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 투자를 원하는 외국기업인이 꼭 방문하고 싶어하는 곳이 있다. 그 곳은 하노이에서 하이퐁 방향으로 약 20km 떨어진 사이동 첨단 공단내에 위치한 오리온하넬(ORION-HANEL Picture Tube co. Ltd)이다.
대우가 1992년 10월 베트남 국영업체인 하넬(HANEL:Hanoi Electronic Corp)과 70:30의 지분비율로 설립한 합작사인 오리온하넬은 연간 2백40만대의 브라운관 생산능력을 갖춘 베트남 최대의 브라운관 생산업체다.
오리온하넬은 베트남정부로부터 10년간 브라운관 독점생산권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대우가 베트남에 오리온하넬을 설립하고 10년간 독점생산권을 보장받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합작계약을 체결한 92년 당시만 해도 1억7천만 달러나 되는 대형투자는 베트남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당시는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엠바고(금수조치)가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유럽과 일본기업들은 모두 눈치만 보고 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정부는 초기에 대우가 과연 대규모 투자를 할만한 능력이 있는지 의심했고, 미국의 엠바고가 풀릴 경우 더 좋은 합작파트너를 구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독점생산권을 보장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우는 베트남 정부관리들과 맨투맨식의 끈질긴 설득으로 난관을 돌파해 냈다. 대우는 이처럼 발빠른 진출로 베트남에서 시장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9억달러(1996년말 기준)를 투자해 현재 단일기업으로는 베트남 투자 1위에 랭크되어 있다.
베트남에 브라운관공장을 진출시킨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이유는 동남아에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시장이 있는 곳에 가서 물건을 만들자는 기본 생각에서 베트남에 진출한 것이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의 전자공업단지가 몰려있는 중국남부와 가까워 앞으로 중국남부시장을 노린다는 점도 진출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오리온하넬은 1억7천만달러를 투자해 지난 1993년 9월 공장건설에 착공, 1995년 3월에 공장 및 설비설치를 완료하고 그해 7월 첫작품으로 14인치 컬러브라운관 생산을 시작했다. 사이동 첨단공단내 3만6천여평의 부지에 들어선 공장건물(8천6백평)은 대부분의 공정이 반자동화되어 있고 직원은 한국인 31명과 베트남 현지고용인 1천3백명이 근무하고 있다.
참고로 오리온하넬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50년간 토지사용권을 취득하였고, 30년간의 토지사용료는 베트남측 자본금으로 출자되었다. 또 토지 임대료는 매5년마다 5%범위내에서 조정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있다.
근무조건은 4개조 3교대로 일요일 없이 연중무휴로 공장을 가동한다. 브라운관 생산공장은 공정을 새로 가동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연속공정이 비용절감의 관건이 된다. 따라서 오리온하넬은 베트남의 인건비가 싼 점을 이용해 4개조로 편성, 일요일을 포함 3교대로 연중 무휴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덥고 습한 탓에 베트남의 대부분 공장에서는 상오 11시 30분부터 하오 1시 30분까지 2시간이 점심과 오수(午睡)를 즐기는 시간이다. 오리온하넬의 경우 사업초기에 이 작업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사업초기 대우의 현지 경영진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인 통념은 교육을 통해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오리온하넬에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처음부터 연중무휴로 일요일 없이 4개조로 편성해 1일 3교대로 일한다는 것을 교육했다. 그 결과 모두 현재의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오리온하넬에서 생산하는 품목은 컬러브라운관의 경우 14, 16, 20, 21인치 등 4개 모델(연 생산능력 1백80만개), 흑백브라운관은 12, 14인치(연 생산능력 60만개)등 2개 모델이며 생산량의 80%는 동남아 등지에 수출하고 20%는 내수에 충당하고 있다. 오리온하넬은 1998~99년까지 연간 2백만개 생산능력을 갖춘 제2차 라인을 증설해 총 4백만개의 브라운관 생산능력을 갖출 방침이다.
공장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은 1996년 미숙련 단순노동자를 기준으로 월77달러이고, 야간근무등에 따른 특별수당(30%)을 포함 월 90~100달러 수준으로 다른 일반 근로자들의 임금인 60~70달러에 비해 높은 편이다.
1995년 생산직 직원 2백명 모집에 4천명 이상이 지원한데서 오리온하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오리온하넬이 하노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장중의 하나가 된 비결은 높은 임금뿐 아니라 회사가 사원들의 복지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고 각종 부대시설과 근무환경이 다른 회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기 때문이다.
오리온하넬공장은 오리온전기의 본사가 있는 구미공단과 거의 같게 꾸며져 있다. 공장에 들어서면 갖가지 꽃들로 가꾸어진 정원이 공장이라기 보다는 공원에 온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준다. 또 사원들의 복지를 위해 잘 지어진 식당건물과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 의사 2명, 간호원 4명이 근무하는 회사내 병원 등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한 배려도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다른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오리온하넬에도 노조가 있다. 노조간부들은 대부분 공산당원이며 회사측과 여름하기휴가나 임금문제 등을 협상한다. 회사측은 노조측과 앞으로 3년마다 임금을 조정하기로 합의(다음번 임금협상은 1999년)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1년에 5%정도씩 임금을 인상키로 했다.
베트남 정부관리들이 베트남에 투자하겠다고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빠뜨리지 않고 소개하는 곳이 바로 오리온하넬이다. 이런 이유로 오리온하넬은 온통 외부인사들의 방문 계획일정으로 꽉 차있다. 이 곳을 방문하는 외부방문객은 줄잡아 월평균 5백명선에 이른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30명 내외가 방문하는 셈이다. 방문객은 외국인과 베트남의 고급관리들이 대부분이며, 한국직원들은 어느새 이들을 안내하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될 정도다.
오리온하넬에서 생산된 제1호 제품은 현재 하노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호치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호치민은 모든 베트남인들이 국부(國父)로 숭배하는 인물이다. 그런 호치민 박물관에 대우가 만든 TV브라운관이 당당히 전시돼 있다는 사실에서 대우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대우의 세계경영은 단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보여준 오리온하넬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베트남에 투자하기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베트남관리들이 거두절미하고 하는 한마디가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 투자하려거든 오리온하넬만큼만 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