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가 헝가리로 진출하게 된 경위는 1984년 대우의 창업주 김우중회장이 스웨덴에서 ICC상(국제기업인상)을 수상할 때 참석했던 헝가리 상공회의소 회장이 대우의 헝가리 방문을 초청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인의 동구권국가 방문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대우는 미수교국가들과의 비지니스 추진을 위해서는 소련, 중국 등 핵심 공산권국가보다는 우선 헝가리 등 비교적 국가 정책이 유연한 주변국가들을 접촉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헝가리 상공회의소 회장의 초청에 따라 1985년 처음으로 대우 조사단은 부다페스트를 방문하여 먼저 당시 그로츠(Grosz)공산당 서기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대우 조사단은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한국 국민의 소원은 통일이며 통일을 위해서는 헝가리와 수교를 하여 우선 적대감을 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와의 수교에 동구권국가중에서 제일 서구화되어 있고 자유로운 헝가리가 앞서줘야 한다. 헝가리와 수교하여 88서울올림픽에도 참여하기 바란다. 그래야 다른 나라들도 따라 올 것이다. 헝가리가 수교의 결단을 내려주면 6천만 한민족이 당신에게 감사하고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대우의 진지한 설득에 그로츠 서기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서기장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앙은행 총재 등 사절단을 한국에 보내 한국정부측 인사와 이틀간 밤새 협의케하여 1988년에 수교의 결실을 맺게 하였던 것이다.
이어 헝가리는 물론 많은 공산권국가들이 88서울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고 모스크바 및 LA에서 개최된 반쪽 올림픽과는 달리 서울올림픽에는 동서양진영이 모두 참가하여 성공적으로 치뤄질 수 있었다.
그 후 대우가 부다페스트에 설립한 은행도 좋은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여러분야에서 비지니스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헝가리가 개방되어, 세상이 변하게 되자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던 전공산당 서기장을 대우는 1992년 그룹 고문으로 초빙하였다. 또한 그해 대우가 건조한 선박 진수식에서 그로츠 서기장 내외를 초청, 그의 부인을 대모(God Mother)역을 하게 하였다. 이에 헝가리측에서는 김회장의 의리에 놀랐다고 한다.
부다테스트 공항에서 승용차로 25분쯤 달리면 18~19세기의 고풍스런 건물이 거리 양옆으로 자리잡고 있는 라코치 1번가가 나오고 길모퉁이에 유일한 현대식 빌딩인 8층짜리 이스트웨스트 비즈니스센터가 눈에 띈다.
바로 여기가 1990년대 들어 헝가리 금융권에서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대우은행(Daewoo Bank Hungary:DBH)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헝가리의 저명한 금융인사 엘레메르 떼르딱씨가 은행장으로 있고 직원 대부분이 헝가리 사람이다. 대우라는 이름만 없으면 한국계은행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다.
현대의 전방위 경제전장에서 은행은 보병사단격인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포병단이나 다름없다. 야포의 엄호 사격을 받는 보병이 기관총 정도로 경무장한 적과 격돌할때 전투의 승패가 어떠리라는 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다. 대우전자․대우자동차․대우중공업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우은행’이라는 이름이 왠지 귀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헝가리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 헝가리에서는 ‘대우은행’이 자동차․전자․중공업등 계열사들에 ‘상승군’의 위력을 안기고 있다. 영업을 시작한 이래 헝가리에서는 ‘대우은행’ 하면 성공한 합작은행의 대명사로 통하기 때문이다.
대우은행은 1995년 헝가리내 40여개의 은행 가운데 순이익 순위 6위를 기록했고 설립후 지금까지 부실채권이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4년연속 배당 및 배당금 총액이 2천5백만달러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대우은행은 아직 동구권에 대한 정보가 생소한 때인 1989년 12월 헝가리 신용은행과 대우증권이 자본금 5천만달러를 50대50의 지분으로 투자, 설립하여 동구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개업할때만 해도 한국금융계에선 대우그룹이 무리한 해외투자 사업을 하나 벌이나 보다 했을 정도로 치부됐다. 국내유수의 시중은행들이 미국‧유럽 등 해외에 진출, 구멍가게식 장사를 하다 많은 부실채권을 안고 적자에 허덕이던 때였다.
