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Daewoo

경영의 기록

안개와 신사의 나라 영국. 산업 혁명을 계기로 세계를 지배하여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알려졌던 영국. 그 찬란했던 영화는 이나라 구석구석에 남아있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대우가 발을 내딛었을 당시 영국은 유럽의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그로부터 기인하는 높은 실업률은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회색빛으로 물들여 놓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영국은 여전히 금융과 기초 과학 등에서 높은 경쟁력으로 세계 정치 경제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전통과 권위의 상징인 여왕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등, 경제 회복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그들의 경제는 서서히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영국의 시장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그런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진입이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예컨대 자동차, 전자제품으로 유럽에 진출하고자 하면 우선 영국시장의 테스트가 필수적이다. 영국시장에서의 성공은 유럽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 때문에 전세계 모든 메이커가 이 시장의 성공적 공략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권 런던현지법인은 1986년에 연락사무소로 시작한 이후 줄곧 한국의 자본시장 국제화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국내기업의 해외자금 조달의 대부분이 유로시장을 통해 이루어짐에 따라 국제인수업무의 핵심적인 역할이 런던에서 수행된 것이다. 그러나 1991년 9월 자본금 7백만파운드, 직원 10명으로 현지법인이 정식 출범함으로써 한국의 증권 국제영업은 그 격을 달리하게 되었다. 거대한 외국 증권사들이 좌지우지하던 한국계 해외증권 발행시장에서 런던현지법인은 1991년 11월, 당시 최대 규모인 1억5천만달러의 (주)대우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유로시장에 성공리에 단독으로 주간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때의 한국증시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는 초대형 외국증권사들도 선뜻 나서지 못할 규모를 갓 태어난 런던현지법인이 해냄으로써 그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겠다. 이후 6건의 그룹사를 포함, 총 9건의(총규모 5억4천만달러 상당)의 해외증권 발행에 있어 실질적인 주간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수많은 국내기업들의 유로본드 발행의 인수단으로 참여함으로써 유로시장에서 그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또 1992년 자본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 투자가 본격화됨에 따라 대우증권이 국내 수위를 확고히 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영국 투자가들은 오랜 해외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투자에 있어서도 가장 적극적이어서 런던은 국제영업에 있어서도 가장 치열한 격전장이 되고 있다. 대우의 증권 중개업무의 경우, 문화와 언어가 다른 영국 및 유럽의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무형의 상품인 투자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것이므로 오랜 명성과 고객 기반을 갖고 있는 현지의 증권사에 비해 불리한 여건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일즈맨 각자가 자신의 인격을 판매한다는 각오 아래 지속적인 고객 개발로 이제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내에 확고한 기반을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지 10여개 외국 증권사와 13개 국내 증권사들이 동일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우증권 런던 현지법인이 내뿜는 열기는 더욱 뜨거워 질 것이다. 이외에도 발행된 증권의 대부분이 장외에서 거래되고 있는 유로시장의 특성상 한국기업이 발행한 해외증권의 시장 조성도 주요 업무의 하나이다. 시가가 변화하는 유로증권의 가격 동향에 따라 매도자와 매수자를 찾아 시장의 유동성을 확보해 주는 이 업무는 유로시장에서 주요 증권사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런던 현지법인은 실질적인 설립 년도인 1992년부터 흑자를 기록한 이래, 1993년에는 세전 자기자본 이익률이 45%를 상회하는 영업성과를 기록하였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업 호조로 1996년 12월말 현재 약 340만 파운드(자본금의 50%)를 유보로 적립하였다. 이런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현지법인 직원 모두의 철저한 프로정신과 수익성 위주의 영업정책이 주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소수의 인원으로 한국 관련 업무에 중점을 두었으나 명실공히 세계적인 증권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그 취급 상품 및 대상지역을 계속 다변화하고 현지화해 나가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1996년 들어 러시아 채권영업을 개발하여 러시아 채권 펀드의 설립, 러시아 채권을 담보로 한 확정 이율부 어음 발행 등, 그 잔고가 1996년말 기준으로 5억 달러에 달하여 그 영업규모가 세계에서 2번째에 해당한다. 러시아 채권영업은 한국 증권사도 한국상품이 아닌 해외물을 취급하여 외국사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며, 한국 증권사 현지법인들의 현지화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획을 그어 주었다.

출처: 대우30년사 (1997년; 가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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