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Kim Woo Choong

김우중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할아버지셨어요

“꿈동산이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거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립심을 키우고 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 한다. 일정 기간 지나면 독립해서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1989년 8월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출간되었습니다. 1990년 1월에 1백만 부를 돌파했고요. 그런데 그 전에 이미 회장님은 인세를 좋은 일에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아무래도 책의 내용이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내용이니 청소년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셨습니다. 대우 측에서는 회장님의 뜻을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에다 전달하고 사업 의뢰를 했고요. 그 결과로 청주에 꿈동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동산을 맡아서 일해보겠냐는 제의를 받고 와서 지금까지 꿈동산에 몸담고 있습니다.

꿈동산의 정식 명칭은 ‘대우 꿈동산’입니다. 대우 꿈동산은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복지사업으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면서 전문 사회복지사들이 아이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사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
고 있습니다.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심리, 정서적으로 유익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개인의 꿈과 미래를 위해 학습과 역량 강화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꿈동산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주거 복지시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회장님의 인세를 가지고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소년 가장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지원금 중에서 한 달 지출을 분석을 해보니까, 주거비로 나가는 비용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이 그 빈곤을 벗어 나지를 못하고 있었고요, 그 점을 착안해서 주거비를 해결해주자는 것이 꿈동산의 시작이었습니다.

꿈동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김우중 회장님과 대우가 함께 했습니다. 꿈동산을 짓는 것도 대우 건설에서 맡아서 했습니다. 이익이 나는 사업은 아니었죠. 오히려 대우 건설에서 돈을 더 들여서 지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대우그룹이 있을 당시 여직원들 모임인 ‘청미회(淸美會)’에서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생일잔치를 해주고, 아이들이 음악을 할 수 있게끔 피아노도 기증해 주셨습니다. 대우 건설에서 아파트 자체 환경개선사업으로 페인트 공사를 전체적으로 해주셨고요. 대우증권 직원들도 와서 아이들 생일잔치를 매달 한 번씩 열어주고 그랬습니다. 초창기에 청미회 회원으로 도움을 주셨던 분이 지금은 대우증권 청주 지점장님이 되셔서 도움을 주러 오시고 있습니다. 다 서술할 수는 없지만, 그 외에도 대우에게 받은 여러 도움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회장님의 관심과 사랑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꿈동산이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거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립심을 키우고 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야 한다. 일정 기간 지나면 독립해서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꿈동산을 세울 때 회장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꿈동산은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시설들이 의식주에 중점을 맞춰서 아이들을 보호했다면, 꿈동산은 아이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체육을 잘하면 체육 쪽으로,
예능을 잘하면 예능 쪽으로, 공부를 잘하겠다고 하면 공부를 하는 쪽으로 육성을 하고, 특별한 게 없는 아이들은 기술 쪽으로 자격증을 따게 해서 자격을 취득하게 하게끔 지원을 했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는 뭐든지 스스로 하자는 차원으로 바뀌어서,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면 어른들이 지원하고 도와주는 형태로 바
뀌었습니다.

회장님은 지속적으로 꿈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표현하시고 실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회장님을 처음 뵌 것은 입사하고 열흘도 안 되어서였습니다. 사무실도 구성이 다 안 되어서 혼자 일하고 있을 때 연락을 받았습니다. 회장
님이 대전 오실 일이 있어서 꿈동산에 들르신다고요. 제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서 당시 대우건설 유재훈 소장님한테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소장님이 오셔서 함께 맞이해주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전체를 둘러보시더니 세부적인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공간은 왜 독서실로 했느냐, 방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서 하나라도 해주는 게 좋지 않냐, 이런 공간은 필요 없지 않냐, 아이들의 주거를 위한 공간을 더 줄 수 있도록 검토하면 좋겠다… 이런저런 공간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고는 저에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열심히 잘해서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좋은 인재로 클 수 있게끔 해주게.”

