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Kim Woo Choong

김우중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들

저요? 회장님하고 한 침대에서 자 본 사람이에요

“회장님은 젊은 비서한테도 항상 격의 없이 가르쳐 주려고 하셨어요. 그런 의미에서 회장님은 진정한 교육자라고 생각해요. 경영학 공부하면서 ‘경영자는 교육자다’라는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회장님이야말로 교육자이셨던 거지요.”

옛날 우리는 그룹이라고 하지 않고 대우가족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대우그룹이 아닌 대우가족. 저 역시 이 표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회장님을 모시면서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거였죠. ‘가족’이라는 느낌. 회장님은 젊은 비서한테도 항상 격의 없이 가르쳐 주려고 하셨어요. 그런 의미에서 회장님은 진정한 교육자라고 생각해요. 경영학 공부하면서 ‘경영자는 교육자다’라는 말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회장님이야말로 교육자이셨던 거지요. 저도 개인적으로 회장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요.

요즘도 중국집을 간다거나 회장님이 연상되는 곳에 가면 그 때 모시던 생각이 나곤 합니다. 보통 함께했던 기억이 있는 장소나 상황 등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관련된 사람이 떠오르는 법이잖아요. 회장님은 중국 요리를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중국집에 갈 때면 환하게 웃으며 식사하시던 옛 모습이 생각나곤 해요. 회장님이 한창 바쁘실 때는 저녁 약속이 하루에 두세 번 이어질 때가 많았어요. 그 때마다 매번 처음 먹는 것처럼 식사를 하셨죠. 회장님은 늘 상대방을 배려하셨거든요. 회장님은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하셨어요. 그 모습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회장님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1989년도에 나왔잖아요? 그 책의 원고가 완성되고, 출판되기 전에 저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셨어요. 한번 읽어보라고. 저녁 먹고 나서 책을 딱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앉자마자 잠도 안자고 새벽까지 읽었는데, 너무 공감이 가고 내용이 좋은 거예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회장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가졌던 마음들이 책에도 너무 잘 담겨 있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회장님의 생각도 잘 들어가 있더군요.

아침에 회장님께 “다 읽었습니다” 하고 원고를 드렸더니, “책이 어떠냐?”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제가 “많이 팔릴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더니 씩 웃으셨어요. 그 책이 실제로 굉장히 많이 팔렸잖아요? 그걸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죠. 우리 집 아이들도 그 책은 다 읽었어요. 애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집 필독서’로 지정해서 읽혔죠. 아주대학교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지고 있던 책을 한 권씩 선물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다 나눠주고 없어요. 지금도 책 내용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회장님과 관련된 추억 중 저만의 자랑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비서업무를 했던 후배들과 한잔할 때면 이렇게 말하면서 그 무용담을 꺼내곤 합니다.

“너희들 중에 회장님하고 한 침대에서 자 본 사람 있어?”

20대 중반에 회장님 수행비서를 하면서 전 세계를 모시고 돌아다녔죠. 말 그대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걸 실제로 경험했어요. 회장님의 책 제목, 그대로요. 안 가본 나라 없이 다 가봤죠. 동구권도 가보고, 러시아, 중국 등 그 당시 수교가 안 된 나라도 다 가보고 하면서, ‘남들은 정말 몇 만금을 주고서도 할 수 없는 경험들을 내가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그러다보니 일이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때 있었던 일이에요.

회장님은 그 당시에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면서 일을 보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잦은 이동을 하려면, 커머셜 비행기로는 시간이 안 맞아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그래서 조그만 전세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야말로 택시타고 다니듯이 전세기 편으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마구 다니셨던 거지요. 유럽과 아프리카를 밤낮없이 다니셨어요. 그 날도 유럽 어디에 계시다가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스위스 취리히에 가시게 됐어요. 하루 전날 갑자기 취리히 1박이 추가된 거지요. 그 때는 취리히에 대우증권 지사만 하나 있었던 것 같아요. 급히 그곳 지사장에게 연락을 취했어요. 내일 몇 시쯤 도착할 테니 호텔 예약을 좀 부탁드린다고. 그리고 다음 날 취리히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지사장이 너무 난처해하는 거예요.

“어쩌죠. 지금 취리히에서 굉장히 큰 컨퍼런스가 열려서 호텔 방이 동이 났어요. 다행히 회장님 방은 웃돈을 주고 간신히 예약을 했는데, 이 대리 방을 못 구했어요. 너무 미안해요.”

