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은 1세기에 한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위인이다
김우중은 1세기에 한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위인이다. 아버지 김용하, 어머니 전인항. 부모님은 모두 교육자로서 아버님은 해방 전 대구 관립사범학교 교사이며 어머님은 평북 영변
김우중은 1세기에 한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위인이다. 아버지 김용하, 어머니 전인항. 부모님은 모두 교육자로서 아버님은 해방 전 대구 관립사범학교 교사이며 어머님은 평북 영변
‘VSG(Vietnam Study Group),’ 이 약어를 기억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이 소모임의 한 분은 작년 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김우중 회장님이십니다. 호구지책으로
김우중 회장님은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큰 우상과 같은 분이었다. 특히 70년대 대학을 다니고, 힘겹게 직장을 구해 생활했던 샐러리 맨들에게 거대한 꿈과 비전을 심어 주었던 기업가였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회장님을 기억하는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장님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감사하나 자격이 안 되는 것 같아
내가 대우가족이 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언제부터 해야 할까? 세월을 아주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하는군요. 1984년이 낫겠어요. 내가 두바이 초대지사장을 할 때이지요. 아무래도 대우가 수단이나 이란 쪽으로
1989년 8월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출간되었습니다. 1990년 1월에 1백만 부를 돌파했고요. 그런데 그 전에 이미 회장님은 인세를 좋은 일에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저에게 김우중 회장님을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두 개의 ‘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두 개의 심이 무엇이냐면, 첫 번째는 ‘열심’입니다. 회장님을 이야기하는데, 열심을 빼놓을 수
처음 회장님을 뵈었을 때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처음 면접을 볼 때 회장님 아드님과 직원 두 분 앞에서 면접을 봤어요. 그리고 2차 면접으로 회장님을 직접
친한 친구가 아이 백일잔치를 한다고 초청해서 친구들과 함께 갔습니다. 가서 보니 남편 쪽 동창들도 와 있었지요. 백일잔치가 끝나고 친구네 집을 나오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GYBM 동문들은 회장님에 대해 물으면 다 같은 말을 하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할아버지셨다고요. 우리가 그렇게 대답하기로 약속을 한 건 아닌데, 신기하게 동문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답을
제가 근무했을 때는 회사가 작았던 시절이라 회장님을 자주 뵈었어요. 처음 입사하고 부산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본사로 왔는데, 회장님이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내려와서 보시고 그랬으니까요. 샘플 들고
아버지가 가족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저는 가족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가족이네요. 안녕하세요. 김우중 회장님의 둘째 아들, 김선용입니다. 괜히 쑥스럽네요. 하지만 훌륭한 분들과
옛날 우리는 그룹이라고 하지 않고 대우가족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대우그룹이 아닌 대우가족. 저 역시 이 표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회장님을 모시면서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거였죠. ‘가족’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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