 이해와도 거의 맞아 떨어지는 전략이기도 하다. 대우의 FSO 인수와 정상화 노력의 역사가 결실을 맺는 날, 우리 기업사는 새로운 전설 하나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