지사장은 몇 번씩이나 사과하며 난처해했어요. 사실 그거는 문제 될 게 없었어요. 회장님 방을 못 구했다면 문제지만 제 방을 못 구한 건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괜찮습니다. 너무 수고하셨어요.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되는데 저야 소파에서 자면 되지요. 염려 마세요.”

저는 지사장에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몇 번을 말했고, 지사장도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일정을 다 마치고 호텔방에 온 시간이 밤 11시쯤이었어요. 방을 보니 안에 침실이 있고 밖에 거실이 있는 코너스위트였어요. 회장님이 방에 들어가시면 저는 거실 소파에서 자려고 생각했죠. 그래서 회장님을 방으로 안내해드리며, “들어가시지요.” 하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대뜸 물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너는 방 있어?”

원래 그런 말 안 하시는데, 아마 지사장과 하는 대화를 들으신 모양이에요. 물으시니 대답을 안 할 수 없잖아요. 회장님께는 항상 거짓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렸던 터라 이번에도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죠.

“컨퍼런스가 있어서 제 방이 예약이 안됐답니다. 그냥 여기서 자겠습니다.”
“잠을 편히 자야지. 소파에서 자면 어떻게 하냐? 방에 들어와서 나하고 같이 자.”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슬쩍 방을 보니 킹사이즈 침대 하나가 있었어요. 트윈 침대면 몰라도 한 침대에 어떻게 회장님과 함께 잘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간곡히 말씀드렸죠.

“회장님, 전 밖에서 자겠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그럼 회장님이 “그럴래?” 하고 주무실 줄 알았는데, 그건 저의 착각이었어요. 회장님이 먼저 누우시면서 다시 한 번 “얼른 들어와서 자” 하시는 거예요. 저는 한 번 더 아니라고, 밖에서 자겠다고 말씀드렸죠. 회장님도 잠은 편하게 자야 한다고, 빨리 침대에 와서 자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쯤에선 시키는 대로 해야겠더라고요. 모시는 어른께 계속 우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저도 침대이불을 들추고 들어가 회장님 옆에 누웠어요. 그러고는 회장님이 잘 주무실까,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죠. 잠이 드는데 30초도 안 걸렸을 거예요. 지금 떠올려 봐도 민망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바쁜 회장님을 수행하다보니 그 때는 너무나 고단했어요. 젊을 때였지만 피곤이 가시는 날이 없었죠.

정신없이 대자로 누워 잠이 들었어요. 두세 시간쯤 지났을까. 한참 자고 있는데 낌새가 이상해서 눈을 떴더니, 회장님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시더군요. 순간 졸린데 모른 척 하고 잘까 하고 눈을 감았는데, 한번 깨고 나니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차피 깬 거 나도 나가봐야 겠다’ 생각하고선 옷을 주섬주섬 입고 따라 나왔더니, 회장님이 거실에 앉아 직접 어디로 전화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해외에 나가면 한국과 시차가 있으니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에 전화로 본사와 업무 교신을 하곤 하는데, 그때는 노사분규니 뭐니 해서 한국에 여러 가지 현안들이 많았던 때였어요. 전화를 끊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곧바로 말씀드렸죠.

“회장님, 제가 전화 걸어드리겠습니다.”
“왜 일어났어? 더 자지. 그러냐?”
“아니에요. 저도 많이 잤습니다. 제가 전화 걸어드리겠습니다.”

그제야 회장님이 전화기를 저에게 주시더군요.

“그럼 00에게 전화 걸어봐.”

저는 전화를 걸고 옆에서 대기하다 또 전화를 걸고 회장님은 통화하시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몇 시간동안 서울과 전화통화를 하셨죠. 밤새 여기저기 전화하시다 6시가 되니까 해가 훤하게 뜨더군요. 아침에 해 뜨는 것 보고서야 전화걸기가 끝났어요. 그리고는 곧장 공항으로 가서, 또 다른 나라로 이동을 했지요. 고작 몇 시간밖에 못 잤지만 피로가 싹 풀렸더군요. 회장님은 늘 바쁘게 다니시니까 수행하는 사람들도 힘들 거라 생각해서 항상 배려하시곤 합니다. 마음이 참 깊으신 분이죠. 언제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려 하셨어요.

회장님 모시는 일을 하면서도 아랫사람이라기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것 같아요. 회장님의 배려심 덕분에 기업 총수와 일한다는 생각이 별로 안들었어요. 역대 비서들과 만나서 얘기해 봐도 다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우리 회장님은 재벌 총수로서의 어렵고 거리감 있는 분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그냥 아버님 같은 분이라는 거예요. 야단맞더라도 아버지가 아들 야단치듯 하시니, 그 때마다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다음에 잘하면 되지.’ 그런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는 거지요. 회장님은 언제나 본인이 발로 뛰고 성심을 다해 일하는 분이셨지, ‘내가 총수다’하고 권위를 내세우는 분이 아니셨어요.

