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Kim Woo Choong

김우중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들

저의 우상이죠

“평소에 그런 대단한 분이란 걸 잊고 사는 내가 뜨끔하면서도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내가 이렇게 대단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자부심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러다가 또 일상으로 돌아 오면 삼촌처럼 느껴졌어요.”

처음 회장님을 뵈었을 때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처음 면접을 볼 때 회장님 아드님과 직원 두 분 앞에서 면접을 봤어요. 그리고 2차 면접으로 회장님을 직접 뵈었어요. 회장님은 이미 알려진 분이잖아요. 연예인과 독대하는 것 같아서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그저 소탈하고 겸손한 분이셨어요.

외부에 미팅이 있으면 상대방의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려도 약속 20분 전에 먼저 대기하고 계세요. 늦은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회장님이 저녁 약속이 있으셔서 저는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러면 회장님은 꼭 들어가시면서 “저녁 좋은 걸로 먹고 기다리고 있어.”하고 부탁을 하세요. 약속이 끝나고 나오시면 “좋은 거 먹었니?”하고 확인을 하세요. 제가 국밥 같은 걸 먹었다고 하면 “다음부터는 더 좋은 거 먹어.” 하시고요. 무슨 회장님이 일개 기사의 밥까지 그렇게 신경을 써주시는지… 매번 감동이었어요.

제 건강도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회장님이 담배를 피우시는데 저도 담배를 피우거든요. 회장님 앞에서 피우지는 않지만 담배를 피우는 걸 아실 거 아니에요. 어느 날은 문득 담배 피우고 뛰어와서 차에 타 있는데, 곧 회장님이 나오셨어요. 차에 타서 그러시더라고요.

“나도 끊을 테니 너도 끊어라. 건강에 안 좋다.”

회장님은 정말 끊으셨는데, 저는 못 끊었어요.

“영어 학원 지원해줄 테니까 다녀라.”

이런 말씀하시며 저의 자기계발까지도 생각해주셨어요. 대답만 하고는 공부를 하지는 않았어요. 영어는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데다 바쁘기도 했으니까요. 나중에 후회를 했지요. 베트남에 가서 회장님을 수행하면서 영어를 좀 했으면 회장님을 더 잘 모실 수 있었겠네, 하고요. 회장님은 언제나 앞을 보시면서 조언해주시는데 제가 그걸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참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시고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 챙겨주셨어요. 처음에는 연예인 같던 분이 점점 삼촌처럼 편해졌어요.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었어요. 간혹 회장님의 명성을 망각하게 되더라고요. 거제도 행사에 모시고 갔는데, 회장님이 강연을 하니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 거예요. 회장님이 전경련 회장을 방문했을 때도 존경어린 눈빛으로 환영하는 사람들을 보았고요. 그럴 때면 저의 망각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맞다, 우리 회장님이 이런 분이시지.”

평소에 그런 대단한 분이란 걸 잊고 사는 내가 뜨끔하면서도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내가 이렇게 대단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자부심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러다가 또 일상으로 돌아 오면 삼촌처럼 느껴졌어요. 저라는 한 사람을 얼마나 존중을 해주시는지 한 번도 큰소리 낸 적이 없으세요.

“이렇게 좀 해줘.”
“이렇게 좀 부탁해.”

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한 번은 제가 회장님 시계를 베트남에 두고 왔어요. 회장님이 일어나시면 옆에 있는 소지품들을 제가 챙기는데, 깜박한 거죠. 저 같으면 크게 혼낼 텐데 회장님은 딱 한 마디를 하셨어요.

“할 수 없지, 뭐.”

서울로 돌아오셔서 시계가 없으니 답답하실 텐데도 뭐라고 하지를 않으셨어요. 오히려 며느님이 그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셔서 시계를 새로 사주셨어요.

인정은 또 얼마나 많으신지 몰라요. 자택에 근무하는 경비 분들에게 항상 친절하시고요. 명절 때는 꼭 선물을 챙겨 보내세요. 어쩌다 업무 외의 일을 시키시면 꼭 따로 사례를 하시고요. 그 인정 많은 성품에 제가 덕을 가장 많이 봤죠. 저희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신경을 많이 써 주셨어요. 아버지가 담관암으로 투병을 하셨어요. 회장님이 그 사실을 알고 아주대 병원에 입원하게 해주시고, 회장님 주치의의 치료를 받게 해주셨어요. 그뿐만 아니라 입원해 계실 동안 몇 번을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물으시고, 거듭 잘 부탁한다고 말씀을 하시고 그러셨어요. 장례도 순탄히 진행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기사의 아버지 병환을 그토록 신경 써 주시는 회장님이 또 계실까요? 저는 없을 것 같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회장님은 저의 우상이에요. 회장님이 연예인처럼 유명한 분이라 우상이라고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그저 살면서 스며들어, 이제는 부인할 수 없게 된 사실일 뿐이에요. 아무리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도 가까이서 보면 실망하게 된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회장님은 가까이서 모시면서 더욱 존경하게 되고, 더욱 사람 냄새가 나고, 더욱 롤모델로 삼고 싶어지는 분이었어요. 저는 무엇보다 회장님의 가정적인 모습을 보고 참 많이 배웠어요. 외국 출장을 가시면 자녀들에게 엽서를 보내세요. 애정 표현을 하는 걸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생각하시고 사랑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가끔 차에서 자녀와 통화를 하시면 듣고 있는 제 마음이 훈훈해졌어요. 저도 가정을 이루었는데, 회장님처럼 좋은 아버지이고 싶어서 많이 노력을 해요.

문득문득 회장님이 너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혼자 회장님 산소에 다녀와요. 며칠 전에도 다녀왔어요. 성묘를 하다 보면, 좀 더 잘해드릴 걸, 후회가 많이 돼요. 제 삶 곳곳에 회장님이 주신 사랑이 남아있어요. 그 사랑, 천 만분의 일도 갚지 못했어요. 그게 젤 죄송하고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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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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