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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전자 | 대우통신 | 오리온전기
대우전자주식회사의 기원은 1971년 9월2일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주식회사 내쇼날의류로부터 시작된다. 대우실업은 의류공급원의 한부분으로 내쇼날의류를 설립, 운영해 왔으나 점차 경공업 제품 수출여건이 변화하고 회사규모가 대형화 됨에 따라 기술집약산업에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전자공업진흥법의 공포(1969년)와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1969~76년)을 통한 정부주도의 산업구조 개편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에 1971년 11월 중견 전자제품 생산업체인 동남전기를 인수한 대우는 이를 기반으로 전자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갖춰 나갔다.
1974년 1월 22일 내쇼날의류는 상호를 대우전자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전자제품 생산과 수출을 주종으로 업종을 전환하게 된다. 동남전기의 시설과 오더를 바탕으로 한국수출산업공단 제4단지 안에 자본금을 1억원으로 늘려 설립된 대우전자는 같은해 4월부터 수출용 오디오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우전자주식회사
대우전자주식회사의 기원은 1971년 9월2일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주식회사 내쇼날의류로부터 시작된다. 대우실업은 의류공급원의 한부분으로 내쇼날의류를 설립, 운영해 왔으나 점차 경공업 제품 수출여건이 변화하고 회사규모가 대형화 됨에 따라 기술집약산업에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전자공업진흥법의 공포(1969년)와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1969~76년)을 통한 정부주도의 산업구조 개편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에 1971년 11월 중견 전자제품 생산업체인 동남전기를 인수한 대우는 이를 기반으로 전자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갖춰 나갔다. 1974년 1월 22일 내쇼날의류는 상호를 대우전자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전자제품 생산과 수출을 주종으로 업종을 전환하게 된다. 동남전기의 시설과 오더를 바탕으로 한국수출산업공단 제4단지 안에 자본금을 1억원으로 늘려 설립된 대우전자는 같은해 4월부터 수출용 오디오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대우전자는 설립 첫해에 라디오, 앰프 등 오디오 제품을...
1983년 3월 15일, 대우전자는 국내 3대 가전메이커 중 하나인 대한전선주식회사의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내수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는 해외 수출로 성장한 대우가 본격적으로 내수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그룹 자체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대우전자는 대한전선 가전사업 부문의 우수한 기술인력, 기술제휴선, 생산시설과 영업조직을 그대로 인수하였다. 업계의 비상한 관심속에 출범한 대우전자는 「신뢰받는 품질, 세계를 무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전개, 매출신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출대우'의 신선한 기업 이미지로 무장한 대우전자는 뛰어난 경영능력, 자금력, 판매력을 바탕으로 내수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최단 시일에 기존 대한전선의 대리점을 인수, 정비한 대우전자는 첫 번째 내수전략으로 상대적 약세였던 유통조직 확대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수 당시 대리점 숫자는 150여개로...
1988년은 대우전자가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시작하고 매출 1조원(수출 6,480억원, 내수 3,640억원)을 달성하는 등 국제적 가전메이커로 발돋움한 중요한 한 해였다. 그동안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문을 인수하여 종합가전업체로 성장한 대우전자는 1987년 가전업계 최초로 대리점 1000개를 돌파, 국내 최대 규모의 가전대리점망을 구축했다. 이처럼 내수시장에 대한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고 판단한 대우전자는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하게 되었다. 대우전자는 1988년 소련의 레닌그라드 전자쇼 참가를 필두로 국내 최초로 중국 푸젠성에 냉장고 공장을 설립하는 등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하였다. 국교가 수립되기 전에 설립된 푸젠성 냉장고 공장은 중국에 대한 국내 기업 최초의 직접투자라는 것 외에도 향후 중국시장 공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대우전자는 곧이어 6월에 프랑스 롱위시에 전자렌지 공장을 설립함으로써 두...
1993년 1월 대우전자는 탱크주의를 선언한다. 이것은 2000년대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일등품질의 확보라는 판단아래, ‘튼튼하고 오래쓰는’ 고장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탱크주의는 또한 그동안 내부 기준에 만족했던 품질관리에서 탈피하여 고객이 원하는 제품, 고객이 만족하는 품질을 확보하겠다는 경영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우전자는 1993년 공기방울 세탁기, 임팩트 플러스TV, 임팩트 톱 TVCR, 초간편 VCR, 전자렌지, 저소음 청소기 등 일등상품의 판매호조로 국내 영업매출이 약 20% 이상 증가되어 전체 매출규모가 2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얻었다. 또 1992년 대비 3.7배나 많은 산업재산권을 출원함으로써 탱크주의가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탱크주의 선언 이후 대우전자는 일등상품을 잇따라 개발해 내는 성과를 올렸다. 라벤더 브라운관의...
대우통신
대우통신의 근원(根源)이 된 신성전기산업주식회사는 1967년에 발족했다. 1967년 5월 인천시 북구 효성동 316-3번지에서 자본금 5백만원으로 시작한 전자기기 제조 및 판매회사로 설립, 2년후인 1969년 1월에는 대한전선주식회사에 인수되어 대한전선 계열회사의 일원이 되었다. 대한전선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이듬해인 1970년 1월에는 서울시 영등포구 독산동 738번지에 공장을 신축, 이전하였으며 1971년 9월에는 기계식 사설구내 교환기인 크로스바교환기 생산을 위한...
교환기 분야에서 도약의 기반을 다진 대한통신공업주식회사에 대우그룹이 자본 및 경영에 참여를 하게 된 것은 1980년 4월부터이다. 80년 4월 4일 대우에서 주식지분 50 %를 인수하여 자본과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우는 1980년 5월에 다시 5억원을 증자, 총 자본금은 36억 6천만원이 되었다. 전자사업분야로의 사세확장을 위하여 우수한 전자업체이던 오리온 전자공업주식회사를 합병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1987년 및 1988년은 대우통신이 기업을 공개하고 컴퓨터, 교환기, 단말기, 통신기 및 반도체 부문등 전 사업부문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룩한 기간이었다. 1987년 5월 19일 1백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3백억원으로 늘리면서 기업을 공개하여 상장기업이 되었다. 대우통신이라는 이름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16비트 PC ‘모델-D’는 1987년 한해도 역시 1억달러 상당의 실적을...



탱크주의 선언

1993년 1월 대우전자는 탱크주의를 선언한다. 이것은 2000년대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일등품질의 확보라는 판단아래, ‘튼튼하고 오래쓰는’ 고장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탱크주의는 또한 그동안 내부 기준에 만족했던 품질관리에서 탈피하여 고객이 원하는 제품, 고객이 만족하는 품질을 확보하겠다는 경영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우통신
대우는 1983년 9월 1일, 전송장비 생산업체 광진전자공업주식회사를 흡수 합병하고 증자를 단행하여 자본금을 85억원으로 늘렸다. 그리고 상호를 대우통신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렇게 오늘의 대우통신은 탄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