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15배에 달하는 국토면적과 9억의 인구를 가진 인도는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대륙이라고 해야 걸맞다. 공식어인 영어, 힌두어 이외에 헌법에 지정된 지방어만 해도 14개에 달하며, 종교의 나라로 불리울만큼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자이나교가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최소한의 영양도 섭취할 수 없는 절대 빈곤층이 2억 이상인 반면, 서구식 소비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중산층이 또한 2억 이상인 나라, 극과 극이 존재하는 나라가 바로 인도이다.
대우는 1981년과 1982년에 뉴델리지사와 봄베이지사를 잇따라 설립하면서 인도시장에 진출했다. 그리하여 1996년 말을 기준으로 자동차와 전자, 건설, 중공업, 증권분야에서 국내기업 중 가장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인도 선박회사로부터 2억5천만달러 상당의 4만5천DWT급 벌크선 12척을 수주해 성공적으로 인도한 바 있는 대우는, 최근 세계 최대규모의 해양가스처리플랜트와 해수처리플랜트를 완공, 인도국영석유공사(ONGC)에 인도함으로써 인도정부와 언론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또 대우는 1994년 7월에 DCM 도요다와 총7천4백만 달러를 합작투자해 「DCM-DAEWOO」를 설립, 연간 3만대의 씨에로와 4,000대의 트럭과 버스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1996년 7월 생산규모를 더욱 확대해 연산 6만대의 씨에로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놓고 있다.
대우는 현재 마드야 프라데시 주정부가 발주한, 공사금액 14억달러 규모의 500MW급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B.O.O 방식으로 수주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대우증권의 경우에도 1992년에 자본금 8억원규모(대우지분 50%)의 「대우증권(인도)」을 봄베이에 설립한 이후,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 증권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외에도 대우는 인도내에 1만여개의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전자제품 제조회사인 앵커(Anchor)사와 향후 2년간 4,000만달러 상당의 판매계약을 체결해 인도가전시장에 브랜드세일을 시작했으며, 조만간 인도정부의 완제품 수입금지 규제가 풀리면 가전 판매법인과 생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가보면 폐차를 해도 몇번을 했어야 할 낡은 버스와 트럭, 색바랜 소형승용차들이 달리고 있는 사이사이에 대우의 씨에로가 질주하는 모습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현재 인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대우차는 수입된 차가 아니라, 9억이라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거대한 인도땅에서 직접 생산해 낸 것들이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 중심가에서 승용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우타 프라데쉬주 노이다시에 있는 27만평 규모의 「DCM-DAEWOO」 자동차 공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색 시멘트 벽돌로 둘러싸인 DCM 대우공장은 대우의 서남아시아 자동차 시장선점을 위한 전략거점이다. 보급 초기단계에 있는 인도 자동차 생산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푸른색 철판위에 「DCM-DAEWOO」가 큼직하게 씌어진 정문을 지나 생산라인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청결한 공장바닥과 자동화된 설비에서 조립되는 씨에로, 현지근로자들의 진지한 손놀림이다. 이곳에 있는 근로자들은 쾌적하고 첨단설비를 갖춘 대우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 공장은 프라데쉬주의 산업발달을 상징하고 있다. 뉴델리나 노이다 시민들은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대우」와 「씨에로」라고 말할 정도로 대우와 친숙해졌다.
씨에로를 조립하는 공장 라인과 벽에 붙어있는 생산성 향상과 의식개혁을 강조하는 각종 플래카드와 벽보들도 특별히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Zet No.1」운동이 대표적인데 Zero Defect(무결점), Excellent Product(최고품질), Total Customer Satisfaction(고객만족), No.1 Automobile Company(1등 자동차회사)의 영문 첫글자를 따서 붙인 운동이다.
이 공장은 대우 특유의 순발력과 앞선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가 차세대 황금시장이 될 것으로 일찌감치 내다본 대우는 지난 94년 7월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인도 DCM그룹의 합작사인 이 공장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초기에는 회의적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대우는 인수하자마자 공장혁신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공장건물을 새로 짓고 자동화설비를 대거 설치하는 등 청결한 공장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 노력은 생산성이 한국 근로자의 절반수준에 머무는 근로자들을 ‘대우맨’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도요타자동차가 경영권을 행사하던 시절, 판매부진 등 경영난으로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졌던 근로자들에게 ‘하면 된다’는 대우식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근로자들을 부평공장에 파견, 몸소 선진 생산방식을 배우도록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우차는 인도 국민들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차에 비해 값은 훨씬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뒤지지 않아 인도인들이 선호하는 차종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씨에로를 생산하기도 전에 대당 1천달러씩 선금을 받고 2년치 물량을 판 것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인도 기업인들은 “씨에로는 성공한 인도인들이 갖고 싶어하는 꿈의 차”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는 대우의 광고문구에도 사용된 바 있다.
