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BM 동문들은 회장님에 대해 물으면 다 같은 말을 하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할아버지셨다고요. 우리가 그렇게 대답하기로 약속을 한 건 아닌데, 신기하게 동문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답을 해요. 아마도 우리가 함께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밥을 먹을 때 반찬을 숟가락에 놓아주신 건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건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었거든요. 그럼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할게요. ‘호랑이 담요’ 이야기는 아마 다른 친구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희 1기는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달랏이라는 곳으로 갔어요. 달랏대학교에서 머물며 교육을 받을 계획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달랏이라는 곳이 지대가 좀 높아서 저녁이면 좀 쌀쌀해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그랬어요. 그러니까 회장님이 바로 담요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하셨어요. 그 호랑이 담요, 아시죠? 옛날에 우리나라에 많았던, 보슬보슬하고 전통적인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담요 말이에요. 그걸 바로 공수해오셔서 지급해주셨어요.
우리의 숙소는 달랏대학교 기숙사였어요. 다른 건 다 좋았는데, 세탁이 좀 불편했어요. 기숙사라서 그런지, 세탁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말씀드렸더니 세탁기와 건조기를 바로 마련해주셨어요. 무슨 마술사 같았죠. 필요를 말씀드리면 뭐가 바로바로 준비가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게 애정이잖아요. 우리와 GYBM에 애정이 있으시니 그렇게 신속하게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걸 바로 실행해주시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GYBM은 회장님 덕분에 해외에서 연수하는 프로그램을 넘어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더불어 삶’이 되었어요.
저는 회장님의 따뜻함도 기억이 많이 나지만, 더욱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특강’이에요. 둘째 날, 회장님의 특강 시간이 있었는데 정말 긴장했거든요. 제가 자치회장이어서 차렷과 경례를 해야 하나, 모두 일어나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회장님이 들어오시고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인사 그런 거 없이 그냥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자. 내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너희가 질문을 하면 답을 해줄게.”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특강은 정말 그렇게 편하게 진행되었어요. 하지만 필기할 것은 어느 특강보다 더 많았어요.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해주시는데도 삶이 진하게 묻어났어요. 그냥 형식적인 답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리는 우물 같았어요. 제가 인상 깊어서 필기해두었던 것이 있는데, 그걸 말씀드릴게요.
우선 뭘 하든지 미치라고 하셨어요.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하셨죠. 그리고 절실하게 하라고 하셨어요. 절실하게 하면 결국은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최선을 찾으라고 하신 말씀도 인상 깊었어요. 보통은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 최선을 찾으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최선은 다하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되고 정말 끝날 때까지 최선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최고의 결과는 최선을 찾아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고요.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아라.’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건 이 문장이에요. 회장님의 특강이 있기 전에는 대우 정신에 대한 교육을 받았거든요. 국가와 후대를 위해 창조하고 도전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회장님은 본인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얼핏 들으면 상반된 이야기 같잖아요. 그런데 사실 같은 이야기였어요. 국가와 후대를 위해 열심히 했지만, 돌아보면 본인이 굉장히 행복했다고. 본인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못 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말씀은 한 동기가 했던 “후회했던 때가 언제셨어요?”라는 질문의 답이었어요. 돌아보면 굉장히 행복했고, 스스로 행복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답하셨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도 GYBM을 만나서 참 행복했어요. GYBM 프로그램은 정말 타이트하게 진행돼요. 수료를 하려면 정말 충실하게 임해야 해요. 그래서 힘들었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정말 많이 배우고 깨달았어요. 한국에 머물렀으면 늘 반복되는 똑같은 생활을 했겠지만, 베트남에서 지내는 일상은 다이나믹하고 즐거웠어요. 동문 모임을 통해 정보도 얻고 품앗이도 하고, 글로벌 사업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아졌어요. 오히려 GYBM은 한국에서 말하면 잘 모르지만, 베트남에서는 잘 알아요.
“GYBM 1기로 베트남에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인정해줘요.
저는 지금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어요. 2013년도에 2기까지 수료하고 난 다음에 베트남 동문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지금도 분기별로 한 번씩 모여요. 첫 동문 모임을 할 때는 회장님이 함께하셨어요. 우리가 동문 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고도 없이 직접 오신 거예요. 저를 비롯한 동문들이 참 기뻐했어요.
2019년 12월에는 아시아 4개국의 GYBM 동문들이 다 모이는 모임이 계획되어 있었어요. 세계경영연구회가 지원해주었고, 회장님도 오시기로 하셨어요. 그런데 그 모임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총동문 모임을 보시면 얼마나 뿌듯해하고 기뻐하셨을지 알기에 더욱 그랬어요.
한국에 있는 1기 동문들과 함께 빈소에 찾아갔어요. 회장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액자에 넣어 가지고 갔어요. 정희자 회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며 말씀하셨어요.
“회장님이 마지막까지도 GYBM 이야기를 참 많이 하셨어요. 앞으로 수료생들이 잘 성장하고, 앞으로의 GYBM을 잘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잘 부탁해요.”
“네, 꼭 그럴게요.”
회장님의 영정 사진 앞에서 약속했어요. 그리고 그 약속은 잘 지켜질 거라 믿어요. 무엇보다 우리 GYBM 동문들은 회장님의 행복을 닮으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창조하고 도전하고 희생하며, 나라를 위하고 후대를 위하며,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할 일을 열심히 해나가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하면 좋겠어요.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후회되는 일은 없냐고 물으면 회장님처럼 대답하고 싶어요. 스스로 굉장히 행복했으니 후회는 없다고요. 그러기 위해서 저부터 할아버지의 행복을 닮고 싶어요. 적어도 지금은 행복하네요.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할아버지. 당신에게 참 감사했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당신 덕분에 많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