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4 잿더미 위에 다시 공장을
1972년 대우실업은 수출수요에 대응하고자 섬유공장의 확충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1972년 8월 4일, 남양산업사로부터 2개의 공장을 인수함으로써 기존의 3개 공장과 함께 모두 5개의 섬유공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1972년 대우실업은 수출수요에 대응하고자 섬유공장의 확충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1972년 8월 4일, 남양산업사로부터 2개의 공장을 인수함으로써 기존의 3개 공장과 함께 모두 5개의 섬유공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동남아의 트리코트 수출이 계속 급증하면서 대우실업의 사세(社勢)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8년 대우실업의 수출액은 291만 달러였다. 그러나 1969년에는 365만 달러를 기록해 명실공히 트리코트 수출왕으로서의 저력을 당당히
일감이 늘어나자 대우실업은 대도섬유공업사만으로 수출 물량을 대기가 벅찼다. 결국 수출을 하려면 공장이 있어야 했고, 그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니 방법은 하청을 늘이는 것 뿐이었다. 그리하여
대우실업의 최초의 오더는 방콕의 시아 후아트(Sia Huat L.P.)사로부터 받은 2만 야드의 트리코트(L/C NO.44055) 지였다. 그 가격은 5,676달러였다. 대우실업은 이 오더를 뚝섬에 있는 동업자 명의의 대도섬유공업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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