그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근처에 오실 일이 있으면 꼭 들르셨고, 일부러 오시기도 했습니다. 오시면 운영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꿈동산이 지자체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검토도 하셨습니다.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 보고도 받으시고, 아이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가시기도 하셨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셨고요. 2015년 봄에는 꿈동산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기존의 부지를 다르게 활용해보면 어떨까 검토해보라는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경제성이 맞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실행에 옮겨진 고견도 많습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 꿈동산에 다문화 모자 세대가 들어올 수 있게끔 입주대상이 확대되었는데, 그것도 회장님의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운영에 관여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에게 일임해주셨습니다. 뭐랄까, 회장님의 방식은 ‘무엇을 해라’하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원해줄게.’하고 밀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입사한 이래로 줄곧 받았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참 의아했습니다. 다른 기업 문화와는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우에 입사하고 3일 만에 청주로 배치를 받아서 내려왔는데, 재단 쪽에서 특별히 업무지시를 내리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업무일지나 상담일지도 정해진 양식이 없었습니다. 네가 아이들 잘해주고 잘 관리해주면 된다, 사회복지를 했으니까 네 꿈을 펼쳐봐라. 이런 말씀만 들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석희 이사장님도 저를 이사장실에 불러서 별도의 지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년 가장들이 쓴 생활 수기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거기 충북 아이들 것을 라벨을 붙어놨네. 라벨 붙은 아이들을 먼저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네. 유군이 책임지고 어느 궤도에 올려놓기를 바라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대우의 기업문화였습니다. 대우는 최대한 지시를 하지 않고, 최대한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뭐든 해보겠다고 하면 “한번 해 봐라”, 힘들 때 요청을 하면 “좋아. 그것 한번 해서 아이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도와줄 테니 실시를 해봐라.” 이런 식이었습니다. 자율에 맡기되, 든든한 백그라운드는 되어주는 방식이죠. 그런 대우 덕분에 제가 참 많이 성장했습니다. 오랫동안 회장님을 대해 보니, 그것이 회장님의 마인드이고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존경하게 되었고, 정도 들었습니다.

1999년 8월에 대우가 워크아웃 들어가고, 공식적으로는 99년 11월에 전 경영진이 대우에서 물러나게 되는걸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회장님이 고초를 당하시는 모습은 정말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 마음은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언론에서 비치는 회장님을 보면서 꿈동산 출신들은 같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전화도 오고, 찾아와서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우리가 뭘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뜻은 전달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탄원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꿈동산 출신들도, 꿈동산에 있는 아이들도 탄원서를 써주었습니다. 지역의 사회복지를 위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힘을 보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구들 200여 명의 서명과 사회복지 기관장들 100여 명의 서명을 모아서 제출했습니다. 그 일이 나중에 알려지고, 회장님도 아시게 되었습니다. 저희 이사장님을 통해서 고맙다는 뜻을 전해오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어찌나 뭉클한지…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에 글을 싣게 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회장님을 어떤 분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을까? 자율적으로 맡겨주시는 분, 꿈동산을 지으신 분, 인세를 가지고 이렇게 좋은 일을 한 분, 아이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다정한 분…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만으로도 참 많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한 따뜻한 할아버지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꿈동산에 오시면 아이들을 보시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시고,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으셨습니다. 불쌍한 아이들이라는 편견을 가지지 않으시고,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될 아이들이라고 믿으셨습니다. 저는 그 무엇보다 그 따뜻함이 으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저희 꿈동산 사무실에는 회장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입소한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군지 몰라서 묻습니다.

“저분은 누구세요?”
“응 여기를 세우신 분이야. 너희들의 할아버지지.”

회장님은 떠나셨지만, 꿈동산의 역사 속에 그 따뜻함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회장님을 알고, 만났던 아이들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 편견 없이 자신들을 사랑했던 따뜻한 할아버지를요.

글쓴이

유응모

– 사회복지사 1급 / – 임상사회복지사 – 요양보호사 1급 / – 심리상담사 1급 – 케어복지사 1급 / – 다문화가족복지사 2급 –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 청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 대우꿈동산 총괄업무, 봉명지역아동센터 총괄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