투자재원으로 대우는 선금으로 받은 1억20만달러를 활용하고 있으며, 합작사의 주식값도 지분인수 당시에 비해 3배 가량 오른 적도 있고 유상증자를 통하여 자금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대우는 2000년까지 총 10억달러를 투자, 생산라인을 대폭 늘리는 등 공격적인 증설레이스를 펼칠 계획이다. 현재 씨에로 6만대, 상용차 2천4백대 등 6만2천4백대의 생산규모를 1998년 승용차 16만대, 상용차 7천대로, 2000년에는 21만대, 8천대 규모로 단계적으로 확충한다는 전략이 그것이다.
DCM-DAEWOO는 현지시장 상황을 보아가며 생산차종을 씨에로에서 1998년 중반기에는 누비라를 생산 하는 등 1999년초 까지 3개차종을 생산하게 된다. 공격적인 증설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이어져 1996년 3만3천대로 인도시장의 9%를 차지했고, 1998년에 가서는 8만대(15%)로 늘릴 방침이다.
2000년에는 20만대를 팔아 25%를 달성, 현지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참고로 인도자동차 수요는 1996년을 기준했을 때 30만대로 추정되며 매년 25%씩 수요가 증가, 2000년에는 80만대로 커질 전망이다.
부품 현지조달 확대를 위해 2000년까지 엔진과 트랜스미션도 각각 연산 30만대씩 생산할 계획이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생산량의 절반내지 3분의 1은 한국에 있는 군산공장으로 바이백(BUY BACK, 역수출)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인도부품공장은 앞으로 전세계 부품공급을 위한 거점기지가 될 것이다.
대우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첫째 직영점을 운영하고 기존 딜러도 경쟁을 유도하는 등 선진판매방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아울러 자동차 할부금융을 도입하여 할부판매를 활성화하고 있다.
둘째 높은 관세율을 감안, 부품현지화도 서두르고 있다. 1997년 5월 엔진 트랜스미션 프레스공장이 완공되면 부품현지 조달비율이 50%를 넘게되어, 이 경우 CKD 수입시 적용되는 50% 관세가 개별부품에 적용되는 간세(평균 40%)로 변경 적용되어 가격경쟁력이 강화돼 현지시장 공략이 한층 가속화 될 것이다. 부품공장이 완공되면 대당 1만8천달러하는 씨에로의 가격을 1만3천~1만4천달러로 낮출 수 있어, 경쟁차종인 일본 스즈키의 마루티와 가격 경쟁력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인도 자동차 부품공장은 부품현지 조달이라는 목적 외에도 전세계 부품공급을 위한 거점기지로서의 역할도 담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우는 인도 자동차 부품업체인 리코사와 「리코-대우」사 설립에 합의하고, 1997년까지 장비설치를 완료하기로 했으며, 1998년 3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리코-대우」사는 납입자본금 6백만 달러, 총투자금액 1천5백만 달러로 대우정밀이 74%, 리코사가 26%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경영권은 대우가 갖게 된다. 「리코-대우」사는 주로 6만대 규모의 쇽 압소바, 스티어링 너클, 에어컨 스위치, 10만대 규모의 오일 펌프 등의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 DCM-DAEWOO에 공급할 예정이다.
DCM-DAEWOO는 세계 최고의 생산능력과 경쟁력을 갖고 있는 도요타가 인도시장에서 실패한 뒤 한국기업이 멋지게 성공을 한 것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도요타와는 달리 합작생산후 6개월만에 흑자를 내는 「세계경영」신화를 대우는 인도땅에서 또 한 번 만들어 낸 것이다.
대우의 인도시장 성공은 자동차업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존 업체들은 시장이 커져야 투자하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대우는 이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진출, 시장을 키우며 선점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인도에서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읽고 이에 대비한, 계산된 도전이 기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