그러나 대우은행은 개업 첫해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첫해는 총자산 60억7천8백만 포린트에 4억1천7백만 포린트의 세전이익을 냈다. 자본수익률이 12.6%나 되었다. 그후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여 사세를 확장한 대우은행은 증권, 리스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1992년, 1994년 각각 설립하여 종합금융회사의 면모를 갖추었다. 즉 은행업만 처리하는 국내은행과 달리 대우은행은 증권․리스업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갖고 있어 사실상 독일식의 유니버설 뱅크인 셈이다.
헝가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정부가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하자 합작파트너인 신용은행측이 대우증권에 지분의 추가인수를 요청, 1995년 1월부터 지분을 1백% 인수했다. 국내에선 은행에 대한 지배적 소유가 금지된 재벌그룹이 외국에 나가 은행업에 1백% 단독투자한 것만도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대우은행은 1996년 9월 인수한 헝가리 베어링회사인 MGM사가 위치하고 있는 데브레첸시(루마니아국경 부근)와 슬로바키아 국경지점인 됴르에 지점을 1996년내 개설하는등 1996년부터 매년 2~3개씩 지점을 집중개설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조만간 은행업을 개시할 우즈벡공화국, 루마니아 및 폴란드와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보험업은 물론, 또 앞으로 비자(VISA)와 손을 잡고 본격적인 카드사업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현재 주거래선 25개 기업에 단말기를 설치해주고 전자거래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폰뱅킹 등 전자거래를 더욱 확대해 나아갈 복안으로 헝가리 금융산업 발전에 한 몫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대우은행은 지난 1991년부터 부다페스트의 중심가인 라코치거리에 위치한 8층짜리 빌딩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또 지난 1996년 9월12일 헝가리중앙은행과 미국대사관이 인접한 요지에 건평 1만6천㎡의 사옥을 착공, 1998년 6월 입주 예정이다.
은행과 같은 서비스업종에서 자체 사옥을 짓고 거점도시마다 지점 개설에나선 것은 대우은행이 이제 개별 기업으로서 충분한 자생력을 갖춰 본격성장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만하다.
대우은행은 모든 영업을 철저히 현지화하는 독특한 영업전략을 구사한다. 국내 은행의 해외점포망이나 헝가리 주재 외국계은행이 대부분 주요 여신 결정때 본점 승인을 거쳐야 한다.
반면 대우는 현지 경영진이 영업에 관해 사실상 전결권을 행사한다. 당연히 고객의 대출신청에 신속 대응하며 고객 요구에 맞춰 대출조건도 신축적 조정이 가능해진다.
이 덕분인지 헝가리내에서 우량기업으로 꼽히는 2백50여개 업체가 대우의 주 고객이며 총 여신의 90%가량이 이들 우량고객에 집중돼 부실채권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다른 외국계 은행들은 헝가리 기업에 대한 대출위험을 꺼려 헝가리 국내기업에 대한 대출에 제한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다.
그러나 대우은행은 ‘은행이 헝가리 경제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고객층이 당연히 헝가리 기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은행설립 초기부터 현지 토착화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래기업들을 수시로 방문해 현장감 있는 기업정보를 수집했고 우량기업에 대해서는 자주 찾아가 제때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발로 뛰는 은행’ ‘고객위주의 은행’이라는 개념을 실천해 성공한 셈이다.
또한 대우은행은 영업규모가 커지면서 매년 10여명씩 헝가리인을 채용해 현재 현지채용 인원이 80명으로 늘어났으나, 오히려 한국직원은 1명 줄었다. 대우은행은 인원구성도 독특하다. 헝가리인 임직원은 행장(이사회 부의장겸임)을 포함해 모두 81명이며 한국인은 박종수부행장(이사회의장 겸임,한국직급은 상무)등 3명뿐이다. 직원이 17명인 증권 자회사와 18명인 리스자회사에도 한국인은 1명씩뿐이다.
1995년에 대우은행은 헝가리의 국민은행격으로 수신고가 가장 많은 OTP 은행행장이었던 엘레메르 떼르딱씨를 행장으로 영입했다.