신혼 시절에는 회장님과 잠시 함께 살았던 적도 있었어요. 1988년이었죠. 그때 대우조선에 노사분규가 심해서 회장님이 옥포에 내려가 계셨어요. 저도 회장님을 모셔야 하니 당연히 같이 내려갔죠. 굉장히 바빴어요. 서울에 가족들을 보러 오기도 어려웠으니까요. 대우조선 경영 정상화를 위해 하루도, 아니 한시도 쉴 수 없었거든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어요. 어느 날 회장님이 불쑥 물으시더군요.

“너 신혼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되냐?”

저는 머뭇거리며 차마 대답을 못했어요. 신혼도 신혼이지만, 첫째 아이가 막 백일이 되었을 때거든요. 아내도 보고 싶고 아기도 보고 싶고, 매일매일 그리울 때였어요. 회장님은 저를 처연하게 보시더니 명령하듯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와이프 내려오라고 해. 아기도 데리고. 빈방도 있고, 나는 바빠서 잘 들어오지도 못하니 너희 가족은 같이 지내면 좋잖아.”

이렇게 따뜻한 명령이 또 어디 있을까요? 저는 너무 따뜻해서 바로 명을 받들었지요. 요즘도 가끔 아내와 이야기해요. 회장님께는 참 감사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내려가서 함께 산 우리도 너무 웃기다고.

하여튼 내려오란다고 아내가 덜컥 내려왔어요. 100일 밖에 안 된 큰 놈을 안고 아내가 옥포에 내려왔는데, 공교롭게도 내려오자마자 근로자가 투신을 해서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해졌어요. 회장님은 임원들과 밤새 대책회의를 하시고, 숙소에 오셔서도 외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시던 때였죠. 제 아내가 내려와 한두 달 같이 생활을 했는데, 제가 숙소에 안 들어오니깐 아내도 밤새 깨다 자다 깨다 자다 했던 것 같아요. 들어오는 날에도 잠깐 눈만 붙이고 새벽이 되면 회장님 모시고 나가니까 그걸 보고 와이프가 놀랜 거예요. 한번은 이렇게 묻더군요. 나도 나지만 회장님은 언제 주무시는 거냐고. 한달 내내 밤마다 저렇게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데, 도대체 잠을 언제 주무시는 거냐고 걱정을 하는 거예요. 그때 저랑 같이 있으면서 아내도 ‘남편이 나가서 놀러다니는 건 아니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느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바가지도 안 긁고 결과적으로 그 때 잘 내려왔다고 생각했지요.

투신 얘기를 잠깐 하자면, 그때 노조 근로자 중 한 명이 3층 건물에서 뛰어내렸어요.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도 다치고 해서 곧바로 조선소 옆에 있는 대우병원에 입원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어요. 분위기가 험악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회장님이 극구 직접 가보시겠다고 해서 제가 모시고 병문안을 갔지요. 가서 보니까 근로자 한 명이 온 몸을 칭칭 동여매고 누워 있어요. 그것을 보시더니 회장님이 막 우시는 거예요. 회장님은 굉장히 감정이 풍부하신 분이세요. 눈물도 많으시고. 근로자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더니 막 우시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되풀이하시는 거예요. ‘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펑펑 우세요. 저도 옆에서 보다가 덩달아서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따라서 울었어요.

“소유가 아니라 성취다.”

회장님이 항상 하셨던 말씀이에요. 회장님은 언제나 다음 세대를 많이 생각하셨고, 자신이 헌신해서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하셨죠. 그런 마음으로 드넓은 세계를 다니며 일하셨으니 ‘성취’에 초점을 맞추셨겠지요. 저는 회장님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감히 그 말씀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어요.

“성취가 아니라 성심이다.”

성심(誠心). 정성스러운 마음. 제가 보기에 회장님은 언제나 ‘성심’이 먼저인 분이셨어요. 성취보다 성심이 우선인 분, 일보다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분. 아랫사람을 가족처럼 대하고, 상대의 마음을 먼저 배려해, 대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분. 그런 분이 바로 우리 회장님입니다.

그런 분이니 비서와 한 침대에서 잘 생각을 하고, 신혼인 비서가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안타까워 회장님 숙소에서 가족과 함께 살도록 배려하셨겠죠.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하는 사람, 김우중 회장님. 그런 분을 모셨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오늘도 회장님이 참 그립습니다.

글쓴이

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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