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미얀마는 남북한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국토에 인구 4천3백만명의 나라로 쌀, 석유, 가스, 티크나무, 보석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땅이다. 하지만 30여년 동안 사회주의를 고수한 결과 1인당 GNP가 2백달러에 불과했으나, 극빈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1989년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1989년 6월 18일에는 친위 쿠데타로 집권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130여 소수민족의 단합을 위해, 다수 지배집단 세력인 버마족을 대표하던 ‘버마’라는 국가명을 버마식 사회주의의 포기선언과 더불어 미얀마연방(The Union of Myanmar)으로 바꿨다.
미얀마는 베트남과 더불어 대우의 동남아시아 집중 거점지역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미얀마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있을 때, 대우는 늘 그렇듯이 남보다 한발 앞서 미얀마에 진출하였다. 대우는 미얀마가 지금까지 국내 정치의 불안,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조치 등으로 실제 갖고 있는 잠재력에 비해 발전이 더딘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가 안정되고 나면 풍부한 자원, 노동력 및 자체시장을 갖춘 신흥공업국가로 발전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지난 1985년 양곤지사를 개설, 국내기업 중 가장 먼저 미얀마에 진출한 대우는 현재 미얀마에 연산 17만타 규모의 셔츠, 블라우스, 파자마 등을 생산하는 봉제공장을 비롯해, 합판합작공장, 가전합작공장, 자동차판매법인, 무역법인 등 총 5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철도차량사업, 자동차 부품공장, 고무 플랜테이션 사업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다. 참고로 1996년 기준으로, 국내 종합상사 중에서 미얀마에 투자법인을 설립한 곳은 대우가 유일하며 다른 회사들은 지사만 설치해 놓은 상태이다.
대우는 지난 1989년에 미국과 유럽의 반덤핑 관세부과로 14인치 컬러TV수출에 어려움을 겪던 중 우회수출 전진기지 확보와 현지 내수시장 판매를 위한 투자후보지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찾고 있었다. 이때 경제발전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던 미얀마 신정부는 일찍이 미얀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대우에 전자공장 합작을 제의했다. 그리하여 대우는 여러 가지 이점을 고려하여 미얀마에 가전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대우는 1990년 3월 미얀마 최대의 제조업체인 국영 미얀마 중공업청과 합작회사 설립계약을 체결하고 그 해 7월에 자본금 4백만달러, 총투자규모 1천30만달러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계약체결에서 겪은 난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버마식 사회주의에 물든 행동양식이 우리 생각과는 너무 달랐고 행정처리 절차가 너무 느려 찌는 듯한 날씨에 녹초가 되곤 했다.
교통, 통신, 전기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이 미비해 공장설립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미얀마 중공업청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였다. 그들은 대정부관계 일은 물론 기자재의 운송과 설치, 전기시설 지원, 우수한 인력 공급 등 모든 면에서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한 끝에 1991년 4월 1일 연간 TV 10만대, 오디오 12만대, 냉장고 2만대 생산규모의 종합가전업체로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당시 미얀마 가전시장은 일본의 도시바와 내쇼날이 석권하고 있어, 공장가동도 중요했지만 대우브랜드의 현지시장 침투가 더 큰 문제였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제품의 선호경향이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해 배타적이었다. 예를 들어 소니, 산요, 샤프는 3S브랜드라고하여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이런 시장특성을 파악하고 나서, 대우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전략부터 먼저 수립했다. 현지의 유명 영화배우와 가수를 모델로 선정해 광고를 제작하고 매일 TV를 통해 이 배우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대우를 알리게 했다. 동시에 신문 잡지광고는 물론 옥외 광고판까지 세워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또 이곳은 전기사정이 나빠 수도인 양곤에서조차 지역별로 전기를 공급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압의 진폭이 커서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가전제품도 많은 고장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체제가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아 가전제품에 대한 불신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우는 북부지역 주요 도시와 남부지역의 양곤시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A/S망을 구축해 한 번 판매한 제품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심어줌으로써 A/S망이 없는 일본제품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이제 미얀마에서는 대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대우제품이 전무하던 미얀마 전자시장에서 TV 35%, VCR 30%, 냉장고 50% 등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양곤시에 쇼룸․판매센터와 쇼핑플라자를 세우고 북부지역에도 영업센터를 개장해 현재는 MYDECO에서 생산하는 TV, VCR,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한국에서 생산한 에어컨, 가스레인지, 라이스쿠커(전기밥솥), 선풍기 등을 공급받아 전시해 다양한 대우제품을 팔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 놓았다.
1992년부터는 14인치 컬러TV를 생산라인에서 조립해 유럽에 대량 수출함으로써 최초의 미얀마산 TV를 선진국에 수출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것을 통해 대우는 미얀마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높이 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처음 공장을 세웠을 때는 이런 지역에서 최첨단 산업인 전자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성실한 종업원과 사무직 근로자들의 협조,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지원, 날로 증가하는 매출액 등에 힘입어 현재는 성공적 진출사례로 꼽히고 있다.
미얀마의 시장 잠재력과 MYDECO의 향후 사업계획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얀마의 경제상황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초반과 유사하다. 반면에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노동력이 저렴해 인근 국가의 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정치만 안정되면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대규모 자본도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는 이에 대비해 전국의 유통망을 재정비하고 소비자 불만사항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A/S망을 확대 구축하였다. 1996년 12월 기준으로 42개 도시에 100여개 대리점 및 A/S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또한 풍부한 현지 인력을 활용해 한국, 멕시코, 영국 전자공장에서 필요한 리모콘, VCR헤드, PCB 등의 부품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
MYDECO는 미얀마 내수시장의 확대와 세계화 전략에 발맞추어 부품공급기지로서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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