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가 점차 고도화 되면서 섬유산업은 사양산업으로 점차 밀려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우는 섬유산업이 정말 경쟁력을 잃은 사양사업인지 진지하게 되물었다. 물론 섬유산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대우로서는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외면하기에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우가 섬유산업 부문에 대해 투자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은 꼭 미련이나 감정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인간이 영원히 옷을 입는다고 할 때 섬유산업은 결코 사양사업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가격 경쟁력인 것이다. 이런 판단하에 대우는 해외에서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생산거점을 물색하였다.
1991년에 설립된 미얀마 봉제공장은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설립 당시 미얀마는 1인당 평균 인건비가 30달러 정도였기 때문에 충분히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미얀마 봉제공장(MDIL:Myanmar Daewoo Internationl Ltd.)은 1991년 1월 23일 설립등기를 마치고 공장건설 및 기자재 설치를 거쳐 그해 10월부터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총6개 라인에서 셔츠, 파자마 등을 생산하다가 다음해 4월 1일 3개 라인을 증설해 블라우스 등을 추가 생산하여 전량 미주,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미얀마 봉제법인은 가동 다음해인 1992년부터 흑자를 내어 현재는 해외생산기지 이전의 성공적 사례로 꼽힐 만큼 안정된 기반을 갖춰 가고 있다. 참고로 1991년부터 1995년 까지의 누계를 살펴보면 매출액이 2천2백만 달러 가까이 되며, 당기순이익은 94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봉제법인은 초기에 무역법인을 겸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미얀마의 암환율과 공정환율은 20:1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외국기업이 은행에서 환전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얀마 봉제법인에서는 우리나라 물건을 수입해 암환율을 기준으로 현지 판매하고, 판매하고 나서 생긴 현지화로 공장운영 및 현지화 지출 소요분을 쓴 다음, 남는 현지화로 농작물을 사서 인도 파키스탄 등에 수출함으로써 달러화로 바꾸는 영업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렇게 해서 미얀마 봉제법인은 생산 외에 수출입 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산품은 바이어와의 독점 계약을 통해 어느 정도 판매망을 확대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일반 잡화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미얀마에서 직접 유통업을 하는 것이었다.
즉 대우는 미얀마에 진출해 있던 투자법인들(봉제, 목재, 전자)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바탕으로 무역, 배화점 영업을 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고, 미얀마 정부가 유통업을 허용할 경우 미리 시장을 선점하여 그룹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백화점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94년 2월과 4월에 미얀마 수도 양곤시에 대우마트 1, 2호점 개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통망 구축에 나섰다. 그후 1995년 10월 산주(州) 따웅지시에 3호점을, 1995년 11월 만델라이시에 4호점을, 그리고 1996년 2월 몬주(州) 몰레민시에 5호점을, 같은해 4월 만젤라이시에 6호점을, 그리고 역시 같은해인 11월 산주(州) 타치픽시에 7호점을 잇따라 개점하였다. 한편 무역, 백화점 부문이 봉제법인에 속해 있어 현지 파트너와 갈등이 생기고 무역, 백화점 영업에 전념하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1996년 1월 1일에 별도의 무역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미얀마 대우마트는 미얀마에서 외국기업이 설립한 최초의 백화점에 해당되며, 지리적 특성상 주변국인 중국, 태국, 싱가포르 상품이 널리 알려져 있는 미얀마에서 한국 상품을 소개하는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주로 전자제품, 의류, 화장품, 개인용품 등을 취급하고 있는데, 미얀마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취급품목을 더욱 다양화할 계획이며, 백화점 수도 늘릴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