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이문근
프랑스와 함께 대우전자의 2대 기지는 영국의 DEUK(Daewoo Electronics U.K. Ltd)이다. 신․구교간의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대립과 테러로 널리 알려진 북아일랜드(북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함께 영국의 일부임)에서 북서쪽을 향해 자동차로 30여분을 달리면 공단 도시인 안트림(ANTRIM)시가 나타나고, 그 입구에 DEUK가 자리잡고 있다. 유럽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초원과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 DEUK공장에서 8백여명의 영국 현지 근로자들이 연간 70만대의 VCR를 생산, 유럽지역에 판매하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 최초로 100% 단독투자의 DEUK공장 설립계획은 1987년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의 무역장벽이 날로 높아져 가던 1987년 당시, 유럽연합(EC)집행위원회는 한국산 VCR에 최고 25%의 반덤핑 판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유럽시장에서 한국산 VCR 판매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우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현지투자 진출을 통해 판매활로를 뚫고, 향후 해외 생산기지 확대에 대비하여 해외공장 운영 경험 축적을 목적으로 영국내 현지공장을 설립키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88년말 국내기업 최초로 영국 북아일랜드라는 낯선 곳에 세운 것이 바로 대우전자 영국 VCR 생산법인(DEUK)이다. 대우의 영국 북아일랜드 진출은 객관적 조건에서는 의외의 선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다른 이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지역에서 얻는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낙후되어 가던 영국의 산업을 다시 회생시킨다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보조와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대우는 현지법인 설립을 위해 유럽 12개국을 대상으로 투자여건을 조사했었다. 그중에서 투자유치 조건이나 노동력 등 여러가지 입지조건에서 가장 유리한 지역으로 북아일랜드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1988년 9월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B)과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영국이라는 선진국에서 우리의 현지공장이 과연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6개월 후 공장이 준공될 때까지 북아일랜드 정부가 보여준 각종 지원과 노력에 힘입어 대우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1989년 4월, 5만m2에 이르는 방대한 대지 위에 1만 5천m2의 공장 건물이 들어섰고 자동삽입시설, PCB 4개 라인, 완성조립 3개 라인 등 연 60만대 생산규모의 VCR 생산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건물 및 공장, 설비투자에 대해 북아일랜드 정부에서 50%를 보조해 주었고, 차입금에 대해서도 금리 및 세제 혜택이 제공되어 출발부터가 순조로왔다. 1988년 11월 DEUK는 법인 설립이 되었으며, 한국산 VTR에 대한 유럽연합(EC)의 잠정 반(反)덤핑 판정으로 유럽연합측과 최저가격제에 대한 합의를 하고 난 다음인 1989년 4월부터 정상 가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6년말 현재는 DEUK의 VTR 연간 생산능력이 100만대를 갖추고 있어 유럽으로의 VTR수출을 위한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1차 투자당시 조립생산 위주였던 DEUK는 1994년 대우의 대규모 2차 투자를 통해 독립적인 VCR공장으로 탈바꿈했다. 2천만달러를 투자, VCR 조립공장 인접부지에 연산 50만대 규모의 데크공장을 추가로 건설한 것이다. VCR의 핵심부품인 드럼을 가공, 조립하고 데크까지 조립생산할 수 있는 생산라인이 추가로 1994년 12월 완성되었다. 이로써 VCR생산을 위한 모든 시설과 설비를 갖춘 DEUK는 국내기업의 해외 VCR생산공장 중 가장 큰 규모가 되었다. 이 데크공장의 설립으로 대우는 구미공장 및 주안공장에서 생산 공급하던 데크 및 드럼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 공급함으로써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제조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또한 유럽시장 동향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DEUK에 대한 투자규모는 점점 늘어나 1996년 12월 기준으로 자본금 1천8백만달러, 총투자액 7천만달러에 대지 2만5천평, 건물 5천평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공장 가동을 단시일내에 정상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본사에서 이 지역의 영업부문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전자산업의 기반이 취약하여 현지 부품 공급업체 및 숙련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전략과 대책이 필요했다. 1989년 말에는 덤핑 혐의를 벗기 위해 브뤼셀의 유럽연합본부를 수차례씩 드나들며 연일 철야를 하다시피하여 관련자료를 작성했다. 개인생활도 잊은채 동부서주했던 주재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증가일로로만 성장해온 DEUK의 오늘의 모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DEUK는 대우전자부품, 대화금속, 대성 등 등 부품업체의 동반진출을 유도, 원가절감을 도모하였다. 특히 대화금속의 경우 대우전자가 40% 자본을 출자, 동반진출을 도와줬다. 현재 대우전자의 판매법인(DESUK, 1993년 5월 설립)이 런던에 있어 북아일랜드의 생산법인과 보조를 맞추어 광고 및 홍보, 후원 등을 통해 영국 소비자에게 대우전자의 브랜드와 탱크주의 이미지를 심는데 주력하고 있다. DEUK 설립 당시에 목적했던 것이 해외공장 운영 경험 축적이었다면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우의 기업문화와 현지문화를 접목시킨 명실상부한 해외 현지 공장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향후 주요 과제다. DEUK에서는 2000년 유럽시장 점유율 15%를 목표로하여 DEUK에 맞는 경영체제를 갖추기 위해 “사람에 대한 투자(Invest in People)” 및 “프로세스 이노베이션(Process Inovation)” 계획을 수립하여 중점 추진 중에 있다. 세계 교역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단일시장인 유럽연합에서 세계 유수의 VCR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최첨병으로서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한 것은 사실이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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