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가 이란에 진출할 당시에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한창 무르익어 가던 때였다. 그런 와중인 1981년, 대우는 심각하고도 깊은 토의를 거쳐 이란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1982년 전쟁의 와중에서 입찰에 참가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반다르압바스 바프큐(Bandarabbas baffq) 철도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우가 시공하게될 반다르압바스 바프큐 철도공사는 총공사 구간이 약 1.000km정도였다. 이 구간을 모두 20개로 나누어 발주를 주었는데, 비교적 손쉬운 구간들은 현지업체들이 맡았고, 대우는 가장 난공사 구간으로 지목되었던 6공구의 공사를 떠맡게 되었다.
대우는 대우의 경영이념인 창조, 도전, 희생의 정신을 살려 이 난공사 구간을 맡은 것을 오히려 즐겼다. 그것은, 현지업체와 이란정부로 하여금 과연 대우구나 하는 이미지를 심어줄 기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현지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타오르는 열정과 근면함으로 난공사 구간은 나날이 달라질 수 있었지만 정작 어려움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현장이 전장(戰場)에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은 대우의 현장이라고 하여 피해가지 않았다. 작업 중에 미사일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바람에 대피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현장본부가 있는 테헤란에는 스커드미사일이 한번에 140여발이나 떨어져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보통 미사일이 떨어지기 3분전에 사이렌이 울리게 되 있었다. 그러면 작업을 하다말고 스스로 피해야 되는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작업자들은 일손을 놓고 건물의 벽이나 구석에 쪼그려앉아 폭탄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엔 놀라 3분 동안 혼신의 힘으로 달려 부근 마을로 도망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자니 직원들 모두 사이렌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렸고, 숙소의 문 여는 소리가 폭탄이 날아오는 소리로 들려 자다말고 뛰쳐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쟁중이라 다이나마이트의 수급이 어려워 작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사는 마무리 되었다. 대우의 수주구간 중에 놓인 교량(장대교)은 당시로는 최신공법이었던 ILM공법이었다. 그 공법은 시공이 깔끔한 것이 장점이었다.
완공 후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그 교량을 시찰하고 관광코스로 지정하게 할 정도로 이란의 명물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