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Kim Woo Choong

김우중 회장을 기억하는 사람들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이 넘치는 분이죠

회장님이 “자재과에 있는 아가씨 괜찮더라. 만나볼래?” 물으시기도 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랑 짝지하지 그러냐?” 하시기도 했어요. 왜 그러셨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아마 젊은이들이 일을 많이 하는 게 미안하셔서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이왕 결혼할 거 우리 식구끼리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워낙 관심이 많으셔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근무했을 때는 회사가 작았던 시절이라 회장님을 자주 뵈었어요. 처음 입사하고 부산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본사로 왔는데, 회장님이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내려와서 보시고 그랬으니까요. 샘플 들고 쫄랑쫄랑 회장님 좇아서 조선호텔도 자주 다니고 그랬어요. 한 번은 쇼룸에서 남미 바이어들하고 있을 때였어요. 회장님이 실무자는 아니시지만 세일즈 하던 시절의 경험이 있으니까 옆에 앉아서 별 걸 다 물어보시는 거예요. 원단값이 얼마고, 야드에이지 컨섬션(Yardage Consumption, 야드 당 소모량)이 얼마 되고, 공임은 얼마이고, 플레이트 차지(Plate Charge)가 큐빅 당 얼마가 계산되고… 우리는 회장님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 하니까 머릿속에서 다 계산이 돼야 해요. 미리 어느 정도는 계산을 해놓기도 하죠. 워낙 즉각 물어 보시는데 회장님 앞에서 계산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부산 공장에서 와이셔츠 패킹을 줄자로 재면서 일을 해봐서 계산이 느리지는 않았어요. 카톤 규격이 얼마가 되고, 몇 다즌이 들어가고, 컨테이너 20피트 하면 몇 개 들어가는지 정도는 딱딱딱 계산해서 말씀드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그래도 계산이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럼 이실직고하고 계산해서 보고드리겠다고 해야 돼요. 괜히 대충 말씀드리면 틀린 걸 금방 아세요. 회장님이 상당히 숫자에 밝으셨거든요. 기억력도 대단하시고요. 워낙 회장님 질문에 계산할 일이 많았어서 그런지, 요즘도 뭐 계산할 일이 있으면 회장님 생각이 나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회장님이 자주 생각나죠. 저희 아내가 회장님을 모셨던 사람이거든요. 회장님이 사장님이었을 때 사장님 비서실에 오래 있었어요. 같은 비서실에 저의 대학교 1년 선배가 있었어요. 일하다가 가끔 시간 되면 선배가 내 자리에 놀러 오기도 하고, 나도 시간이 되면 비서실에 놀러 가기도 했어요. 그럼 그때마다 아내를 보는 거죠.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저와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인천시 강화군 사람인데, 아내도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고향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죠. 아내도 나도 그 시절에 생각하던 결혼 적령기는 지난 나이였어요. 그러니까 가볍게 만나기는 어려웠죠. 결혼을 염두하고 교제를 시작했어요. 나중에 회장님이 그 사실을 아시고는 저를 부르셨죠.

“어떻게 된 거냐? 사실이냐?”
“맞습니다.”
“그래, 알았다.”

마치 장인어른에게 허락을 받는 것 같았어요. 아내가 워낙 비서를 오래 했었고, 회장님은 워낙 사람을 아끼는 분이라 딸처럼 생각했을 거예요. 저희 결혼할 때도 회장님이 많이 축하해주셨어요. 회장님 덕분에 결혼한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내 결혼을 했지만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사내 결혼이 꽤 많았어요. 워낙 같이 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바쁘면 일요일도 나와서 일해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싸우는 만큼 정드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회장님도 대우 안에서 대우 가족끼리 결혼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회장님이 짝지 시스템을 만드셨거든요. 사실 짝지 시스템은 커플을 연결하려고 만든 건 아니에요. 남자 직원이 들어오면 선임인 여자 직원하고 짝지를 지어주는 거예요.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배울 게 있으면 배우라고요. 왜 남녀를 짝을 지어주었나면, 남자 직원은 대졸 신입 사원인데 선임 여자 직원은 상고를 졸업한 기존 직원이에요. 여자 직원은 이미 일을 잘했죠. 남자 직원이 학벌이 높아서 신입이어도 상사이지만, 여직원에게 배워야 할 게 많았어요. 그래서 짝지를 지어주신 거죠. 그런데 아무래도 그렇게 짝지가 되어 일을 같이 하다 보면 정말 평생 짝지가 되는 커플도 많았어요. 회장님이 워낙 연결하시는 걸 좋아하시기도 했고요. 회장님이 “자재과에 있는 아가씨 괜찮더라. 만나볼래?” 물으시기도 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랑 짝지하지 그러냐?” 하시기도 했어요. 왜 그러셨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아마 젊은이들이 일을 많이 하는 게 미안하셔서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이왕 결혼할 거 우리 식구끼리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워낙 관심이 많으셔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젊은이들에게 정말 관심이 많으셨어요. 회장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다 공감할 거예요. 글로벌 청년사업가(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이하 ‘글로벌YBM’) 양성과정을 만드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글로벌 YBM은 말 그대로 청년사업가를 양성하는 과정이에요. 전방위 비즈니스 시대를 맞이하여 도전정신이 남
다른 해외지향형 젊은 인재들을 발굴, 어학과 직무교육, 인성 등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을 하고, 체계적인 멘토링 시스템을 통하여 차세대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로 양성하는 사업이죠.