헝가리 금융계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은행장도 헝가리인을 임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우는 철저한 현지화를 위해 헝가리인 직원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 현채인의 한국연수 등을 통해 자본주의식 경영마인드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 때문에 종업원들의 사기가 매우 높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엘레메르 떼르딱 행장의 영입은 대우은행의 인지도와 영업실적을 올리는데 상당부분 기여를 했다. 1996년 12월 말 기준으로 자산규모가 3백40억5천4백만 포린드(약2억6백만 달러)로 전년대비 37% 증가를 보여 주었고, 수익면에서도 14억6천5백만 포린드(약 8백80만 달러)로 전년대비 43% 성장을 기록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대우은행의 신속정확한 대고객 서비스와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 노력은 과거 사회주의시대의 획일적 금융관행에 젖어 있던 헝가리 고객층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 이것은 결국 헝가리 우량 기업고객 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현재 우량 기업고객의 수만도 100여개에 이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대우은행은 다시 강조하건대, 철저한 현지화 경영전략에다가 팀 단위로 조직을 개편하고 소수 정예주의 직원채용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채용한 현지 직원에 대해선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한편, 주니어 보드(평직원 이사회)나 제안제도 등을 통해 상하간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확대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우은행의 타은행에 대한 비교우위는 직원들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훈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업적별 차등급여제의 실시로 사회주의적 무경쟁체제에 길들여져 무사안일에 빠져있던 헝가리 직원들을 진취적 자세로 바꿔 놓으므로써, 80여명에 달하는 현지직원 개개인에게 일에 대한 프로의식을 심어 주는데 성공하였다.
은행의 발전이 헝가리의 발전이고 은행의 이익이 바로 나 자신의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대고객 서비스를 온몸으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 3년전부터는 이곳 직원을 대우증권 본사에 파견해 연수를 받게함으로써 그들이 본 한국과 대우의 위상이 전체 헝가리 직원의 자긍심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직원들의 근무방식과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일은 한국처럼 사무실 구조를 개방공간 형태로 훤히 터 놓은 점이다. 유럽지역 사무실은 마치 닭장처럼 좁은 공간일망정 개인사무실이 죽 나열돼 배치되는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처음 사무실내 칸막이를 없애려 했을 때 직원들의 반발이 적지않았으나 1주일간 개별설득에 나서 한국식 근무방식을 관철시켰다. 새로 지어질 신축 사옥에도 이같은 사무실 레이아웃을 고수할 작정이다.
시작때와는 달리 요즘은 다른 은행이나 업체에서 사무실구조를 구경올 정도가 되어 있다.
헝가리 금융산업의 환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에 걸맞게 거의 완벽한 개방체제다. 은행업에 대한 인가는 재무부산하인 은행감독원이 중앙은행과 협의해 결정한다. 금융감독은 현장감사가 거의 없고 일간 주간 월간 분기 등 기간별 보고서 제출로 대신한다. 연간 보고엔 영업계획등 세부적인 내용도 포함된다. 1일 업무 보고서는 중앙은행에도 카피가 넘겨져 의문점이 생길 경우 사실확인을 요구하는 전화가 온다.
헝가리금융계는 극심한 경쟁속에서 1990년이후 현지 은행 3개가 도산해 인수합병됐고 외국계은행중에는 이스라엘은행이 도산후 철수한 적이 있다. 예금 보험기금이 1994년 설치되는등 한동안 금융환경이 척박했으나 외국과의 합작을 통한 금융업 사유화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올들어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외국계은행으론 독일의 주요 5대 은행이 모두 진출해 있는 상태이며, 미국의 시티은행, 프랑스․오스트리아 합작사인 유니크뱅크, 네덜란드의 ING뱅크등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헝가리에 있는 대우가족 MGM사는 헝가리 최대 베어링회사로, 대우는 1996년 8월 헝가리 국영기업 민영화 사업에 참가하여 헝가리 국영기업관리공단과 계약을 체결하고 MGM사 지분 85.63%를 인수하였다.
이번 계약에 따라 대우는 향후 3년내 MGM사에 3천만달러를 투자, 생산라인의 현대화를 통해 생산능력을 2배 이상 확충하는 한편 MGM사의 기술력과 대우의 마케팅 능력을 결합시켜 이 회사를 2000년에 1억달러 이상의 매출실적을 거두는 세계적인 베어링 메이커로 육성할 계획이다.
대우의 MGM사 인수는 대우의 글로벌 자동차 생산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동차부품 생산거점의 확보라는 의미와 함께 헝가리에 대한 대우의 투자 본격화를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