제 기억으로는 2009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발족식에서 처음으로 글로벌YBM에 대해 들었던 것 같아요. 회장님께서 발족식 말미에 갑자기 마이크를 잡으시고, 청년실업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글로벌YBM에 대한 예고였어요. 회장님의 바람대로 글로벌YBM은 2011년부터 시행 중이에요. 첫해 베트남 1기 40명을 선발한 이래 현재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및 태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요. 연수생 전원이 현지 기업에 취업을 했어요. 무엇보다 연수생들이 내야 하는 비용이 없다는 것이 큰 매력이죠. 국내·외 연수기간 중 소요되는 비용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 고용노동부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금 등으로 충당돼요. 연수생들에게 전액 무상으로 비용이 지원되는 거예요. 회장님이 젊은이들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저는 가만히 생각하면 조금 속상한 게 한국에서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회장님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회장님과 함께 베트남 공장을 방문하면 직원이 회장‘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책을 가져와서 회장님한테 사인해 달라는 일이 자주 있어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베트남 버전으로 출간이 되었거든요. 예전에 해적판이 있었는데, 2015년에 정식으로 번역이 되어서 나왔어요. 베트남이 시장경제를 개방하면서 회장님이 책에 쓰셨던 부분을 공감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요. 책의 내용이 꿈을 펼치는데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회장님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취업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지만 그 부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그게 안타깝죠. 하지만 국경을 넘어서 동남아의 젊은 인재들을 잘 이끌어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신 분으로는 알려져 있어요.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회장님이 재평가되고, 젊은이들을 사랑해서 행한 일들도 다 알려질 거라 믿어요.

모두 알다시피 대우는 없어졌지요. 하지만 실체가 사라져도 정신은 남아 있는 것이잖아요. 대우는 사라졌지만, 대우정신을 이어받은 대우인은 참 많이 남아있어요. 그리고 회장님은 대우정신을 이어받을 젊은 세대들을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만들어 내셨죠. 지금 회장님은 안 계시지만 그 사실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에요.

무엇보다 글로벌YBM이 그렇잖아요. 회장님의 정신을 기리는 많은 분들이 열의와 성의를 다해 지금도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는 베트남9기, 미얀마 6기, 인도네시아 5기가 진행되고 있지요. 저는 회장님이 베트남 20기가 넘을 때까지 살아계실 줄 알았어요. 적어도 10기를 넘을 때까지는 계실 줄 알았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건강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글로벌YBM 출신의 청년들이 서로서로 도우며 인적 네트워크도 만들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보람찬 일들을 직접 보시기를 바랐어요. 베트남 20기까지는 아니더라도 10기까지만 보셨더라도 좋았을 거예요. 대우 집단이 워낙 사후관리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집단이거든요. 양성과정을 만들었다고 그게 끝이 아니에요. 과정을 마친 청년들을 다 후배라고 생각하고 잘 가르치고 관리하죠.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을 도와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고비가 다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 고비도 같이 넘어주고, 잘 넘도록 격려해주는 게 대우 집단이에요. 한 번 가족이면 영원한 가족이라고 해야 하나? 대우에는 그런 마인드가 있어요. 그러니 회장님이 조금만 더 우리 곁에 계셨다면 그런 광경을 보고 얼마나 흡족해하셨을까요? 그런 아쉬움이 자꾸 남아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죽기까지 끝나지 않았던 젊은이를 향한 사랑이 죽었다고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우리 회장님 성격에 못 끝내실거예요. 그곳에서도 대우 정신을 이어받은, 지금도 이어받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계실 것만 같아요. 그 모습을 떠올리면 저도 너무 행복해지지만, 그래도 그곳에서는 일보다는 건강을 생각하시며 조금 느리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글쓴이

김준기

1946년 인천 강화출생 인천 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1973년 9월 대우실업 입사 후 부산공장 3년(두 번), 대우본사 14년(네 번), 독일 법인 5년6개월, 일본법인 5년 6개월, 중앙아시아 본부장 3년, 산동시멘트 법인장2년2002년말 퇴사후 2010년 베트남에서 회장님의 부르심을 받고 현재까지 Noble Vietnam., Company LTD에서 법인장 사장으로, 그리고 Vietnam GYBM 원장으로 근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